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發 허위 제보, 정치권서 확대재생산>
①김어준 '정치인 암살' 음모론, 혼란 부추겨
②문형배 '음란물 댓글' 루머에 휘둘린 국힘
③'尹·한동훈 청담동 술자리' 의혹, 1심 패소
"가짜뉴스 생산자 엄벌만으로는 해결 안 돼"
"정치인·유튜버 간 전략적 공생관계 끊어야"
최근 들어 가장 격한 정치적 공방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은 역시 ‘조희대·한덕수 대선 개입 오찬 회동 의혹’이다. 발단은 한 진보 계열 유튜브에서 소개한 익명 제보였다. 올해 5월 10일 친(親)민주당 성향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는 “제보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며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 비공식적으로 만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 대해 비밀리에 논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무렵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영상 일부 내용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언급했지만 파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달 16일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 때 공식적으로 인용하면서 메가톤급 사안으로 비화했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거세게 요구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별다른 근거가 없었다. 열린공감TV는 “확인되지 않은 제보였다”고 얼버무렸다. 대여 공세의 빌미를 잡은 국민의힘은 해당 유튜브 영상이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된 가짜 음성’에 기반해 있다며 서 의원과 부 의원 등을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본격적인 공론화 사흘 만인 19일,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혹을) 처음 거론한 분들이 해명해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추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슬그머니 발을 뺐다. 집권당이 ‘미확인 루머’에 기대어 사법부 수장에게 ‘물러나라’고 한 꼴이 됐다. 일부 의원이 “조 대법원장은 (한덕수 회동설과 상관없이) 이 대통령 형사 사건 상고심 처리(이례적으로 신속한 유죄 취지 파기환송)만으로도 대선에 개입하려 한 것이다. 사퇴가 마땅하다”는 주장을 폈으나 힘은 실리지 않았다. 현재로선 싱거운 결말이 됐고, 민주당은 체면만 구겼다.
①김어준 '정치인 암살' 음모론, 혼란 부추겨
②문형배 '음란물 댓글' 루머에 휘둘린 국힘
③'尹·한동훈 청담동 술자리' 의혹, 1심 패소
"가짜뉴스 생산자 엄벌만으로는 해결 안 돼"
"정치인·유튜버 간 전략적 공생관계 끊어야"
조희대 대법원장이 25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여권으로부터 자진 사퇴 압박을 받는 조 대법원장은 이날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헌법은 재판의 독립을 천명하고 법관의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스1 |
최근 들어 가장 격한 정치적 공방을 불러일으켰던 사안은 역시 ‘조희대·한덕수 대선 개입 오찬 회동 의혹’이다. 발단은 한 진보 계열 유튜브에서 소개한 익명 제보였다. 올해 5월 10일 친(親)민주당 성향 유튜브 채널 열린공감TV는 “제보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며 ‘조희대 대법원장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직후 비공식적으로 만나 이재명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에 대해 비밀리에 논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무렵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 영상 일부 내용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언급했지만 파장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달 16일 부승찬 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질문 때 공식적으로 인용하면서 메가톤급 사안으로 비화했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자진 사퇴를 거세게 요구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별다른 근거가 없었다. 열린공감TV는 “확인되지 않은 제보였다”고 얼버무렸다. 대여 공세의 빌미를 잡은 국민의힘은 해당 유튜브 영상이 ‘인공지능(AI)으로 제작된 가짜 음성’에 기반해 있다며 서 의원과 부 의원 등을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 본격적인 공론화 사흘 만인 19일,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혹을) 처음 거론한 분들이 해명해야 한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다른 민주당 의원들도 추가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며 슬그머니 발을 뺐다. 집권당이 ‘미확인 루머’에 기대어 사법부 수장에게 ‘물러나라’고 한 꼴이 됐다. 일부 의원이 “조 대법원장은 (한덕수 회동설과 상관없이) 이 대통령 형사 사건 상고심 처리(이례적으로 신속한 유죄 취지 파기환송)만으로도 대선에 개입하려 한 것이다. 사퇴가 마땅하다”는 주장을 폈으나 힘은 실리지 않았다. 현재로선 싱거운 결말이 됐고, 민주당은 체면만 구겼다.
이처럼 정치인이 출처가 불분명한 의혹을 공식 석상에서 기정사실인 양 제기했다가, 허위 사실로 판명되는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극단적 정치 성향을 가진 유튜브 채널이 지지층을 손쉽게 결집시킬 수 있는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 뚜렷해졌다. ‘유튜브발(發) 카더라’ 식의 허위 제보가 정국을 뒤흔들었던 대표적 장면들을 되짚어 봤다. 이를 근절하기 위한 근본적 또는 현실적 해법도 함께 모색해 봤다.
