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에서 온 마라토너들이 에베레스트 마라톤 출발선상에서 대기하고 있다. /정병선 기자
해발 5364m.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높이다. 이곳까지 트레킹을 한다는 건 등산 애호가들의 로망이자 버킷리스트다. 그런데 단지 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마라톤을 한다면 어떨까.
일단 이곳은 산소가 평지(해수면 기준) 절반도 안 된다. 두통, 어지럼증, 메스꺼움, 구토 등 고산병이 나타나기 쉽고 산소 부족으로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하는 청색증도 동반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을 안고 마라톤을 한다는 것 자체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극한 모험에 가깝다.
에베레스트 마라톤은 세계 5대 극지·험지 마라톤으로 꼽힌다. 북극, 남극, 사하라사막, 만리장성 마라톤과 더불어 인간 한계를 시험하는 경주다. 에베레스트산(8848m)을 가기 위한 전진기지인 EBC(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5364m)에서 셰르파족 고향 남체 바자르(3440m)까지 42.195㎞를 주파한다. 고통이 따르지만 숭고한 도전이다.
매년 5월 세계 각지에서 200여 명이 참가 신청을 한다. 고산병 위험이 크고 극도의 피로와 고통을 이겨내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다른 마라톤 대회 완주 기록, 의사 소견서 등을 내야 한다. 네팔 정부가 이를 철저하게 검증한 뒤 출전 자격을 준다. 자칫 출발점에 서기도 전 헬기로 후송되거나 쓰러질 수 있다.
이번 에베레스트 마라톤 도전은 지난해 한국-네팔 수교 50주년 기념 한-네팔 합동 등반대의 주갈-히말봉 등정 당시 엄홍길 대장과 대화에서 비롯됐다. 히말라야를 10번 이상 함께 다녀온 엄 대장이 식사 중 “에베레스트 마라톤이 있는데 체력이 되면 한번 뛰어보지”라고 권했다. 평소 도전이라면 마다 않는 터라 기꺼이 접수했다. 대회에 앞서 지난 4월 조선일보 하프마라톤, 5월 중순 강릉 노스페이스 트레일러닝 대회 50㎞를 완주하며 컨디션을 점검한 뒤 5월 말 참가 신청을 내고 필생의 모험 장정에 올랐다.
5월 말 EBC는 히말라야 등정 전반기(3~5월) 막바지다. (후반기는 9~11월) 마라톤 대회에 맞춰 등반팀은 전부 하산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최종 집결지이자 출발지인 EBC에서 고산병 예방을 위해 2박 3일 텐트에서 2인 1조씩 의무적으로 숙영해야 했다. 대회 하루 전 베이스캠프에는 눈이 소복이 내렸다. 오전 4시 넘어 텐트 밖으로 나오니 설국이었다. 빙하로 둘러싸인 베이스캠프는 동트기 전이라 춥고 바람이 매서웠다.
베이스캠프의 날씨는 시시각각 변했다. 매일 밤 텐트 밖으로 기침 소리가 요란했다. 누군가는 감기 몸살, 누군가는 고산병과 사투를 벌여야 했다. 참가자 대부분은 적잖은 고산 증세에 시달렸다. 한 텐트를 쓴 이탈리아인 조르지오도 대회 당일 아침까지도 “두통(고산증)이 있어 걱정된다”고 했다.
5월 29일 드디어 대회 날이 밝았다. 선수들은 오전 4시 30분~5시에 기상해 컨디션을 점검한 뒤 출발 준비를 했다. 7시 30분 출발 신호탄이 울렸다. 일단 빙하를 뒤로한 채 후미에서 출발했다. 이미 일주일 동안 80㎞를 올라오며 눈으로 코스를 익혔지만, 시작부터 오르막길이자 바윗길을 뛰기는 쉽지 않았다.
추운 날씨 탓에 레깅스나 두꺼운 양말을 신고 등산화를 신은 채 거친 바윗길을 뛰어가는 선수들 모습은 여느 마라톤 대회 풍경과는 달랐다. 마라톤 코스가 산악이다 보니 오르막·내리막길이 반복되는 특수 지형이었다. 자칫 발을 헛디디면 빙하 호수나 절벽으로 추락할 수 있는 최악의 환경. 내내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고락솁(5170m)을 지나 약 5㎞ 정도 지나면서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 5㎞ 구간인 로부체를 지날 때까지 별 난관 없이 뛰었다. 고도가 낮아지니 출발 때보다 컨디션도 좋았다. 하지만 계곡을 지나야 하는 투클라까지 가는 길이 첫 번째 난관이었다. 내리막길인데도 끊임없이 펼쳐지는 돌멩이 길은 사람을 미치게 했다. EBC에서 고도가 1000m 낮은 딩보체(4359m·17.3㎞ 지점)를 향해 갔다.
애초 이 지점만 지나면 구간 절반을 지나니 완주에 자신감이 생기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브레루프 구간(약 20㎞ 지점)에서부터 고통이 밀려왔다.
고도를 낮추는 코스가 아니라 고도를 높이면서 약 5㎞를 왕복해 다시 딩보체로 되돌아가는 구간이었다. 1차 컷오프 같은 곳이었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여기서 포기하면 누가 나를 픽업해 줄까?” 정신이 바짝 들었다. 완주를 포기하고 말을 타고 하산한다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고, 무엇보다 헬기를 부르면 (수백만 원에 이르는) 경비를 어찌 감당하겠는가.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
“가자! 극복하자! 완주하자!” 마음을 다잡고 딩보체를 지나 텡보체(3868m·32.6㎞ 지점)를 향했다. “저 멀리 산꼭대기에 보이는 곳이 텡보체겠구나!” 생각하며 뛰었다. 현지인에게 물었다. “저곳이 텡보체 맞지?” 뭐냐 하는 표정으로 그가 답했다. “저긴 팡보체 지점인데!”
