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가 6일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오사카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웃고 있다. 오사카/AP 연합뉴스 |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십수년 전 필자는 한 과학 월간지에 ‘오리지널 논문으로 배우는 생명과학’이라는 제목의 코너를 연재한 적이 있다. 어떤 분야를 거슬러 올라가 출발점이 된 논문을 소개하고 그 뒤 발전 과정을 덧붙이는 형식이었다. 솔직히 독자 반응은 그리 크지 않았으나 연재하는 수년 동안 논문 수십편을 발굴하고 공부하면서 오히려 필자가 즐거웠던 것 같다.
연재하면서 오리지널 논문은 중요도에 대한 평가의 관점에서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연구 당사자와 학계 모두 중요성을 인정한 경우로 저명한 학술지에 실린다. 다음은 연구자들은 중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학계는 인정하지 않는 경우로 저명한 학술지가 외면해 결국 지명도가 낮은 학술지에 실린다. 끝으로 연구자도 학계도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했지만(따라서 논문도 평범한 학술지에 실린다) 나중에 그 분야가 꽃피면서 재조명된 경우다.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의 한명인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명예교수를 보면서 문득 오리지널 논문 연재 시절이 떠올랐다. 수상 업적인 말초 면역 관용은 1995년 사카구치 교수팀이 학술지 ‘면역학저널’에 실은 ‘조절티(T)세포’ 발견을 보고한 논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의 분류에 따르면 두번째로, 연구자들은 20여년의 난제를 풀었다고 생각했다.
즉 1970년대 초 미국 예일대의 저명한 면역학자 리처드 거숀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두가지 티세포만으로는 면역 관용(조절) 현상을 설명하지 못해 면역을 억제하는 세포도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 뒤 많은 면역학자가 억제 세포를 찾는 연구에 뛰어들었지만 다들 실패해 그런 세포는 없다고 결론이 난 상태였다. 그러나 사카구치는 포기하지 않고 매달려 마침내 세포 표면에 ‘CD25’라는 단백질이 있는 티세포가 거숀이 제안한 억제 세포임을 밝힌 것이다.
세포 표면에 ‘CD25’ 단백질이 존재하는 T세포가 면역 관용에 관여하는 사실을 밝힌 일본 이화학연구소 사카구치 시몬 박사팀의 1995년 논문은 출간 당시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수년 뒤 재조명되면서 지금까지 무려 1만회 넘게 인용됐다. 14쪽 분량 논문의 첫 페이지다. ‘면역학저널’ 제공 |
그러나 저명한 학술지들은 이 논문을 외면했고 결국 지명도가 낮은 학술지에 실렸다. 그래서인지 면역학자 대다수가 이 논문이 나왔는지도 몰랐는데, 미국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의 저명한 면역학자 이선 셰바크가 우연히 읽고 감명을 받아 재현 실험을 했고 같은 결과를 얻자 억제 세포 반대론자에서 신봉자로 개심하면서 조절티세포 연구가 붐을 이뤘다.
한편 2001년 영국 생명과학 기업 셀텍의 프레드 램즈델 박사팀(메리 브렁코가 1저자)은 심각한 자가면역질환으로 생후 수주 만에 죽는 돌연변이 생쥐를 연구해 ‘Foxp3’ 유전자를 찾았고 사람에서도 해당 유전자가 변이형이면 중증 자가면역질환이 생김을 확인했다. 그리고 2003년 세 팀, 즉 램즈델 팀과 사카구치 팀, 미국 하워드휴스의학연구소 알렉산더 루덴스키 박사팀이 각각 독립적으로 ‘Foxp3’ 유전자 발현이 조절티세포를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조절티세포를 처음 발견한 사카구치는 이 업적으로 여러 상을 받았는데 때로는 단독으로 때로는 공동 수상했다. 그런데 공동 수상의 파트너가 달랐다. 즉 2004년 윌리엄 콜리 상은 셰바크였고 2017년 크라포르드상은 램즈델과 루덴스키였다. 한편 2015년 톰슨 로이터는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로 셰바크와 루덴스키를 함께 지목했다. 그런데 실제 노벨상은 브렁코와 램즈델이 파트너였다.
수학 용어로 사카구치는 상수, 다른 연구자들은 변수인 셈이다. 이게 바로 원조의 힘 아닐까.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