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주스님과 조계사 대웅전의 신중도 |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절에 가면 통상 대웅전 중앙의 불상, 즉 부처에게 주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측면을 살펴보면 개성 있는 캐릭터를 담은 불화를 발견할 수도 있다. 전등사 대웅보전에는 몸에 붙은 8개의 팔에 칼·방망이·종 등 다양한 도구를 들고 3개의 얼굴로 정면과 좌우를 동시에 주시하는 요괴 같은 캐릭터와 험상궂거나 화려한 모습의 인물이 함께 등장하는 불화가 있다. '강화 전등사 신중도'(神衆圖)의 모습이다.
신중은 통상 불교를 수호하는 신들의 무리를 말한다. 신중의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신중도다. 신중도는 신중탱, 천룡탱, 제석천룡탱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강화 전등사 신중도 |
국보나 보물은 아직 없지만 국가유산포털에서 검색하면 등록 명칭에 '신중도'가 들어가는 국가유산은 100개에 육박한다. 절에서는 매월 음력 초하루부터 사흘간 신중 기도를 올릴 만큼 신중 신앙은 보편적인 의례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도 신중에 관한 연구는 부처나 고승 등에 비해 미진한 상황이다. 560여점의 신중도를 탐구·검토한 결과를 토대로 최근 단행본 '신중도의 세계'(불광출판사)를 출간한 현주스님을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주스님은 "신중에 대한 예경이 한국 불교에서 계속 이뤄지고 있음에도 전문적인 연구가 안 됐다"며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하고 있는 것이라서 한번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신중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를 들려줬다.
신중 신앙은 초기 불교가 고대 인도 신화의 신들을 수용하면서 형성됐다. 창조신 브라흐마는 불교에서 범천(梵天)으로 거듭났다. 신들의 왕인 인드라는 제석천(帝釋天)으로, 전쟁의 신인 스칸다는 위태천(韋太天)으로 불교화했다. 이후 불교는 동아시아로 전파되며 더 많이 받아들인다.
'신중도의 세계' 출간한 현주스님 |
신중 신앙은 18세기 조선에서 전환기를 맞이했다. 불법을 지키는 호법선신 외에 뒷간(화장실)을 담당하는 청측신(圊厠神), 우물을 수호하는 주정신(主井神) 등 이름도 흥미로운 토속신들이 추가돼 104위의 신을 예경하는 신중신앙으로 정비된 것이다.
불교에서는 신들이 윤회의 사슬을 끊고 완전한 자유를 성취한 부처와는 다르다고 본다. 이들은 거룩한 존재이며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보유했지만, 윤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신들은 인간처럼 욕망을 지니고 있으며 욕망을 주관하는 존재로 인식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신중에게 소원을 빌고 있다.
그런데 불교는 수행을 중시한다. 그래서 기복(祈福)을 지양해야 할 대상으로 치부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현주스님은 이런 부정적 시선에 의문을 제기한다.
범어사 대웅전 신중도 |
"연구해보니 기복 신앙이라는 것이 종교의 기본적인 토대이며 석가모니 부처님도 경전에서 강조했던 신앙이에요. 기복이 대중 친화적인 불교로 나아갈 수 있는 큰 자산이라는 점을 잘 알아야 할 것입니다."
현주스님은 신중이 부처와 대중을 이어주고, 대중이 눈높이에 맞게 불교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존재이기도 하다고 풀이했다.
"신중이 불교에서 약간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요. 만약에 불교가 너무 엄숙하거나 너무 고차원적인 이야기만 하면 서민들이 다가갈 수가 없겠죠."
연구 과정은 지난했다. 현주스님은 "불교 미술은 대체로 근거를 경전에서 찾는데 데 신중은 경전만을 근거로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신중도를 알기 위해서 타 종교 경전이나 문학도 살펴야 했다.
그래서 '신중도의 세계'는 '아함경' 같은 초기 불교 경전은 물론이고 도교 경전인 '옥추경'(玉樞經), '서유기'·'삼국지연의' 같은 중국 문학 작품, '만소당화전' 같은 화보 등에서 신중도의 모티브나 이에 영감을 준 도상의 기원을 찾는다.
보문사 신중도 |
예를 들어 호랑이 수염을 기르고 장팔사모(丈八蛇矛)를 휘두르는 장비는 청나라 소설가 모종강(毛宗崗) 본 '삼국지연의'에 삽화로 나온다. 이 그림에서 장비는 허리를 숙이고 예의를 갖춰 인사하는 읍(揖) 자세로 유비에 대한 충성심을 드러내고 있다. 장비의 비슷한 이미지는 1905년 제작된 벽련암 신중도에서 처음 나타나고 용주사 대웅보전 신중도(1913년), 해인사 백련암 신중도(1937년) 등에서 반복된다.
신중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전각에 예경하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 등 타국에서는 유래를 찾기 어려운 한국 불교만의 독특한 모습이라고 스님은 강조했다. 그만큼 독자적인 콘텐츠로서의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다.
현주스님은 "지금 한국 문화가 콘텐츠로서 세계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한국 불교의 특성이 잘 드러나는 신중 신앙을 잘 조명하면 이 역시 문화 콘텐츠로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 표지 이미지 |
신중도의 신들은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캐릭터 못지않게 개성 넘치는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스님은 104위 중 하나인 귀자모신(鬼子母神)이 개과천선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본래 아이를 잡아먹는 악귀였는데 100명에 달하는 자기 아이는 애지중지 아꼈다고 한다. 어느 날 부처가 막내아들을 발우 속에 숨기자 귀자모는 아이를 찾아달라고 애원한다. 부처는 '네 자식은 귀하게 생각하면서 왜 남의 자식을 잡아먹느냐'고 꾸짖는다. 깨달음을 얻은 귀자모는 어린이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불법에 귀의해 아이를 보호하는 신이 된다.
조계사 신중도 앞에 선 현주스님 |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 같은 마블 영화에 나오는 영웅들은 개개인의 서사가 있잖아요. 그러다가 나중에 팀으로 위기 상황에서 활약하는데, 신중 신앙의 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들이 개성 있는 신화를 다 가지고 있어요. 이들이 불교라는 세계, 특히 한국에서 신중 104위라는 '불교식 어벤져스'를 결성한 셈이죠."
sewon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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