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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으로 부국제 온 쥘리에트 비노슈… “로버트 레드포드 권유로 시작”

조선일보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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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영화제 찾은 쥘리에트 비노슈
배우 겸 감독 쥘리에트 비노슈가 25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줄리엣 비노쉬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배우 겸 감독 쥘리에트 비노슈가 25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줄리엣 비노쉬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2010년 제1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의 밤을 달군 ‘막춤’이 있었다. 그해 칸 영화제에서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사랑을 카피하다’로 여우주연상을 받고 방한한 쥘리에트 비노슈(61)가 광안리 뒤풀이 자리에서 선보인 화끈한 몸짓이었다. 비노슈는 김동호 당시 BIFF 집행위원장의 퇴임 송별 파티에서 아바(ABBA)의 노래 ‘댄싱 퀸’에 맞춰 온몸을 흔들며 열기를 끌어올렸다. 김 위원장도 두 손을 높이 들고 몸을 흔드는 ‘관광버스춤’으로 흥을 돋웠다.

지금도 회자되는 그날 밤의 열기 이후 15년, 감독으로 변신한 비노슈가 30회를 맞은 BIFF를 찾았다. 그의 첫 장편 연출작인 장편 다큐멘터리 ‘인-아이 인 모션(In-I in Motion)’이 초청작이다. 그가 2008년 영국 무용가 아크람 칸과 공연한 무용극 ‘인 아이(In-I)’의 제작 과정과 실제 공연을 담았다. “저는 언제나 재창조를 즐기고, 한계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2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이어 진행된 마스터클래스 행사에서 비노슈는 감독 데뷔 이유에 대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했다. “예술가를 끌어주는 천사는 직감이잖아요. 명확한 길이 보이지 않을 때도 내면의 소리와 저의 직감을 믿고 새로운 발견의 길로 뛰어들었죠.”

배우 겸 감독 쥘리에트 비노슈가 25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줄리엣 비노쉬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배우 겸 감독 쥘리에트 비노슈가 25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줄리엣 비노쉬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비노슈의 직감은 그를 대배우의 길로 이끌었다. 비노슈는 세계 3대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모두 받은 최초의 배우다. ‘세 가지 색: 블루’(1993)로 베네치아영화제, ‘잉글리시 페이션트’(1996)로 베를린영화제, ‘사랑을 카피하다’로 칸 영화제 시상대에 올랐다. ‘잉글리시 페이션트’로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도 받았다. 앙드레 테시네의 ‘랑데부’(1985)로 본격적인 연기를 시작해 40년간 약 70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뿐 아니라 TV, 연극, 무용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예술의 영역을 탐색해 왔다. 올해 칸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장도 맡았다.

그의 감독 데뷔작 ‘인-아이 인 모션’은 대배우와 대배우가 만나 탄생한 작품이다. 무용극이었던 ‘인-아이’를 영화로 만들어보라고 권유한 사람이 지난 16일 타계한 로버트 레드퍼드다. 비노슈는 지난 20일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하며 “2009년 미국 뉴욕의 ‘인 아이’ 공연 때 레드퍼드의 권유를 받고 영화화를 고민하게 됐다”고 밝혔다. 당시 비노슈의 분장실로 찾아온 레드퍼드가 “이걸 꼭 영화로 만들어보라”며 “꼭 해야 한다”고 거듭 권했다. 레드퍼드의 진심 어린 말에 감동한 비노슈는 “할게요, 꼭 할게요”라고 약속했다. 비노슈는 “그의 말이 내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며 “사진작가인 언니 마리옹에게 마지막 파리 공연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면서 영화화 여정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어느새 환갑을 넘었으나 15년 전 막춤이 보여준 열정은 그대로였다. 그는 이날 어떤 질문을 받아도 세세한 설명을 곁들여 가며 적극적으로 답했다. 긴 답변을 통역하는 통역사가 잠시 숨을 고르자 격려하듯 물을 따라주는 자상한 모습도 보였다.

자신의 한계에 대한 고백도 있었다. “‘인-아이’를 처음 연습할 때는 의외로 몸이 쉽게 움직여서 ‘나는 천재인가’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곧 깨닫고 어찌할 바를 몰라 숨도 쉴 수 없는 패닉 상태가 됐던 적도 있어요.” 그는 “참고 기다려준 아크람은 물론 저의 트레이너, 편집자 3명 등 많은 이가 도와줘서 영화가 가능했다”며 주위 예술가들에게 공을 돌렸다. “예술가는 끊임없이 창의성을 따라야 해요. 창의적으로 산다면 예술이 절 일으켜 세워서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데려가 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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