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기후변화와 탄소 감축을 ‘사기극’이라며 강하게 부정하고, 유럽과 중국의 정책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와 실제 피해 사례는 기후변화의 실체와 심각성을 뒷받침하며, 미국도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당사자입니다.
△다만 “모든 국가가 동일한 방식으로 탄소를 감축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곱씹을만 합니다. 각국의 산업 현실을 고려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56분 동안 쏟아낸 독설. 23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UN) 총회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기조연설은 이렇게 압축할 수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와 탄소 발자국은 악의적인 사람들이 꾸며낸 사기극”이라며 자신의 임기 1기 때부터 강조해온 기후변화 부정론을 재차 강조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것이 새로운 소식은 아닙니다만, 그의 인식이 미국은 물론 세계 에너지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다시 한 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고장난 프롬프터, MAGA의 ‘요체' 드러내다
결국 핵심은 ‘내가 열심히 탄소 배출을 줄여도 남이 줄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녹색 에너지 정책의 결과는 환경 보호가 아니라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미친 규칙’을 따르는 선진국들의 제조업과 산업 활동을 규칙을 어기고 돈을 벌고 있는 오염 국가들로 재분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규칙을 지키면 나만 손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기후변화 문제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해석을 빌리자면 관세 정책은 ‘미국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무역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해결책입니다. 또 미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인도주의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을 존중해 이민자를 받아들였지만, 불법 이민자들이 저지른 강력 범죄로 결국 피해만 보고 있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초반 10분 가량 동안 연사가 보고 읽을 수 있는 행사장 프롬프터가 고장이 났었다는 점인데요. 그로 인해 미리 작성한 원고가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이번에 가감 없이 드러난 측면이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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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기후변화 피해 당사자
이 뿐만이 아닙니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계속 쌓여가고 있으며, 연구 대상도 인간의 행동과 심리 분야에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뇌 과학자이자 환경 저널리스트인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은 지난해 발간한 책 ‘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 상승이 인간의 지적 활동을 둔화시키고, 심지어 직장 내 차별이 늘어나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는 점 등을 규명한 다양한 연구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가 실체가 없다면, 이런 과학적 연구들은 한낱 쓸데없는 노력에 불과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미국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 기후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고 있는 당사자입니다. 미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기후 재난으로 발생한 피해액은 최소 930억 달러(약 129조 9120억 원)에 달합니다. 10억 달러 이상의 피해를 낸 대규모 기후 재난은 2020년의 22건을 넘어서며 역대 최다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미국은 기후변화라는 사기에 속지 않고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죠. 미국 환경보호청(EPA)는 올 4월 발전소와 정유소 등 탄소 다배출 시설에 대한 온실가스 배출량 보고 의무를 폐지했습니다. 그 동안 약 8000곳의 산업 시설은 매년 이산화탄소·메탄·아산화질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고해야 했는데 이 의무가 사라진 것이죠. 또 NOAA는 올해부터 재난 피해액이 10억 달러 이상인 초대형 기후 재해의 경제적 손실 데이터는 집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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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감축 ‘속도 조절’을 말했더라면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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