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대기자 |
■
모든 게 합법적이란 오르반에게
EU는 “민주주의 아닌 선거독재”
다수결의 일탈 막을 ‘법원 독립’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
뭔가 익숙한 듯한 이 개념의 인물은 21세기 들어 ‘합법적 선거 독재’라는 새 정치적 용어를 탄생시킨 헝가리 총리 빅토르 오르반이다. 그의 지론은 “정치에선 늘 모든 일이 가능하다”다. 모두 이뤄 주겠다는 극우 포퓰리스트(트럼프와는 죽고 못 사는 사이다) 기질을 발휘, 2010~2022년 네 차례 총선에서 여당인 피데스 주축의 연정이 모두 3분의 2 개헌선 압승을 거둔 합법적인 지도자다.
오르반 정권의 첫 타깃이 사법부·언론이었다. 2014년 기존의 헌법재판소 판사를 11명에서 15명으로 늘려 새로 생긴 네 자리를 측근, 정부 측으로 메꿨다. 정당 의석 배분의 헌재 판사 임명 제도를 일방적인 정부 임명 시스템으로 바꾼 뒤였다. 오르반은 특히 자신에게 삐딱한 바카 대법원장이 눈엣가시였다. 그래서 ‘대법원장이 되려면 헝가리 내 사법부 경력이 5년 이상’이란 조항을 슬쩍 법률에 끼워 넣었다. 바카는 유럽 인권재판소에서 17년간 일한 권위있고 존경받는 판사였지만 헝가리 판사는 5년이 되지 않아 합법적으로 쫓겨나야 했다. 법학 전공인 오르반의 치밀함이다.
곧 언론법도 개정, ‘편파적·모욕적인, 혹은 공중도덕에 반하는 기사의 보도’를 금지한다. 벌금은 최대 90만 달러(약 13억원). 처벌 기준이 공중도덕이라니…. 충성파로 언론위원회를 구성, 수십 곳 언론사에 벌금을 난사했다. 비판적인 50만 명 청취 라디오의 재인가도 거부했고, 유명 편집자 등 1000여 명의 언론인이 취재 현장을 떠났다. 유럽의회 전체회의는 드디어 “헝가리는 민주주의가 아닌 선거독재 국가”(2022년)라고 규정했다.
이재명 정부가 142일 째다. 주가도 급등세에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 같은 순방향으로의 진행도 보인다. 이 대통령 개인도 현장 탐방과 소통을 활성화하며 애쓰고 있다. 그러나 큰 틀에서 ‘다수의 과잉’이라는 정권에의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근원은 다수 집권당 내의 소수 강경파다.
여당은 국회 법사위를 주축으로 지금 조희대 대법원장과 지귀연 판사, 나아가 사법부를 손보려는 작업을 착착 진행 중이다. 조 대법원장이 “(이재명 선거법 위반 상고심이) 대법원에 올라오면 알아서 하겠다”고 말했다는 정체불명의 제보가 근거다. 지금껏 확인된 팩트? 하나도 없다. 대법원이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상고심을 바로 전원합의에 올리고, 이틀 만에 파기환송한 시기·속도는 물론 의문이다. 그러나 입증 못 한 의혹을 빌미로 아예 대법원 판사를 14명에서 26명으로, 특별재판부 설치와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 추진 등으로 과속하는 건 그 정치적 의도를 의심케 할 뿐이다.
민주당은 이사진의 대폭 증원 등 공영방송 지배구조 손보기도 마무리했다. 11명에서 15명이 된 KBS 이사의 정당 의석비 추천은 6명이나 나머지 9명을 방송 임직원(3명), 시청자위원회(2명), 변호사단체(2명), 학회(2명) 등으로 배분한 방송법을 단독 통과시켰다.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도 의무화해 방송 내 주도권을 쥐게 했다. 야당은 “노조·시민단체의 이사 추천 영향력을 대폭 늘려 진보 카르텔이 공영방송을 영구 장악하게 한 법”이라 반발한다. 가짜뉴스에의 거액 손해배상을 담은 언론중재법도 재추진 중이다. 그런데 그 ‘가짜’란 건 도대체 누가 규정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통령조차 “언론만을 타깃 삼지 말라. 누구든 악의적 가짜정보엔 배상해야지, 언론 탄압이란 근거를 준다”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여당과) 온도 차가 날 때가 있다”(우상호 정무수석)는 게 용산의 우려다.
지난달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조희대 대법원장 대선개입 의혹 관련 긴급현안 청문회가 조 대법원장 없이 진행되고 있다. 뉴시스 |
민주주의는 물론 ‘다수, 다수결의 통치’다. 그러나 그 다수가 늘 현명하거나 모든 사안에 국민 위임을 받은 권한은 아니다. 정치적 다수는 선거를 통해 늘 소수로도 뒤바뀐다. 결코 절대적·영구적일 수 없다. 그래서 언제든 그 다수의 일탈을 심판할 견제 장치가 사법부, 그리고 언론이다. 다수에 어긋나는 소신 판결로 삼권분립을 구축해 온 게 미국의 연방대법원이다. 일시적인 정권의 눈치 보지 말라고 종신 임기까지 보장했다. 어떤 다수결도 절대 침해 못 할 권리는 ‘표현의 자유’다. 언론 표현의 자유와 사법부 독립이 죽으면 그게 민주주의의 죽음이다. 일시적 다수보다 영원한 가치는 바로 ‘자유민주주의’다.
최훈 대기자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