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타이레놀 관련 발표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서 판매 중인 타이레놀. 로이터 연합뉴스, AFP 연합뉴스 |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을 아기의 자폐증 발생 위험 요소 중 하나라고 발표하자, 국내 일부 임신부들은 당장 열이 났을 때 타이레놀을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23일 350만명이 가입한 국내 최대 맘카페에는 타이레놀 관련 글이 여러 개 올라왔다.
한 누리꾼은 “기사로 너무 충격적인 걸 봤다. 임신 초기 타이레놀을 섭취하면 자폐증 위험이 상승한다고 미국에서 발표한다고 한다”며 맘카페에 관련 내용을 올렸다. 이 누리꾼은 “임신 초기 열이 38도 이상 1~2주 동안 나서 병원에서 처방해 준 타이레놀을 계속 먹었다”며 “양수 온도 올라가면 더 위험하다고 해서 먹은 건데 기사로 보니까 오만 생각이 (난다)”고 덧붙였다.
실제 산부인과에서는 임신부가 감기나 코로나로 인해 고열에 시달릴 때 타이레놀을 복용해 열을 낮추게 해왔다.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타이레놀은 임신부가 복용 가능한 약물이라는 설명과 함께다.
이에 다른 회원들은 각자의 경험을 댓글로 공유했다. 한 회원은 “첫째 때 두통, 감기로 열 올랐을 때 먹었고 둘째 임신 초기 때 코로나로 고열이 3일 지속돼서 쭉 복용했다”며 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크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회원은 “첫째 때도 아파서 먹고 괜찮아서 지금 둘째 임신 중에 아플 때마다 많이 먹었는데 걱정된다”고 했다. “첫째 때 열나서 먹고, 이번 임신 때도 열나서 먹긴 했는데, 열이 더 안 좋다고 듣긴 했다”는 댓글도 달렸다.
또 다른 누리꾼은 “타이레놀 조심해야겠네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역시 트럼프 행정부 발표가 담긴 기사를 공유했다. 이 글에 한 회원은 “타이레놀 만큼 안정성이 인정된 약도 언젠가 이렇게 부작용이 드러나니”라고 답을 달았고, “약 먹을 때마다 혹시 괜찮을까 걱정되는 마음은 다 똑같나 보다”라고 올린 이도 있었다.
많은 회원들은 이번 미국발 소식을 전적으로 신뢰할 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회원은 “트럼프발이라 신뢰도가 떨어지긴 한다”며 “임신 초기 코로나 걸려서 타이레놀 복용했는데 4살 아들 건강하다”고 글을 올렸다. 그는 “임산부 열 나는 것보다 약 먹고 열 떨어뜨리는 게 낫다”고 덧붙였다.
“비타민 먹듯 남발하며 복용하는 임산부는 없을 테니 괜찮을 것 같다”, “병원에서 전문의 교수님이 타이레놀 안전하니까 안심하고 먹으라 해서 저는 복용한다”, “고열로 다른 질병이 생기는 것보단 나을 거 같다. 궁금해서 전문의 선생님께 질의 남겨봤다” 등의 글도 올라왔다.
22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 의사들이 곧 임신부들에게 타이레놀을 처방하지 말라는 지침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로버트 에프(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은 “가능한 최저 용량을 최단 기간, 꼭 필요한 경우에만 처방해야 한다”며 전국적인 공익 캠페인을 통해 위험성을 알리겠다고 했다. 타이레놀 복용이 자폐증 발생과 연관성이 있다는 취지다. 케네디 장관은 과거 백신과 자폐증을 연결하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과학계는 둘 사이의 연관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자폐증을 연구하는 미국 매사추세츠보스턴대의 심리학자 헬렌 태거-플러스버그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통제 수준이 높은 연구에서는 작은 위험조차 발견할 가능성이 낮다”며 “설령 있다 해도 미미한 연관성일 뿐, 아세트아미노펜 복용이 실제로 자폐증을 유발하는 데 어떤 식으로든 기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024년 4월 미국의사협회가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자마네트워크’에 발표된 역대 최대 자폐증 연구에서도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복용과 자폐증,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지적 장애 위험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준용 고려대 보건과학대학 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트럼프 정부의 타이레놀-자폐 연관성 주장은 비과학적”이라고 글을 올렸다. 안 교수는 자폐와 관련해 “여전히 새롭게 밝혀야 할 원인들이 있고 그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며 “그러나 이처럼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비과학적 주장을 펼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안 교수는 과학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과정은 “지난하고 매력적인 과정이 아니다. 동시에 일상의 어려움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겐 즉각적인 답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며 “트럼프 정부의 이번 발표는 이 사이에 존재하는 유약한 지점에서, 대중과 가족의 불안감을 내습한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그러면서 트럼프 정부의 발표가 “대중의 불안감을 선동하는 행위”라며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은 꼭 필요한 경우 의료 전문가와 상담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지만, 비과학적 공포에 휩쓸려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