말이 돌길이지, 바위길과 다름없었다. 미칠 것같이 다리가 무거워졌다. 팡보체에서 텡보체까지는 5㎞ 이상 가야 하는 격렬 구간이었다. 텡보체는 공식 컷오프 구간이었다. 구간 마지막 2㎞ 정도가 오르막인 마의 구간이다.
갑자기 영국에서 온 여자 선수 2명이 뒤를 바짝 따라오는 게 보였다. 오기가 생겼다. 한국 아저씨가 외국 여자 선수에게 추월당할 수 없었다. 기이한 자극은 또 있었다. 인분을 담은 20~30㎏ 되는 무거운 통을 머리띠에 묶고 하산하는 포터들. 묵묵히 걷는 그들 얼굴은 편안했다. 그 광경을 보니 고통을 받아들이고 인내하며 뛰자는 마음이 생겼다. (네팔 정부와 환경 단체는 에베레스트 지역 쓰레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분과 쓰레기를 모두 베이스캠프 밖으로 운반하도록 의무화했다.)
도중에 조우한 사향노루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멸종 위기종인 사향노루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마라토너를 응원하는 특별 출연이었을까.
텡보체까지 컷오프 시간은 오후 4시(출발 후 8시간 30분). 일단 컷오프 통과 구간을 지나면 골인 지점까지 10㎞ 정도 남는다. 일단 컷오프를 통과해야 완주 조건을 충족하는지라 사력을 다해 컷오프 구간을 통과했다. 조직위 직원들이 박수로 환영해줬다.
가자! 가자! 이제 10㎞만 뛰자. 그런데 컷오프 구간을 지나도 험한 돌길, 바위길에 이번에는 계단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에서 온 참가자는 “이런 속도로 달리면 완주가 어려울 것”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뛰자! 걷지 말고 뛰자!” 앞만 보고 나아갔다. 그런데 뛰어도 뛰어도 골인 지점이 보이질 않았다. 오기도, 패기도 다 녹아버리려는 순간, 마인드 컨트롤로 한계를 넘은 몸을 다독이며 “가자! 완주다!”를 외치며 뛰었다.
중간에 말을 타고 가는 진행 요원과 부상을 입고 후송되는 선수를 보면서 유혹이 솟아올라왔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만큼 했는데 그냥 말을 탈까?” 마지막 10㎞는 내리막길 한 번 없는 오르막이었다. 에베레스트 산악은 땅을 딛고 뛰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거칠고 험난한 히말라야 특유의 기세가 느껴졌다. 발의 부담도 몇 배는 더 되는 듯했다. 기력을 더 짜낼 여력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아지경처럼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해가 지고 사방은 어두웠다.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산과 나무, 바위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자, 결승선인 남체 모습이 희미한 불빛과 함께 드러났다. 남은 건 2~3㎞뿐. 거의 다 왔는데 불현듯 다 허무해졌다. 앞만 보고 가는데 말이 지나가는 소리, 말 목에 매달린 종소리가 머릿속을 헤집었다. 쉬고 싶고 편하게 내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종소리에 실려 심신을 괴롭혔다.
남체 바자르가 보이는 언덕. 거대한 이정표 같은 기도 푯말이 보였다. ‘Om Mani Padme Hum(연꽃 속의 보석이여, 나를 지혜와 자비로 이끌어 주소서)’. 정말 완주가 멀지 않았다. 대회 조직위 마지막 체크포인트가 있는 곳이었다. 물을 보급받고 지나려니 조직위 관계자들이 각국 출전자 국기를 들고 있었다. 태극기를 집어 들고, 마지막 힘을 냈다. 이윽고 저녁 7시 40분, 남체 바자르 마을 입구 결승선을 통과했다. 출발한 지 12시간 10분 만이었다.
정병선 기자가 분쟁과 오지의 현장에서 포착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조선멤버십 전용 기사입니다. 멤버에게는 더 많은 혜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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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달렸는지 사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함께했던 셰르파들이 축하 인사를 해줬다. 조직위원장은 “축하한다”며 롯지(lodge)에서 맥주를 사줬다. 공식 기록을 통보해 주며 완주 메달을 걸어줬다. 그 순간, 고통은 사라졌고 환희만 남았다. 3박 4일 걸어 올라온 산을 12시간 여 만에 뛰어 내려온 것 자체가 스스로 대견했다. “완주! 완주다!” 마라톤 황영조 선수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몬주익 언덕을 넘어 금메달을 확정했을 때 아마도 이런 기분 아니었을까.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민경 |
에베레스트 마라톤은?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셰르파)가 에베레스트를 최초 등정한 1953년 5월 29일을 기념한 대회다. 네팔 정부가 2003년 에베레스트 등정 50주년을 맞아 첫 대회를 개최했으며, 올해 23회째. 이번 대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216명이 출전, 15명이 중도 포기했다. 대회 특성상 네팔 고산족인 셰르파들이 상위권을 휩쓸어 어지간한 외국 선수는 10위권에도 들기 어렵다. 올해도 12위까지 네팔 선수가 차지했고, 노르웨이 선수가 외국인 최고인 13위를 기록했다. 지금까지 에베레스트 마라톤 한국인 참가자는 20여 명. 이 중 완주한 사람은 9명뿐이었다. 참가비만 1000달러 정도 든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를 오가며 짐을 나르는 야크들. 에베레스트 등정팀이나 마라톤 준비에 없어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존재다. /정병선 기자 |
[정병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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