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미술관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전 공식 포스터. [사진 서울미술관] |
천경자 화백이 49세가 되던 해에 완성한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종이 바탕에 채색, 130x162㎝). 코끼리 등에 엎드려 있는 여인의 모습에 작가의 쓸쓸한 내면이 투영돼 있다. [사진 서울미술관] |
“화가 천경자는/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멀리할 수도 없다/(···)/그는 좀 고약한 예술가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는 시 ‘천경자를 노래함’에서 화가 천경자(1924~2015)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대담한 의상을 걸친 천경자를 보면 “원색을 느낀다”며 “그의 언어를 시적이라 한다면 속된 표현(으로) 아찔하게 감각적”이라고 했다. 박경리의 눈에 천경자는 매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들쑥날쑥한”, 말하자면 ‘튀는’ 자유주의자였다. 오랜 세월 그의 작품이 폭넓게 사랑 받아온 이유도 화폭에서 전해지는 그 ‘자유로움’ 때문이 아닐까.
서울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 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가 지난 24일 개막해 내년 1월 15일까지 이어진다. 1940년대 후반 초기작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천경자의 화업 중 가장 주요한 장르인 채색화 80여 점과 150여 점의 삽화와 사진 등을 한자리에서 소개한다. 2006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작가의 생전 마지막 개인전 ‘내 생에 아름다운 82페이지’ 이후 최대 규모다.
천경자는 채색화를 통해 독창적인 화풍을 이룩하고 시대를 개척한 예술가였다. 1941년 광주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를 나온 뒤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를 졸업한 그는 44년 모교 미술 교사로 부임해 창작을 이어가며 조선미전 입선을 통해 작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54년 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임용됐으며, 46세 때부터 13회에 걸쳐 세계 여행을 떠난 ‘자유인’이었다. 20권 가량의 에세이, 여행기를 출간한 ‘글쟁이’이기도 했다. 그는 1998년 자신의 작품 90여 점과 저작권 일체를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전시는 천경자의 대표작이자 서울미술관 소장품인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로 시작된다. 작가가 만 49세에 그린 것으로, 평화로운 아프리카 초원에 나체의 여인이 코끼리 위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2018년 경매에서 국내 여성 작가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20억원에 낙찰된 채색화 ‘초원Ⅱ’(1978)도 전시에 나왔다.
1955년 제7회 대한미협 전람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정(靜)’도 눈길을 끈다. 붉은 화면에 해바라기를 배경으로 검은 고양이 안은 소녀의 모습이 강렬하다. 천경자를 대표하는 ‘미인도’도 여러 점 나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여성 초상화’라는 표현을 내세웠다.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 중 하나인 1974년작 ‘고(孤)’, 천경자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걸로 추정되는 시인 노천명(1912~57)을 그린 ‘노천명’(1973)도 볼 수 있다.
‘천경자’란 이름 뒤에는 이른바 ‘미인도 위작 사건’이 따라다닌다. 그는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한 ‘미인도’가 ‘내가 그린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고, 법정 다툼까지 이어졌다. 안병광 서울미술관 회장은 23일 이 사건을 거론하며 “더는 위작 논란의 테두리 안에 그를 가둬서는 안 된다. 직접 와서 눈앞의 작품을 통해 천경자의 일대기를 만나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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