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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체격 큰 청년도 맞아서 뼈 부러져… 캄보디아서 올해만 400명 구조"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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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규 캄보디아 한인회장 인터뷰
텔레그램, 중고거래 등 통해 알선
고수익 보장에 불법 알고도 범행


지난 7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사기 용의자들이 건물을 급습한 경찰에 체포됐다. 프놈펜=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7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사기 용의자들이 건물을 급습한 경찰에 체포됐다. 프놈펜=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취업 사기에 속아 넘어간 이도 있지만, 불법임을 알고도 캄보디아행에 나서는 청년들도 적지 않다. 돈이 절박해서, 그리고 ‘설마 나에게 위험한 일이 생기겠느냐’는 막연하고 안일한 생각으로 왔다가 피싱 범죄에 동원되고, 감금·폭행을 당한다.”

정명규 재캄보디아 한인회장은 12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캄보디아는 고액 알바가 불가능한 나라”라며 “(범죄 조직의) 위험성이 더 많이 알려져 사람들이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이 범죄 조직에 납치·고문·살해당하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정부가 대응에 나섰다. 대통령까지 나서 총력 대응을 지시했고, 당국은 현지 수사 기관과의 공조를 강화하고 있다. 캄보디아 현지에서는 정 회장을 비롯한 한인회가 범죄 단지에서 탈출한 한국인을 돕고 있다.

고수익 좇아 캄보디아행


캄보디아에 13년째 거주 중인 정 회장에 따르면, 올해 범죄 단지에서 탈출해 귀국한 한국인은 400명을 넘어섰다. 지난 한 해(약 200명)의 두 배 수준이다. 2023년 말까지만 해도 열댓 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현재 범죄 단지 한 곳에 수백 명에서 많게는 1,000여 명이 감금돼 있는데, 이 가운데 10%가량이 한국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높은 벽과 보안 카메라로 둘러싸인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 작업장 항공샷.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

높은 벽과 보안 카메라로 둘러싸인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 작업장 항공샷. 국제 앰네스티 보고서


피해자는 주로 20~30대 청년층이다. 텔레그램이나 구직 사이트,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라온 ‘간단한 서류 전달’ ‘월 수천만 원 고수익 보장’ 등의 게시글을 보고 입국했다가 범죄 조직에 얽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미심쩍지만 금전적으로 어려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사기 행각) 가담을 거부하면 고문과 협박이 이어지고, 달아나려는 사람에게는 ‘주변 친구를 불러오면 풀어주겠다’며 또 다른 피해자를 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범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지옥같은 곳을 빠져나가고 싶어도 도움 요청이 쉽지 않다.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겨 외부와의 연락이 거의 불가능한 까닭이다. 실제 캄보디아 한인회 홈페이지에는 실종자를 찾는 게시물이 10여 건 이상 올라와 있다. 캄보디아 입국 후 연락이 끊겨 가족이 실종 신고를 낸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22년 9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범죄 조직 건물. 시아누크빌=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22년 9월 캄보디아 시아누크빌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범죄 조직 건물. 시아누크빌=AFP 연합뉴스 자료사진


구출되거나 무사히 도망친 경우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탈출한 이들이 맨몸으로 무작정 택시를 타고 한인회로 도망 오는 경우도 있다. 한인회는 이들의 여권 신청과 통역을 돕거나 귀국 전까지 잠시 머물 장소를 지원한다. 정 회장은 “운동선수처럼 체격이 좋은 청년들도 두들겨 맞아 뼈가 부러지고 피를 흘릴 정도였다”며 “중국·한국인 브로커들이 도망친 사람들을 잡으러 공항까지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공포에 교민 생계 위협”


피해 규모가 커질수록 현지 교민 사회의 고민도 깊어진다. 정 회장은 “사건은 분명 심각하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캄보디아 전체가 마치 ‘범죄 도시’처럼 알려져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최근 외교부는 범죄 단지가 밀집한 외곽 도시는 물론 교민이 다수 거주하는 프놈펜까지 여행경보를 ‘특별여행주의보’로 상향 조정했다. 긴급한 용무가 아니면 방문을 취소·연기하라는 의미다. 이에 한국 사회에서 ‘캄보디아 혐오·공포’가 번지면서 교민 피해도 커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국에서 투자나 거래를 위해 오려던 사람들이 계약을 취소하면서 기업인들이 직격탄을 맞고, 관광객도 발길을 끊어 자영업자 생계도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캄보디아에서 20대 한국인 대학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인 3명 모습. 캄보디아 깜폿지방검찰청은 11일 이들을 구속기소했다.

캄보디아에서 20대 한국인 대학생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중국인 3명 모습. 캄보디아 깜폿지방검찰청은 11일 이들을 구속기소했다.


정 회장은 캄보디아 전역에서 이런 범죄가 벌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웬치’라 불리는 범죄 단지는 태국 접경 도시 포이펫과 바벳, 시아누크빌 외곽 보코산 지역 등에 몰려 있다. 2023년까지만 해도 프놈펜에도 작업장이 다수 있었지만, 단속이 강화되며 지금은 대부분 지방으로 옮겨갔다”고 덧붙였다.


정부에는 자발적 범죄 연루자에 대한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어렵게 탈출해 한국에 돌아간 뒤 제 발로 돌아와 또다시 범죄 조직에 들어가는 사례도 있다는 설명이다. 정 회장은 “캄보디아 내 불법 조직과 연계된 사실이 밝혀질 경우 강제 출국과 재입국 금지 등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정부가 코리안데스크 설치에도 전력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코리안데스크는 현지 경찰청 내에 한국인 전담 수사 창구를 두는 제도다. 경찰은 오는 23일 캄보디아 측과 이를 논의할 예정이다.

하노이=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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