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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갑수의 일생의 일상]거창군수님께 드리는 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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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은 저물 무렵이 특히 좋다. 오늘은 벌초하는 날. 풀 냄새 흥건한 산소 앞에서 절하다가 저무는 저녁을 맞이했다. 언제나 고향은 상냥하고 포근한데, 내 마음 왜 이리 무거워질까.

지리산, 가야산, 덕유산의 무게중심인 거창. 내 고향은 그중에서도 주상면 내오리 오무마을. 무주구천동 지나 백두대간의 한 자락인 덕유산 빼재에서 남으로 뻗은 수려한 경치 속에 있다. 전라에서 경상으로 넘어가는 곳. 그 가운데 알싸한 문명이 있으니, 하늘로 가는 높은 사다리라는 고제(高梯)다. 다시 내리닫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은 퇴계가 극찬한 수승대, 왼편은 거창읍으로 연결된다. 완대초등학교 터, 내오리 지석묘를 따끔따끔 지나니 바로 고반재(考槃齋)다. 아, 고향에 가까워지는데 왜 내 마음 점점 어두워질까.

고반재는 있을 만한 곳에 있을 법하게, 그냥 없는 듯이 있는 작은 재실. 내 어린 시절 소먹이 하러 자주 드나들던 고방골 입구에 쓰러질 듯 자리 잡았다. 고반은 시경(詩經)으로 바로 연결되는 이름이다. 고반은 현자가 산수 간에 은거하는 곳. 퇴계는 은퇴하고 물러난 계곡이라는 뜻이니, 고반과도 잘 어울린다 하겠다. 그 골의 하나로서 대동여지도에 따른 이름인 주곡로(主谷路)는 이렇다 할 관광자원 하나 없지만 뛰어난 자연 명승이다. 잎사귀 잎맥처럼 퍼지는 골짜기가 빚어내는 풍경이 그 자체로 그냥 고반일 만큼. 그 고반재에서 길게 한숨 한번 쉬면 닿는 거리에 오무마을이 있다. 아, 전에 없던 펼침막이 시무룩이 서 있구나. “○○산업 채석장 확장허가 결사반대-오무마을 주민 일동”.

그토록 다정한 고향에서 얻은 내 두통의 근거는 이것이다. 오래전 이 일대에 들어선 돌산이 경관을 극악하게 해치는 것. 돌 캐내느라 무더기로 파헤쳐진 산이 피를 철철철 흘린다는 것. 환경파괴는 물론 분진과 소음에 따른 생활 피해가 도를 넘는다는 것. 이제 개발허가 기간이 끝나는데 또 연장을 시도한다는 것. 이래서 고향마을 어르신들이 결사(決死), 목숨을 거는 지경까지 이른 것.

고향은 그냥 보내지 않으신다. 바리바리 싸주신 사과와 다슬기를 한 아름 싣고 달리는데 왜 내 마음 이리 아플까. 존경하는 거창군수님, 고향 산수와 시냇물 피라미 떼, 현인 같은 사람들 좀 살려주이소!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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