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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 죄인’의 부인이자 어머니...그 가련한 생의 흔적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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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미리내 성지
김대건 신부와 어머니 우르술라가 묻힌 곳


/미리내 성지

3줄 요약
  • 미리내 성지는 박해를 피해 모였던 교우촌에서 비롯되었으며, 조선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신부가 묻힌 곳.
  • 김대건 성인의 유해와 어머니 우르술라, 이민식 빈첸시오 등이 함께 안장되어 있고, 103위 순교자 기념성당과 미리내 성 요셉 성당 있음.
  • 1906년 미리내 성 요셉 성당, 1928년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1991년 103위 순교자 기념성당 등 시대별 건축물이 공존.


달도 없는 밤에 오면 그 모습이 보일까. 경기 안성 ‘미리내 성지’. 이곳은 과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지낸 교우촌(敎友村)이 시작이다. 숨어살던 신자들이 집집마다 밝힌 호롱불과 밤하늘 별빛이 시냇물에 비친 모습이 은하수(미리내)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고즈넉한 성지 입구엔 커다란 돌에 ‘미리내 성지’가 새겨져 있다. 선택은 두 갈래. 왼쪽으론 성 김대건(1821~1846)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이 있고, 바로 오른쪽 언덕 위엔 1906년 세워진 미리내 성 요셉 성당이 보인다. 선택은 왼쪽. 주인공부터 만나기로 한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미리내 성지

김대건 신부와 어머니 우르술라 묻혀



순례길을 따라 완만한 언덕길을 오르면 먼저 ‘한국 천주교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 성당’을 만난다. 우선 ‘패스’. 15분 정도 올랐을까, 성지 제일 위쪽 야트막한 언덕에 주황색 기와지붕을 얹은 작은 흰색 건물이 녹음 사이로 빼꼼히 보인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 129.7㎡(약 39평) 규모. 마치 유럽 지중해의 작은 경당(經堂)처럼 느껴지는 풍경이다. 옛 신자들이 숨어 살던 이곳이 ‘성지’로 대접받게 만든 것은 김대건 성인이 묻혀 있기 때문이다.

‘1928년 7월 준공’이란 글자가 입구 기둥에 새겨져 있다. 김대건 신부가 시복(諡福)된 것은 1925년이니, 기념 성당은 시복 3년 후에 지어진 것이다. 100년이 다 된 건물이지만 오래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성당 입구엔 돌무덤 4기가 안장돼 있다. 김대건 성인과 조선교구 3대 교구장 페레올 고(高) 주교, 미리내 본당 초대 주임 신부로 33년간 일한 강도영 신부, 3대 주임 최문식 신부다.

평일 낮 시간이어서일까, 발길은 뜸하다. 오롯이 홀로 경건하게 김대건 성인의 삶을 묵상해 본다. 성당 문을 열어 본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내부는 흰색 벽과 나무색 두 가지 컬러뿐. 정갈하다. 제대 아래엔 성인의 유해(아래턱 뼈)와 나무관 일부가 모셔져 있다. 깨끗한 마루 바닥에는 방석 2개가 놓여 있고 책이 펼쳐져 있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탄생 200주년 희년살이 안내서’. 김대건 성인 탄생 200주년(2021년)을 앞두고 2020년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만든 책자. 누군가 펼쳐둔 페이지에 김대건 신부의 서한이 적혀 있다.


“저희 어머니 우르술라를 주교님께 부탁드립니다. 저희 어머니는 10년 동안 떨어져 있던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만 만나 보았을 뿐인데 또다시 갑작스럽게 잃고 말았습니다. 슬픔에 잠긴 저희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시기를 주교님께 간절히 바랍니다.”

고(高)우르술라.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다. 남편 김제준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돼 순교했고, 아들 대건은 열다섯 살 나이에 사제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났다. 다시 만난 것은 10년 후. 조선인 최초 사제가 되어 나타난 아들을 만난 것도 잠시, 1846년 부활 대축일 미사를 드린 아들은 떠났고,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18년 후인 1864년 어머니 우르술라도 선종해 이곳 아들 곁에 잠들었다. 우르술라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다만 대역죄인의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문전걸식하면서도 신앙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어머니 묘 옆에는 미리내 성지의 또다른 주인공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그는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 성인의 시신을 이곳으로 옮겨온 사람이다. 그뿐 아니라 페레올 주교와 고우르술라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한 것도 이민식이다. 이민식은 교우촌 미리내가 성지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만든 주인공이다. 묘비엔 이민식이 중국과 일본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사제의 꿈을 꾸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1921년 만 92세의 나이로 선종해 이곳에 묻혔다고 적혀 있다. 그는 성인이나 복자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시신을 거둔 성인들 곁에서 잠들어 있다. 그를 이 자리에 모신 당시 교우들의 마음 씀씀이가 새롭다. 또한 불과 100여 년 전까지 김대건 성인의 순교를 목도한 증인이 생존했다는 점에 새삼 김대건 성인의 삶이 멀지 않게 느껴진다.


