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은 이정의 '풍죽도'가 걸린 전시 전경 |
(대구=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전시실 내 어두운 방에 들어서자 양옆으로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흩날리는 대나무의 모습이 영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정면에는 조명과 함께 당당히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대나무 그림이 걸려 있다. 바람에 휘어질지언정 꺾이지는 않는 모습이다. 한국 묵죽화(수묵을 사용한 대나무 그림) 최고 명작으로 손꼽히는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의 '풍죽도'(風竹圖)다.
이 그림은 5만원권 지폐 뒷면에 새겨져 있는 대나무 그림으로 유명하다. 5만원권 앞면에는 신사임당(1504∼1551) 초상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조선 중기 화가 어몽룡(1566∼?)의 '월매도'(月梅圖)와 이정의 풍죽도가 겹쳐 있다.
이정의 풍죽도 |
허용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총괄은 "이정 전에는 잘 그린 묵죽화를 보면 중국 북송 시대 최고 화가 문동의 작품과 비견해 평가했는데 조선 중기 이후로는 좋은 묵죽화에는 이정의 작품과 비견하는 글들이 많다"며 "조선 묵죽화의 기준이 된 것이 이정의 대나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작품은 이정의 그림과 시를 함께 엮은 시화첩 '삼청첩'(三淸帖)이다. 임진왜란(1592년) 때 왜적의 칼에 맞아 오른팔이 크게 다쳤던 이정이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고 무너진 조선의 자존과 사기를 북돋우고자 1594년에 완성했다.
검게 물들인 비단 위에 금니(아교에 개어 만든 금박 가루)로 매화와 대나무, 난초를 그려 넣었다. 여기에 당대 최고의 문인이었던 최립의 서문과 한석봉의 글씨까지 담겨 있다.
'삼청도도 - 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 전시 전경 |
한 시대의 정신을 담은 보물이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며 여러 차례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정이 세상을 뜬 후 삼청첩은 선조의 부마인 홍주원에게 넘어갔고, 병자호란을 겪으며 화재로 소실될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이 영향으로 일부 그을리거나 사라진 공란이 있다.
17세기에는 유학자 송시열이 책의 발문을 적다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검은 사선을 긋고 뒤에 다시 쓴 흔적도 있다.
19세기 말에는 외세 침탈 과정에서 일본군 함장 츠보이 코우소에게 넘어가 일본으로 반출되기도 했다. 코우소는 삼청첩을 구한 뒤 발문(跋文) 마지막 장에 이를 손에 넣은 경위를 적어 놓았다.
공란이나 그을린 자국, 코우소의 발문 등은 삼청첩이 오랜 세월 겪은 고초이자 우리 역사의 수난사와도 맞닿아 있다. 이런 상처를 포함해 삼청첩 56면 전면을 모두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선이 그어져 있는 삼청첩 발문 |
일본으로 넘어갔던 삼청첩은 1935년 간송 전형필이 당시 455원을 주고 구입해 조국으로 가져왔다.
전인건 간송미술관장은 "당시 경성에서 좋은 기와집 한 채가 1천원 했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서울의 좋은 집 반채 정도 가격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전시에서는 일제강점기 항일 지사들의 매·죽·난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진우의 창칼을 닮은 묵죽화와 항일독립군의 초석이 된 이회영, 대한광복회 회원으로 군자금 모금 활동을 벌였던 대구 출신 독립운동가 김진만 등의 삼청 작품이다.
전 관장은 "전쟁과 식민 시기 등의 국난을 문화로써 극복하려던 선조들의 결기를 보여주는 것이 이번 전시의 정신"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laecor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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