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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1승 추가” 14년째 승승장구…‘트인낭’의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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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2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트위터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유튜브 갈무리

2011년 5월20일 기자회견 자리에서 트위터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알렉스 퍼거슨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유튜브 갈무리


시간을 낭비한다는 말이 곧 인생을 낭비한다는 말로 일방통행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시간 낭비’에서의 ‘시간’보다 ‘인생’은 더 장대한 시간선을 함의하는바, 한때는 쓰잘머리 없는 낭비로 여겨졌던 행실이 인생의 어느 순간에 비장의 필살기로 발현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여가 시간을 죄다 쇼츠와 릴스에 탕패해온 세월이 뉴 미디어 시대의 직관과 취향을 단련하여 저도 모르게 크리에이터의 재능에 눈뜬 인간이 있을 수도 있고, 그저 비몽사몽 졸음과 싸워온 나날 속에서 세상을 뒤집을 픽션 소재나 히트곡 멜로디를 꿈결에 내려받은 예비 예술가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고로 ‘낭비하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낭비라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해야 한다.



한국어 온라인 커뮤니티의 오래된 속담 가운데 하나인 “에스엔에스(SNS)는 인생의 낭비다”라는 격언도 유사한 견지에서 반추해볼 수 있겠다. 이 말은 2011년 5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바르셀로나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일주일여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유나이티드 감독은 알렉스 퍼거슨이었고, 주전 스트라이커는 웨인 루니였으며, 트위터는 아직―엑스(X)가 아니라―트위터였다. 실리콘밸리에서 앞다투어 출범한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초국적인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생태계를 재편하던 과도기였는데, 그 중심에 트위터가 있었고 트위터의 영향권으로부터 프리미어리그 선수들도 예외일 순 없었다.



필드 위에서만큼이나 타임라인에서 역동적인 활동량을 선보였던 20대 중반의 루니가 이름 모를 일반인 트위터 이용자와 시비가 붙어 구설에 오르는 일이 있었고, 회견장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퍼거슨은 양손으로 볼을 감싸 쥐고는 조곤조곤 입장을 피력하였다.



“이것은 책임의 문제입니다. 그들(프로축구선수)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트위터에서 한 말들에 대해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안 됩니다.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것들에 왜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시간을 어떻게 내죠? 그게(트위터) 아니어도 인생에는 할 수 있는 일이백만 가지는 됩니다. 차라리 도서관에 가서 책을 한 권 읽으세요. (기자들 웃음) 진심입니다. 그건 시간 낭비예요.”



이것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는 글귀로 한국에 수입된, 이른바 ‘트인낭’ 밈(meme)의 기원이다. 보다시피 원문에는 ‘인생의 낭비’(waste of life)라는 표현이 없다. ‘시간 낭비’(waste of time)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말이 쓰여 있을 따름이다. 네이버에서 당시 한국어 보도를 뒤져보면 다수가 퍼거슨의 발언을 ’시간 낭비’로 옮긴 가운데, 일부 ’인생의 낭비’라는 초월 번역으로 의미망을 헤집은 원류 문헌이 남아 있다. 모로 보나 인생의 낭비는 시간 낭비보다 강렬한 것이어서, 우리 ‘누리꾼’들의 각광을 피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때마침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폭발적인 보급(트위터는 2011년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했다)과 함께 트윗 한 줄로 평지풍파를 맞는 이들이 속출하는 세태와 맞물린 것 역시 결정적 요인이었을지니, 누군가 인터넷에서 실족할 때마다 퍼거슨은 ‘의문의 1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적어도 한국에서 이 말은, 퍼거슨 본인보다 유명하다.



사태의 시발점이 된 웨인 루니의 2011년 트윗. 한 트위터 유저의 악성 트윗에 대한 답글로 “10초면 너 까짓 건 재워버릴 수 있다”는 협박성 메시지를 날렸다. 엑스 갈무리

사태의 시발점이 된 웨인 루니의 2011년 트윗. 한 트위터 유저의 악성 트윗에 대한 답글로 “10초면 너 까짓 건 재워버릴 수 있다”는 협박성 메시지를 날렸다. 엑스 갈무리




‘허언’이 진실이 된 10년





축구 전문 기자 이성모는 저간의 사정을 안타깝게 여기며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에스엔에스는 인생의 낭비’라는 말에는 실체가 없고, 현지(잉글랜드)에서는 누구도 그런 식으로 소셜미디어에 집단적이고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우지 않는다며, 명백한 오역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의 비판은 번역의 엄밀함에 기초하는데 ‘직역’을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에 충실한 번역’, ‘의역’을 ‘원문의 단어나 구절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고 전체의 뜻을 살린 번역’(이상 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정의한다면, ‘waste of time’은 직역했을 때 ‘시간 낭비’가 되고, 의역해도 ‘인생의 낭비’가 되긴 어렵다. ‘waste of time’이라는 표현이 영어권에서 갖는 사회적 어감은 지극히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 반면, ‘인생의 낭비’는 한국어권에서 더 강렬한 어감을 갖는다. 원어의 뉘앙스를 과장하는 번역이 좋은 번역일 수 없으니, 이성모의 말처럼 이것은 직역도 의역도 될 수 없다. 이러한 번역론을 가미하며 그는 독자 여러분이 진실을 곧게 세워 무의미한 논쟁과 혼란을 막아달라고 호소하였다.