방송인 김어준(왼쪽 두 번째)이 지난해 12월 13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현안 질의에 츨석해 '우방국 대사관'에서 제보를 받았다며 '한동훈 암살조' 주장을 펴고 있다. 사진=고영권 기자·그래픽=김대훈 기자 |
김어준에 판 깔아준 민주… 허위 알고도 '침묵'
12·3 불법 계엄 직후 방송인 겸 유튜버 김어준이 제기한 ‘한동훈 암살조’ 의혹은 검증을 안 거친 음모론이 국회까지 장악해 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킨 대표적 사례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안 표결 전날이었던 지난해 12월 13일, 김씨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안 질의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정치인 암살조를 비롯한 계엄 세력의 공작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비상계엄 당시 계엄군이 체포된 한동훈을 사살하고 이를 북한의 소행으로 공작하려 했다”는, 꽤 구체적이고도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정보 출처에 대해선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했다.
김씨에게 판을 깔아준 건 민주당이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KBS 및 관계 기관의 역할에 대한 현안 질의를 진행하며 김씨를 참고인으로 선정했고, 최민희 국회 과방위원장이 직접 그를 상대로 질의했다. 김씨는 이 자리에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우르르 쏟아낸 뒤, 제보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선 ‘민주당 국방위 위원들에게 문의하라’며 자리를 떴다. 4성 장군 출신인 김병주 민주당 최고위원은 김씨 발언과 관련, “사실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사진 왼쪽)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유튜브에 출연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
김씨 폭로의 파장은 컸다. 하지만 얼마 안 돼 ‘신빙성 낮은 허위 사실’로 판명됐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즉각 “미국 정부에서 나온 정보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국방부도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특히 민주당조차 국회 국방위원회 내부 검토 문건 등에서 ‘김씨 주장의 신빙성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해당 문건에는 △과거의 제한적 지식을 가진 사람이 △정보 공개가 제한되는 기관의 특성을 악용해 △일부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상당한 허구를 가미해 구성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만 당시 민주당은 내부적으로 ‘허구’라고 판단했음에도, 대외적으로는 말을 아끼는 모순적 태도를 취해 빈축을 샀다. 윤석열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언론개혁시민연대마저 민주당을 겨냥해 “시민 불안을 가중시킬 말을 검증 없이 공론장에 올렸다”고 비판했다. 성명에는 ‘국회를 카더라 통신 수준으로 전락시켰다’는 직격까지 담겼다.
국힘, 합성물에 속아 문형배 공격… 유체이탈 사과만
정치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확성기’로 기능하기도 한다. 지난 2월 ‘문형배 (당시)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미성년자 음란 게시물에 댓글을 달았다’는 가짜뉴스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 언급하면서 급격히 확산됐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과거 음란성 온라인 게시물에 댓글을 단 것처럼 조작한 이미지(왼쪽 사진). 오른쪽은 그에 앞선 2월 11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원본'으로 문 전 대행의 댓글은 고교 동창회 게시판 내 끝말잇기 놀이와 관련한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
헛소문의 시작점은 보수 성향 커뮤니티였다. 2월 11일 디시인사이드의 한 게시판에는 문 전 대행의 모교인 경남 진주 대아고 동문 카페에 음란물이 게시됐다는 내용과 함께, 문 전 대행이 2009년 동창회 끝말잇기 게시판에 단 댓글 원본과 미성년자 음란물로 추정되는 사진을 합성한 조작 이미지가 유포됐다. 가로세로연구소, 고성국TV 등 극우 유튜버들은 곧바로 이 합성 게시물을 검증 없이 인용하며 문 전 대행을 겨냥한 공세의 땔감으로 삼았다.
설상가상 국민의힘 현직 의원들도 가세하면서 가짜뉴스 확산엔 불이 붙었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2월 12일 페이스북에 해당 내용을 공유하면서 “의혹 내용이 사실이라면 문 권한대행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튿날 국민의힘 5선 중진인 나경원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최고 헌법 수호기관의 수장인 문 권한대행이 미성년자 관련 음란물이 난무하는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했다”고 적으며 기름을 부었다. 같은 날 박민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이런 허위사실을 그대로 인용한 공식 논평을 냈고, 이를 기성 언론까지 받아 보도하며 의혹은 일파만파 커졌다.