성당 안 작은 창문을 통해 소나무 숲이 보인다. 성당 앞에 나오니 단풍나무가 우거졌다. 단풍 든 가을이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일지 짐작이 된다. 창문으로 보이던 아름드리 소나무들은 성당 주변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김한수 기자가 신앙의 이야기 속에서 평안을 찾는 여정을 전합니다. 조선멤버십 전용 기사입니다. 멤버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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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내 성지는 1883년 공소(公所)가 만들어지고, 1896년 본당(성당)이 설정됐을 때 신자가 182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에서 내려오는 길, ‘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에 들어간다. 1991년 봉헌된 성당 입구 좌우엔 김대건 성인과 평신도 지도자였던 정하상(1795~1839)의 전신상(全身像)이 방문객을 맞는다. 사제와 평신도의 대표적·상징적 인물들. 제대 뒤 스테인드글라스에는 103위 순교자를 묘사한 성화가 그려져 있다. 기념성당 옆엔 ‘성모당’도 자리하고 있다. 저 위에서 만난 김대건 성인과 고우르술라의 묘가 겹쳐진다.


다시 돌아온 성지 입구. 미리내 성 요셉 성당 언덕 계단을 오른다. 1906년 세워져 내년이면 120년이다. 이제 이곳에 교우는 살지 않지만 성당에서는 토요일을 빼곤 매일 미사가 봉헌된다.

경로
  • 미리내성지 입구 주차장→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기념성당→한국 순교자 103위 시성 기념성당→성모당→미리내 성 요셉 성당


갤러리 카페 ‘엄마 어렸을 적엔’

미리내 성지 순례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가에 인형 사진과 함께 ‘엄마 어렸을 적엔’이라 적힌 배너가 여러 개 걸려 있었다. 그 배너를 따라가니 ‘미리내 예술인 마을’ 초입에 흰색 박스형 건물이 보인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내부에 들어서니 역시, 맞았다. 1996년 조선일보미술관을 시작으로 예술의전당과 전국을 순회하며 180만명이 관람한 전시회 ‘엄마 어렸을 적엔’ 출품작들이 전시돼 있다. 거의 30년 전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이라면 더욱 반가울 작품들.

당시 인형 작가 허헌선·이승은 부부는 1960~70년대 풍경을 세심하게 서정적으로 재현해 많은 관람객에게 가난했지만 정(情)이 살아 있던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인형은 아내 이씨, 소품은 남편 허씨가 맡았다. 특히 허씨가 공들여 만든 미니어처 달고나, 세숫대야, 물지게, 교실 책걸상, 두레박 등 소품들이 많은 관심을 끌었다. 연말 한파에도 전시 관람을 위한 대기 줄이 서울 정동 조선일보미술관에서 덕수궁 앞까지 이어질 정도로 인기와 화제를 모았다.

“전시가 끝난 후에 보리밥집이라도 차려서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싶다”고 했던 남편 허씨는 지난 2018년 별세했다. 아내 이씨는 지난 2023년 미리내 예술인 마을에 전시장 겸 카페를 마련해 이주했다. 전시장은 약 70평 규모로 작품 43점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광순이’ ‘외갓집 가는 길’ ‘오 남매’ ‘덕수상회’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이씨는 “전체 작품이 70점이 넘는데 절반 정도만 여기 전시하고 있고, 나머지는 아직 창고에 있다”며 “그래도 이 정도라도 관람객에게 선보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운영하는 카페에서 이씨는 직접 빵과 과자를 구워 판매한다. 커피와 다양한 차, 음료를 판매하는데 “생강라떼가 시그니처 음료”라고 한다.

엄마 어렸을 적엔
  • 어린이 음료 30% 할인, 3대가 함께 와도 30% 할인
  • 작품 관람 무료. 수요일 휴무. 0507-1433-3217


[김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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