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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빠른 이야기를 가장 느리게 즐기는 SF 소설의 묘미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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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여는 글귀]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

편집자주

시집 한 권을 읽고 단 한 문장이라도 가슴에 닿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흔하지 않지만 드물지도 않은 그 기분 좋은 성공을 나누려 씁니다. '생각을 여는 글귀'에서는 문학 기자의 마음을 울린 글귀를 격주로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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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을 읽다 문득 웃음이 나왔던 적이 있다. SF 소설에서는 로봇과 AI와 안드로이드, 시공간을 넘나들고 심지어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다는 이야기가 가득한데, 이 모든 걸 작가는 아마 타이핑해서 썼을 테고, 출판사는 대부분 종이에 활자로 인쇄하고, 독자는 그걸 손에 들고 한 줄 한 줄 읽고 있다. 이 방법은 기원전 수메르의 점토판, 이집트의 파피루스,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직지심체요절'에서 이어져 온 방식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SF 소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빠른 이야기를 가장 느린 방식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SF 소설가로 첫발을 내딘 고선우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올해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은 그의 단편소설 '카나트'는 사막이 된 디스토피아가 배경인데요. 아직 마르지 않은 지하 수로 카나트에서 물을 길어 도시 상류층에 매일 공급하는 대기업 '오아시스'의 물 배달원으로 일하는 '아이작'이 주인공입니다. 15시간 넘는 사막 장거리 운전에도 갈증이 나지 않도록 아이작은 일부 장기와 팔다리를 로봇화하는 수술을 받아요. 하이브리드화 지수 테스트 결과 인간화 지수는 20%. 아이작의 인간 등록은 말소되고, 로봇 고유번호를 받게 됩니다.

오늘날 기술 수준을 훨씬 초월하는 이런 이야기를 저는 겨우 눈으로 따라잡는 속도로 읽었는데요. 어쩌면 SF 소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SF 소설의 묘미는 어쩌면 '느리게 즐길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라는 고 작가의 말처럼요.

그의 소설은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김초엽, 천선란, 청예 등을 배출하며 SF 작가 등용문으로 자리 잡은 한국과학문학상은 올해 재정비를 거쳤는데요. 이제 막 출발선을 끊은 신예 작가들에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고선우 이연파 최장욱 지음·허블 발행·216쪽·7,700원

2025 제8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고선우 이연파 최장욱 지음·허블 발행·216쪽·7,700원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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