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탄산음료 광고. 평범한 사람은 하루에 15번 웃는다. 포장도로에 누워 있는 거대한 고릴라. 꿈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현실을 받아들여라. 공허하고 비참하다 곪아 터져 벌어진 상처 같은 인생. 너무 뻔한 삐뚤어진 이상한/엉뚱한©. 아트. 길거리 산책. 먹는 행위 접시 위 음식을 우아하게 차려내는 행위 허상.
스물여덟 살에 요절한 미국의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가 남긴 노트북(공책)에 적힌 문장들이다. 그는 미술가로 활동한 단 8년 동안 3700여 점의 작품과 총 8권의 노트북을 남겼다.
바스키아전 11개 섹션 중 ‘단어의 신전’ 섹션 가보니
경매가 160억원의 ‘왕이라 불린 에이원(A-One)의 초상’(1982). [사진 바스키아 재단] |
탄산음료 광고. 평범한 사람은 하루에 15번 웃는다. 포장도로에 누워 있는 거대한 고릴라. 꿈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미국에서 살아간다는 현실을 받아들여라. 공허하고 비참하다 곪아 터져 벌어진 상처 같은 인생. 너무 뻔한 삐뚤어진 이상한/엉뚱한©. 아트. 길거리 산책. 먹는 행위 접시 위 음식을 우아하게 차려내는 행위 허상.
스물여덟 살에 요절한 미국의 아티스트 장 미셸 바스키아(1960~88)가 남긴 노트북(공책)에 적힌 문장들이다. 그는 미술가로 활동한 단 8년 동안 3700여 점의 작품과 총 8권의 노트북을 남겼다.
지난 23일 DDP에서 시작된 전시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2026년 1월 31일까지)은 그라피티(낙서처럼 그리는 거리미술)를 예술로 승화시킨 바스키아의 회화·드로잉 등 70여 점 작품이 소개되는 자리다. 스무 살의 바스키아가 그린 대표작 ‘뉴욕, 뉴욕, 1981’을 비롯해 1983년 제작된 대작 ‘플레시 앤드 스피리트, 1982-1983’, 자화상 중 하나인 ‘에슈, 1988’까지, 9개국에서 대여해온 작품들이 현대미술 거장의 작품 세계로 안내한다.
장 미셸 바스키아가 남긴 8권의 노트북에는 온갖 메모와 시구, 드로잉이 담겼다. 왕관, 인디언 천막, 흑인의 해골 같은 얼굴 등 훗날 바스키아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징들도 보인다. [사진 래리 워시] |
그중 흥미로운 것이 바로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노트북 전시다. 총 11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전시 공간 중 ‘단어의 신전(TEMPLE OF WORDS)’ 섹션에서 이 8권의 노트북 가운데 153장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전시를 생전에 미리 생각해둔 것처럼, 바스키아는 일부러 노트북 뒷장을 비워서 각 페이지를 독립된 작품처럼 구성했다. 덕분에 한 장 한 장의 노트는 액자에 끼워져 전시 공간 사방 벽면에 걸려 있다.
미국의 국민 공책이라 불리는, 평범한 컴포지션(composition) 노트북에는 바스키아가 직접 작업한 온갖 메모와 시구, 드로잉이 뒤섞여 있다. 날짜가 없으니 일기는 아니고, 알파벳 대문자로 반듯 반듯하게(심지어 꽤 잘 쓴 글씨체로) 적은 문장들이니 낙서라 할 수도 없고, 드로잉보다는 글자가 더 많으니 스케치북도 아니다.
래리 워시(앞줄 오른쪽). |
바스키아 사후 8권의 노트북을 구매한 컬렉터 래리 워시는 “이 책은 일종의 에너지”라며 “그가 가장 신중하게 표현한, 사적이면서도 시적인 생각들의 모음집”이라고 소개했다. 실제로 노트북에는 왕관, 인디언 천막, 표지판, 흑인의 해골 같은 얼굴 등 훗날 바스키아의 작품에 등장하는 상징들이 들어 있다. 바스키아의 작품 중에는 노트북의 일부를 찢어 붙인 콜라주 작업들도 여럿 있다.
“바스키아의 재능과 정신이 페이지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세련된 디자인 감각뿐만 아니라 ‘말’의 중요성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끊어진 단어, 취소선이 그어지고 검게 칠해버린 단어들, 그리고 고쳐 쓴 문구들. 이 모든 것이 화가 바스키아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펼쳐지는 유희와 감정의 기복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워시는 “그렇다고 이 노트북을 단순히 회화 작업을 하기 이전의 밑그림 정도로 생각할 수도 없다”고 했다. “바스키아에게 노트북은 거리나 스튜디오에서 하는 작업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창작활동이었다. 노트북은 바스키아의 창작을 돕는 역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하나의 오브제 또는 작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바스키아가 죽고 얼마 안 된 1980년대 후반, 뉴욕의 로어 맨해튼의 애스터 플레이스에 살았던 워시는 평론가 르네 리카르의 소개로 이 노트북을 처음 접했다고 한다. “바스키아의 지인인 한 밴드 멤버가 갖고 있는 7권의 노트북을 보자마자 바스키아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직감했고, 바로 구매했다.” 또 다른 이가 갖고 있는 남은 1권의 노트북을 소유하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당시 8권의 구매 가격을 물었더니 “(현대)제네시스 차 가격보다는 아래였다(웃음)”며 “운이 좋았다”고 했다. 이후 워시는 2015년 브루클린 미술관을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진행된 바스키아의 ‘알려지지 않은 노트북’ 전시를 총괄 지휘했다.
바스키아의 대작 ‘무제’(1986). 153장의 노트북이 전시된 ‘단어의 신전’ 섹션에 전시됐다. [사진 바스키아 재단] |
미술품 컬렉터였던 삼촌의 영향으로 20대 초반부터 미술계에 관심이 많았던 워시는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일하는 등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의 작품을 수집했다. 그가 처음 바스키아 그림을 구입한 건 1982년 작품 ‘턱뼈(Jawbone)’였는데 당시 구입 가격이 1만 달러(약 1400만원)였다고 한다. 워시는 1984년부터 2012년까지 바스키아 작품의 진위 여부를 감정하는 ‘바스키아 입증 위원회(BASQUIAT authentication committee)’ 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현재 출판사 노 모어 룰러(NO MORE RULERS·NMR)를 운영하는 워시는 60여 명의 아티스트·뮤지션·건축가의 컬렉션을 갖고 있는데 바스키아, 키스 해링, 아이 웨이웨이, 카우스(KAWS), 다니엘 아샴 등이 대표적이다. 이번 ‘장 미셸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 작품 중 ‘화병(1982년)’과 ‘무제(재미있는 냉장고·1982년)’는 래리 워시 소장품으로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등이 협업한 작품이다. 미술품 구매 때 딜러를 통하지 않는다는 그에게 ‘좋은 미술품을 구매하는 방법’을 물었더니 “눈으로 사지 말고 스스로의 직관과 직감을 믿으라”고 했다.
전시된 노트북의 영문을 번역한 국문책은 전시장 숍에서 구매할 수 있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