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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의 말과 글] [426]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

조선일보 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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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자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보다 공포스러웠다. 내가 나임을 증명할 모든 게 사라진 기분이었다. 마셜 매클루언이 말했듯 미디어는 인간 신체의 확장이 됐고, 이제 스마트폰은 우리 손의 일부가 됐다. 그런데 이 확장된 신체는 완벽하다. 한 번의 터치로 모든 게 작동한다. 현실 세계에는 없는 이 부자연스러운 매끄러움이 문제의 시작이다.

현실은 울퉁불퉁하다. 신발 끈은 이유 없이 풀리고, 우산은 바람에 뒤집어지고, 지퍼가 중간에 걸리는 게 우리가 사는 진짜 세계다. 그런데 디지털은 마찰을 제거하는 게 목표다. 옛날에는 편지를 쓰려면 펜을 찾고 종이를 꺼내 쓸 말을 고민했다. 이 모든 과정이 마찰이지만 그 덕분에 더 신중하게 썼다. 지금은 카톡으로 “ㅋㅋ”을 보내는 데 1초도 걸리지 않으니 별생각 없이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런 종류의 매끄러움은 뇌에 비정상적인 도파민을 분비시킨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중독되는 건 그 안에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안락한 편리함이 있기 때문이다.

해법은 없을까. 의도적으로 디지털에 현실의 불완전함을 이식하면 어떨까. 가끔 앱이 2~3초 지연되게 하고, 버튼을 꾹 눌러야만 작동하게 하고, 검색할 때 ‘정말 이게 필요한가요?’라고 3초간 멈춰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완벽한 추천 대신 “다른 것도 시도해 볼까요?”라고 제안하는 알고리즘은 어떨까. 아이들에게는 ‘AI에 도움받기 전에 세 번 틀리기 챌린지’를 주고, 실패를 포켓몬처럼 수집하는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기술을 거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기술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 수는 있다.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을 찾는 일본의 ‘와비사비(侘寂)’ 철학이나 역경을 통한 성장인 핀란드의 ‘시수(sisu)’처럼 디지털이 없애고 있는 우연, 실패, 마찰, 기다림을 다시 새겨 넣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혁신은 모든 걸 매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울퉁불퉁함을 되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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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영옥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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