해당 내용이 조작된 가짜뉴스였던 것으로 밝혀지자 국민의힘은 “사실관계 점검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드릴 부분”이라고 밝혔다. 가정을 전제로 한, 유체이탈식 사과였다. 또 한 번 거센 비판이 가해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 법원 "7000만 원 배상"
2022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튀어나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관련 의혹도 빼놓을 수 없는 사례다. ‘제보를 받았다’며 이를 공론화했던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은 최근 한 전 대표가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해 7,000만 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한동훈(왼쪽 사진) 전 국민의힘 대표와 김의겸 새만금개발청장. 연합뉴스·뉴스1 |
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던 김 청장은 한 전 대표(당시 법무부 장관)와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2022년 7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고급 술집에서 김앤장 변호사 30명과 동석해 술자리를 가졌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김 청장은 친민주당 성향 유튜브 채널 ‘더탐사’가 제공한 녹취를 근거로 공개했다. 해당 술자리에 동석했다는 첼리스트 여성과 그의 전 남자친구 이모씨의 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였으나, 이후 경찰 조사에서 여성은 자신의 증언을 번복했다. 의혹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한 전 대표는 그해 12월 김 청장과 더탐사 관계자, 이씨 등을 명예훼손으로 형사 고소하고 1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13일 “김 전 의원과 강진구 더탐사 대표 등 5명은 공동으로 7,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내렸다. 선고 직후 한 전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검토 등 가짜뉴스 엄단 의지를 밝혔는데, 이 사안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며 “민주당의 진솔한 사과를 바란다”고 쏘아붙였다.
김 청장과 더탐사 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힌 상태다. 이들은 “첼리스트 여성은 친오빠, 기자와의 통화에서 ‘보도 내용은 사실인데 국민의힘에서 입을 다물라고 한다’ ‘증거가 없어 거짓말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얘기했다. 관련 녹취 파일도 있지만, 1심은 그의 경찰 진술만으로 의혹을 허위로 판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치적 계산 따라 음모론 증폭… 정치 문화 개선을"
음지에서 떠돌던 허위 제보나 음모론이 어느 순간 기정사실화하는 과정에는 일종의 ‘패턴’이 있다. ①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생산된 ‘카더라’ 식의 허위정보가 정치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확대재생산되고 ②정치인의 공식 발언이나 SNS를 통해 인용되면서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부여받은 뒤 ③이를 기성 언론이 다시 받아적으면서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진영에 유리한 유튜브 채널 익명 제보를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하며 힘을 실어 준 결과다.
노종면(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 간사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언론개혁 관련 기자설명회를 하고 있다. 뉴스1 |
여당은 ‘허위조작정보 퇴출법’을 추진해 이 문제에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언론개혁특별위원회가 추진 중인 이 법안엔 정보통신망법을 개정해 고의적인 허위보도에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고, 기존 언론사뿐 아니라 유튜브 등 1인 미디어도 규제 대상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다만 언론계 안팎에선 ‘취지는 인정하지만, 오직 처벌을 목적으로 한 졸속 입법은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방송통신심의위원을 지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기존 언론사만이 아니라 유튜브 창작자에게도 책임을 묻기 위해서는 언론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부터 정의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런 과정 없이 오직 ‘규제’에 방점을 찍은 상태로 법이 추진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허위조작정보의 개념 역시 모호해서 이것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의할 것이며, 사실과 의견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갑론을박이 여전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언론 단체들도 지난 6일 “권력층의 악용 가능성에 대한 대안 없는 입법은 동의할 수 없다. 밀어붙이기식 속도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진짜 문제는 정치인들에게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짜뉴스 생산자 엄벌’로 막으려는 접근보다는 온라인 공론장을 망치고 있는 정치인들의 낮은 책임 의식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심 교수는 “허위조작 정보 퇴출법이 시행되더라도, 온라인에서 퍼지는 터무니없는 음모론을 하나하나 규제할 수는 없다”며 “결국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특정 음모론과 허위정보를 골라 이를 마치 사실인 양 증폭하고 있는 정치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을 그는 이렇게 진단했다. “최근 몇 년간 정치권이 극단화된 팬덤에 의존하다 보니, 정치 유튜버들과 제도권 정치인들의 은밀한 공생 관계가 더 단단해졌어요. 당장 법을 제정하면 일부의 입을 막을 순 있어도, 정치 문화 자체가 안 바뀌면 허위정보가 ‘정치인의 권위’를 통해 힘을 얻는 현상은 반복될 겁니다.” 가짜뉴스의 최초 생산보다는 ‘확대재생산’이 더 심각한 병폐라는 뜻이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