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완 서강대 교수 |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현지를 다녀보면 마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버려진 우물이다. 아프리카의 식수 문제는 익히 알려진 대로 현재까지 심각하다. 그런데 왜 이미 만들어진 우물조차 활용되지 못하는 걸까. 이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먼저 개발협력사업의 행위자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발협력사업은 여러 행위자가 참여해 진행한다. 공여국 정부, 수원국 정부, 국제기구, 비정부기구 등이 대표적인 참여자이다. 하지만 이들보다 훨씬 중요한 참여자가 있다. 바로 주민이다. 주민은 개발협력사업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는 수혜자지만, 개발협력사업의 실행과 성공을 위한 주요 파트너이기도 하다. 주민은 보통 주민조직을 통해 개발협력사업에 참여한다.
우물물 긷는 차드 주민들 |
주민이 참여하지 않거나 주민조직이 중심이 되지 않는 개발협력사업은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 먼저 개발협력사업의 토대가 되는 주민의 필요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개발협력사업이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을 지녔기에 주민의 필요나 의견이 당연히 반영되겠거니 생각하겠지만, 놀랍게도 많은 개발협력사업은 때때로 주민의 필요나 의견을 간과한 채 진행된다.
잘 알려진 사례 중 하나가 고산지대 주민들을 위해 산 아래 집을 지어 주는 거주지 개선 사업이다. 한 비정부기구(NGO)는 주민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주거지를 짓기로 하고 펀딩을 진행했다. 하지만 산 위에 새로운 주거지를 짓기에는 펀딩이 충분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 기술적인 문제까지 직면해야 했다. 결국 단체는 산 아래 집을 새로 짓기로 했다. 좋은 주거지가 완성되면 주민이 산 아래로 내려와서 살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주민의 선택은 그들의 기대와 달랐다. 막상 거주지가 완성되자 아무도 내려와서 살지 않았다. 대신 주민들은 산 아래 거주지의 자재들을 뜯어서 원래 있던 집의 보수 공사에 사용했다. 주민들은 이미 산 위의 기후에 익숙해져 있었고 산 위에 농사를 위한 터전도 있었던 터라 한두 시간씩 걸려서 산 아래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주민이 중심이 되지 않고 주민조직이 참여하지 않은 개발협력사업은 이렇듯 실패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주민의 생활이 개발협력사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만 좋아진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온 외부 단체는 마을 주민의 삶을 상당히 개선할 수 있는 재정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병원이나 학교를 세워 사회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고, 소득증대사업 등을 통해 주민의 소득을 높일 수도 있다. 하지만 외부 단체는 마을이나 지역에 영원히 머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협력사업을 진행할 때는 반드시 사업이 끝나는 시점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주민이 지속적으로 해당 사업을 이어서 진행하거나 시설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만 효과가 있을 뿐이다.
아프리카에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선진국의 많은 단체는 수많은 우물을 팠다. 적은 예산을 사용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효과성이 좋은 모델이었다. 우물이 설치되면, 주민들은 기뻐했고 아이들은 수용성 질병에 더는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우물은 꾸준히 관리해 주지 않으면 3∼5년 사이에 고장이 난다. 우물을 파줬던 단체들이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전달해줬지만, 장기간 관리를 해주지는 않았다. 결국 수많은 우물은 단기간 사용되고 고장이 나서 사용할 수 없다. 아프리카 현지에 수만 개의 버려진 우물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까지 아프리카에서 사용되고 있는 우물은 주민이 스스로 관리했던 우물뿐이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우물은 탄자니아 한 마을의 주민들이 일정한 사용료를 내는 우물이다. 주민조직이 사용료를 활용해 관리하기에 오랜 시간 동안 사용이 가능했다.
탄자니아 마을의 우물 |
이번 에티오피아 현장 조사는 이러한 주민조직의 역할과 영향력을 연구하기 위해서 진행됐다. 아디스아바바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아르시라는 곳의 마을을 방문해 주민조직 구성원과 주민을 직접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간 아프리카 마을 주민이 개발협력사업에 주도적 역할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는 선진국에서 온 연구자의 학문적 예상과 편견일 뿐이었다. 주민은 잘살고자 하는 의지를 강하게 갖추고 있었다. 외부 도움에 의지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조차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외부의 도움이 사라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입을 모아 자신들의 주민조직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물론 전문가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됐으나 이 역시 필자가 가진 선입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들의 의지는 부족한 역량을 뛰어넘을 정도라는 점이다.
이번 현장 연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한 주민의 가정에 방문했을 때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 주민은 우리를 열렬히 환영해줬다. 마치 집을 나갔다 돌아온 아들을 만난 듯 모두를 반기며 뜨겁게 안아줬다. 비록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의 포옹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마을에서 진행된 소득증대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수입을 거뒀다고 했다. 사업 참여 이전에는 다른 주민들처럼 매 끼니를 걱정하던 절대빈곤의 삶을 살다가 소득증대사업의 수입을 기반으로 지역에서 상당한 규모의 사업을 운영하는 사업가로 다시 태어났다고 했다. 그의 장기적인 성공에는 주민조직의 일원이자 개발협력사업의 행위자로서 주도적으로 사업에 참여한 경험이 깔려 있다. 사업가로서의 그는 이제 마을 주민을 고용하면서 자신이 이룬 성공의 열매를 나누고 있었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순간은 그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염소 한 마리를 필자에게 선물로 줬을 때다. 나름 성공한 사업가라고 해도 그곳에서 염소 한 마리는 큰 재산이다. 처음 본 외국인에게 자신이 받은 것을 조금이나마 되갚기 위해 자기 재산을 선뜻 선물하는 그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 비록 한국으로 가져올 수는 없었으나 필자의 이름을 붙여주며 다음에 다시 만날 때까지 잘 키워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을 다닐 때, 특히 도시가 아닌 이런 시골 마을을 다닐 때 따뜻한 마음을 지닌 분들을 고맙게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것은 없더라도 타인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짓는 미소는 그 무엇보다 아름다웠다.
선물 받은 염소와 필자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완 교수
현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 아이오와대학(University of Iowa) 정치학 박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샌디에이고(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 개발협력 석사,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사회과학단 전문위원(2022∼2024), 현 외교부 무상원조관계기관 협의회 민간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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