그의 호소는 절박하지만, ‘이 번역이 퍼거슨의 발언 본의를 왜곡하였는가’, 혹은 ‘그 왜곡이 중대한가’에 관해서는 판단이 갈릴 수밖에 없겠다. 전문의 맥락을 살펴볼 때 결국 트위터나 붙들고 스마트폰 너머 익명의 타인과 말씨름하는 데 시간을 쏟는 행태는 삶을 허투루 사는 것이라는 뉘앙스가 없지 않다. 퍼거슨 자신도 “인생에는 그 밖에도 할 수 있는 일이백만 가지”라고 하지 않았나. 그의 말을 달리 요약하면 ‘이제 그만 스마트폰은 내려놓고 네 인생을 살아’ 정도가 적당할 것이다. 이 글의 초두에 시간 낭비가 반드시 인생 낭비로 귀결하는 것은 아니라고 썼으나, 일생 승부의 최전선에서 열정을 불살라온 어른이 보기에는 ‘시간 낭비가 누적되면 그게 인생 낭비’에 다름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와서 매우 반박하기 어려운 명제가 됐다. 퍼거슨이 트위터를 한심한 짓거리 정도로 치부했던 2011년에는 그래도 반론에 써먹을 레퍼런스가 적지 않았다. 월가 점령 시위나 아랍의 봄처럼, 권위적인 지도자나 조직적인 계통 없이 소셜미디어의 수평적인 온라인 커뮤니케이션만을 활용해 일사불란하게 결사하는 시민운동을 목격하면서 희망을 논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기실 소셜미디어의 본질은 전통적인 미디어와 기성 정치의 작동 방식에서 벗어나 집단 지성의 의지를 네트워크에 직렬로 관철하는 소통의 민주화에 있었으니, 이 기특한 플랫폼들이 민주사회로 진격하는 문명의 발판이 되리라는 꿈에 달뜨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좋아요’가 눌린 트윗 2위에 올라 있는 일론 머스크의 2022년 4월28일 트윗. “다음에는 코카콜라를 사서 코카인을 다시 넣어야지”라고 쓰여 있다. 엑스 갈무리

역사상 가장 많은 ‘좋아요’가 눌린 트윗 2위에 올라 있는 일론 머스크의 2022년 4월28일 트윗. “다음에는 코카콜라를 사서 코카인을 다시 넣어야지”라고 쓰여 있다. 엑스 갈무리




헛발질할 때마다 추가되는 ‘퍼거슨 1승’







그러나 지난 10여년간 우리가 확인한 것은 타인의 허물을 증폭하여 조리 돌리고 종국까지 물어뜯는 국제적인 집단 린치와 마녀사냥의 일상화, 누구보다 커뮤니티 문법을 능숙하게 활용하여 기득권 언론과 정당을 농락하고 집권까지 나아간 극우 포퓰리즘의 발호, 역사상 가장 주의가 산만하고 충동에 취약하며 정신 건강이 위태로운 현생 인류의 등장과 같은 일들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런시먼은 소셜미디어의 작동 방식이 고대의 직접 민주주의와 많은 공통점을 갖지만, 구조적으로 장점은 없고 단점만 빼다 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직접 민주주의는 관리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이 체제는 세심하게 통제된 조건하에서만 성공한다. 유사시 행사될지 모를 폭력의 위협을 포함해 사람들의 충동적 행위를 단속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이는 대단히 고된 작업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사는 네트워크 사회는 수많은 상생 기업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형성되고, 온라인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며, 심지어는 이들의 충동적 행위 때문에 분열될 수 있으므로 직접 민주주의의 성공 조건에 맞지 않는다.”(‘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데이비드 런시먼, 최이현 역, 아날로그, 218쪽)



“트위터는 시간 낭비”라는 견해를 남기고 2년여 뒤 감독직에서 물러난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통산 승률은 약 60%, 26년간 각종 대회에서 쟁취한 우승컵은 38개에 이른다. 그의 통찰을 숭배하는 한국에서는 상술했듯, 누군가 인터넷에서 헛발질할 때마다 “퍼거슨 1승 추가”라는 관용구를 쓴다. 명장의 승수는 은퇴한 지 십수 년이 지났어도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된다. 일론 머스크가, 도널드 트럼프가, 칸예 웨스트가 트위터, 아니 엑스에 접속할 때마다 승수가 쌓일 것이다. 이 승리는 퍼거슨 본인이 영광으로 여길 리도 없을뿐더러 결과적으로 인류가 거대한 패배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징후이므로, 상처뿐인 것이다.





박강수의 허언록은?



곡해, 도용, 날조, 과장, 오역 등 비틀린 말의 사정을 추적하는 에세이입니다. ‘잘못 알려진 명언’의 말 못 한 사정을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박강수의 허언록(https://www.hani.co.kr/arti/SERIES/3309?h=s)에서 읽어보세요!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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