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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확대경] 전문가가 사라진 시장, 제도 밖에 갇힌 가상자산

이데일리 김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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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열풍 속 ‘전문가 공백’… 제도권 진입이 늦은 대가
[이데일리 김아름 기자] 비트코인 가격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숨 고르기 장세에 접어든 지난 9일, 연휴 마지막 날 휴일 당직 근무 중 향후 가격 전망 기사를 준비하려 했다.

보통 기자들은 투자 자산의 향후 흐름을 다룰 때, 전문가 풀을 통해 다양한 견해를 종합해 기사를 쓴다. 그러나 휴일이라 연락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충분한 전문가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하지만 막상 비트코인 가격 전망에 대해 구체적인 코멘트를 줄 수 있는 국내 전문가는 손에 꼽았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의견을 요청할 만한 인사는 한두 명에 불과해, 가상자산 분야의 전문 분석 인력 부족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이미지=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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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에는 넘쳤던 ‘전문가’, 가상자산은 텅 비었다

부동산 시장을 취재하던 때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전문가 풀이 워낙 풍부했다. 집값 하락 전망 기사를 쓰고 싶다면 A집단에, 반대로 상승 전망을 원하면 B집단에 연락하면 됐다. 시장 상황에 따라 견해를 유연하게 조정하는 전문가들도 있었다. 이들의 다양한 의견을 적절히 조합하면, 시의성과 균형을 갖춘 기사를 쉽게 완성할 수 있었다. 이는 부동산이 오랜 기간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투자 자산’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시장 역시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투자처 중 하나다. 지난해 말 기준 가상자산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17조1000억 원으로,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친 규모를 넘어섰다. 투자자 수만 1500만 명을 돌파해 국민 세 명 중 한 명이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시대가 된 셈이다.

변동성 탓만은 아니다, 제도권 진입이 늦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상자산 시장에는 ‘전문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원인은 비트코인의 극심한 변동성이다.


기자는 비트코인 상승 전망 기사를 준비하던 지난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 한 마디에 시장이 순식간에 뒤집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는 중국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고, 그 직후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요 코인이 급락했다. 하루 만에 약 191억 달러(약 27조원) 규모의 선물 포지션이 강제 청산됐다.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시장, 그 안에서 일어나는 하루 사이의 급변이 ‘가상자산 전문가’의 등장을 어렵게 만드는 셈이다.

그러나 이처럼 변동성이 높은 시장일수록, 투자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본 지식과 전략이 더욱 중요하다. 위기 상황에서 ‘플랜B’를 세울 수 있는 투자자의 성숙도가 곧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기반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전문가의 견해가 축적되고, 투자자들이 그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투자 철학과 원칙을 세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이 여전히 제도권 밖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가상자산 전문가 풀이 턱없이 부족한 이유도 바로 이 제도적 공백과 관련이 깊다.

미국은 이미 비트코인 현물 ETF가 상장되면서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 금융의 일부로 편입됐다. 연기금이 간접투자를 시작하고,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시장에 진입하면서 분석 리포트와 연구 자료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즉, ‘법인 자금의 유입’이 시장의 전문성을 키운 것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비트코인 현물 ETF 시장이 열리지 않았고, 상장 법인이나 기관투자자의 가상자산 투자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부재하다. 제도적 문턱이 높다 보니, 금융기관이나 애널리스트들이 이 시장을 연구하거나 리포트를 내놓는 일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주식시장에서는 매일 아침 수십 개의 리포트가 쏟아지지만, 가상자산 시장에는 이와 같은 ‘지식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한 이유다.

전문가가 있어야 시장이 성숙한다

가상자산의 역사가 짧다는 점도 한계로 작용한다. 블록체인 기술이 본격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불과 10여 년 전이다. 국내 한 스타트업 대표는 “이미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하기 어려운 산업보다, 이제 막 태동한 블록체인 분야야말로 한국이 승산이 있는 마지막 기술 영역”이라고 말했다.

가상자산 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기업·정부가 함께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 정부는 ‘그림자 규제’와 과세 입법에만 집중하기보다, 제도권 진입을 통해 시장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기회를 제도화하는 정책”이다. 가상자산 시장이 제도권으로 들어와야 전문가가 생기고, 전문가가 늘어나야 시장이 성숙한다. 지금이 바로 그 선순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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