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불 투자, 통화스왑이 전제조건”...이 대통령 만난 베선트 반응은?

李, 외환시장 충격 우려 설명
베선트 “관련부처와 논의할것”

고집불통 러트닉에 협상 교착
월가 출신 온건파 베선트 만나
관세협상 돌파구 마련 기대

김용범 “통화스왑은 최소 장치
실제 조성까진 여러단계 필요”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왼쪽)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대통령은 관세협상에 대해 “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양국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다시 한번 상업적 합리성에 기반한 관세 합의를 강조한 것은 미국의 과도한 요구에 타협할 뜻이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이 요구하는 대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대부분을 현금으로 조성할 경우 외환시장이 엄청난 충격을 받아 제2의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베선트 장관의 만남 배경에는 대미 소통 채널을 다변화하기 위한 포석도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 시스템과 외환시장 생리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베선트 장관과의 소통을 통해 관세협상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이 대통령과 베선트 장관 간 면담 직후 미국 뉴욕의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한미 통상 협상의 주된 창구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 장관이지만, 협상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가 된 외환시장에 관한 문제의 주무장관은 베선트 장관”이라며 “대통령께서 베선트 장관에게 그 포인트(외환시장 충격)를 상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오늘 면담은)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협상의 중대한 분수령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선 한미 간 무제한 통화스왑과 관련해 한국 측 설명도 있었다. 김 실장은 “외환시장 관련 주무장관인 베선트 장관에게 직접 이 문제에 대한 설명을 했다”며 “대통령이 그 포인트(통화스왑)를 말씀하셨고, (미국 행정부 내) 여러 부처 장관 중에서도 선임인 베선트 장관은 충분히 경청했고 관련 부처와 논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전했다.

이날 만남에서 한국 정부 측 인사들은 무제한 통화스왑이 설정되지 않으면 3500억달러의 대미투자펀드 현금 출자 논의가 첫발조차 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실장은 “무제한 통화스왑은 필요조건”이라며 “그게 안 되면 우리나라에 미칠 충격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나아갈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통화스왑을 요구한 배경에 대해 “대출이나 보증이 대부분이라고 적어둔 한국 측 비망록과 미국이 양해각서(MOU)라고 보낸 문서에 판이한 내용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무제한 통화스왑이 설정된다 하더라도 미국이 원하는 현금 위주의 대미투자펀드 조성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김 실장은 “통화스왑 문제가 해결된다고 3500억달러 규모 펀드가 미국이 요구하는 에퀴티(현금 투자) 형태로 된다는 뜻은 아니다”며 “그 이후엔 충분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실장은 충분조건과 관련해선 “(투자 규모가) 우리나라 현행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여야 하고, 필요하면 수출입은행법을 고치거나 중요한 부담이라면 국회 보증 동의도 받아야 한다”고 했다.

통화스왑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며 체결되더라도 실제 펀드 조성까지는 거쳐야 할 여러 단계가 있다는 얘기다.

한국 정부가 미국 경제부처 선임 격인 베선트 장관과 소통에 나선 것을 두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집중된 관세협상 소통 채널을 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러트닉 장관이 무역·관세협상에서 매우 일방적이고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면서 교착 국면이 장기화하자 합리적 온건파로 분류되는 베선트 장관과의 소통 강화에 나섰다는 것이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베선트 장관은 관세 정책, 투자, 재정 개혁 등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정책을 주도하는 정책 조율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민간 채널이 총동원되는 모습이다.

실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주 정부 측 요청으로 워싱턴DC에 소재한 국제통화기금(IMF) 방문을 계기로 베선트 장관과 면담했다. 김 실장은 “그 자리에서도 이 총재가 (통화스왑 관련) 의견을 전달했다”며 “베선트 장관은 한국이 제기하는 외환시장 문제에 대해 이제 훨씬 잘 숙지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한미 간 통화스왑이 설정될 경우 양국 중앙은행인 한은과 연방준비제도(Fed)가 계약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다음달 말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까지 미국 정부 주요 인사들과의 접촉을 확대한다는 목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사실상 확정된 상황에서 한미 정상 만남과 담당 장관 간 관세협상이 타결되도록 사전 정지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향후 협상 전망에 대해선 “다음 중요한 계기가 경주 APEC 정상회의”라면서도 “협상 시한 때문에 우리가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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