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 여섯 개의 감, 13세기, 종이에 먹, 36x38cm, 일본 교토 다이토쿠지 소장. |
감은 계절을 품은 과일이다. 5월의 감꽃이 지고 난 자리에 초록 열매가 맺히는 게 6월. 가지에 매달려 서너 달을 보내다 보면 마침내 가을 햇살 속에서 등불처럼 빛나는 주황빛으로 익는다. 어떤 이는 아삭한 단감을 즐기고, 어떤 이는 얇은 껍질 사이로 젤리 같은 과육이 흘러나오는 홍시를 더 좋아한다. 물론 호랑이가 겁내는 곶감으로 말려 두면 겨울 내내 든든하다. 따지고 보면 하나의 과일이 이처럼 단계마다 전혀 다른 맛과 질감을 내는 경우는 드물다.
중국 남송 시대의 화가로 알려진 목계(牧溪·13세기)는 텅 빈 화면에 이토록 다채로운 감 여섯 개를 오직 먹으로만 그려 냈다. 메마른 붓을 한번 놀려 그린 원도 감이 되고, 농묵을 무겁게 눌러 새까만 네모를 그린 것도 감이 됐다. 어딘지 알 수 없이 너른 공간에 놓인 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서로 다른 무게와 질감, 그리고 나무에 매달려 있던 시간이 느껴진다. 검은 감은 묵직하되 부드럽고, 흰 감은 매끄럽고 단단하다. 마치 선승이 화두를 잡고 긴 수행을 하듯, 목계는 감 여섯 개를 두고 흐르는 시간과 존재의 이치를 찾았던 모양이다.
목계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중국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의 그림은 남송 멸망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는 16세기 다도·정원·하이쿠 등 단순함의 미학과 맞닿아 선종화(禪宗畵)의 진수로 크게 각광받았고, 현대 서양에서는 ‘선불교의 모나리자’라 불리며 추앙을 받는다. 그러나 현재 소장처에서 일반에 거의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그의 그림을 접하기는 어렵다. 올해는 감을 입에 넣기 전, 잠시 바닥에 두고 가만히 바라보다 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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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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