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조선일보 언론사 이미지

[류호정의 톱밥 먹는 중입니다] [6] 탈공장보다 탈정치, 그만큼 정치가 무서워

조선일보 류호정 목수, 前 국회의원
원문보기
엄마는 엄마를 고3 때 여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가사를 돌보며 공장에 다녔다. 기계 공단이 있는 창원이라 취업이 어렵지는 않았다고 하셨다. 대학 진학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혼하고, 우리 삼 남매를 낳아 길렀다.

세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려면 멀리 있는 큰 공장에 다닐 수 없었다. 엄마는 일하다 잠시 나올 수 있는 집 근처 작은 공장에서 일했다. 그 공장은 전자기판에 납땜을 하는 곳이었는데, 가끔 일거리를 집으로 싸 들고 와 부업을 했다. 그래서 우리 어린 시절 베란다에는 납땜용 책상과 인두기가 있었다. 엄마는 납땜할 때 나는 연기가 몸에 좋지 않다며 우리를 베란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다. 그래도 나중에는 엄마 옆에 앉아 다 때운 전자기판 개수를 세고 있었다. 50개씩 묶어야 했는데, 내가 가끔 49개나 51개로 잘못 셀 때면 혼이 났다.

“너희는 공부해서 대학 졸업하고, 공장일 하지 마라.”

공장에서 일하던 엄마는 자식들을 공장에서 일하지 않게 키우려 하셨다. 엄마의 심정이 어떻든 나는 공부하기 싫었고, 게임이나 하다가 고등학생이 됐다. 내가 가고 싶은 대학교와 학과를 둘러보다가, 그리고 내 꿈은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이 모든 미래를 갑자기 내려놓아야만 했을 엄마를 떠올렸다. 10대 후반에 갑자기 찾아온 재앙이 엄마의 선택권을 앗아갔겠구나, 그제야 생각했다.

아무튼 엄마의 말씀은 우리 삼 남매에겐 일종의 지침이었다. 우리는 고3 때 재앙을 겪지 않았고 대학에도 갔다. 동생들은 공무원, 의사가 됐으니 엄마의 지침을 충실히 따른 셈이다. 회사 사무실과 국회의사당은 공장이 아니니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랬다. 그래서 목수가 되겠다고 결심했을 때 엄마의 반응을 걱정했다. 의외로 엄마는 “정치보단 낫다”며 “다치지만 말라”고 당부하셨다. 탈공장보다 탈정치가 우선이라니, 정치가 이렇게 무섭다.

개천의 용이 집안 전체를 일으키는 기적은 이제 어렵다. 엄마는 지금도 공장에서 일한다. 나는 현장에서, 엄마는 공장에서 일과를 보낸다. “그래도 네가 행복해 보이니까 마음이 놓인다.” 딸이 무더위에 어떻게 일하는지 걱정되어 전화기를 든 끝에 하신 말씀이 내게 박혔다. 그녀는 자유롭지 못했고, 탈출하고 싶었다. 나는 나 스스로 선택한 일터를 ‘탈출해야 할 무엇’으로 여기지 않는다. 나는 내 손이 점점 엄마 손처럼 거칠어지는 게 좋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5분 칼럼' 더보기

[류호정 목수, 前 국회의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서울 시내버스 파업
    서울 시내버스 파업
  2. 2케데헌 골든글로브 2관왕
    케데헌 골든글로브 2관왕
  3. 3이재명 대통령 종교지도자 간담회
    이재명 대통령 종교지도자 간담회
  4. 4우원식 국회의장 필리버스터 개선
    우원식 국회의장 필리버스터 개선
  5. 5타마요 하윤기 부상
    타마요 하윤기 부상

조선일보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