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흐림 / 7.0 °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단독] 노래방 성폭력 “기억 안난다→그런적 없다”…신고하자 돌변한 박완주 [세상&]

헤럴드경제 박지영
원문보기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쉽지 않다. 피해자들은 가해자와의 관계, 정당의 정치적 이해 등으로 공론화를 망설인다. 어렵게 신고를 해도 돌아오는 것은 2차 가해다. 2021년 12월, 3선 의원으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던 박완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피해자는 박 전 의원과의 오랜 인연, 3개월 뒤 치러질 제20대 대통령 선거로 사건화를 주저했다. 박 전 의원은 이같은 피해자의 ‘충심’을 공격 무기로 삼았다. 헤럴드경제는 박 전 의원의 1심, 2심 판결문을 단독 입수해 보도한다. 피해자의 동의를 얻었음을 밝힌다.
박완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3년 8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강제추행 혐의 1차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박완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23년 8월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강제추행 혐의 1차 공판에 출석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 지난 8월 20일 보좌진을 강제추행하고 명예훼손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박완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징역 1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이 인정한 박 전 의원의 혐의는 크게 3가지다. ▷2021년 12월 9일 밤 10시께 노래방에서 피해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 발언을 하며 신체를 접촉한 혐의(1차 강제추행) ▷자신의 주거지 앞 지하주차장에서 “한 잔 더 하자”며 차 안에서 저항하는 피해자를 강하게 끌어내리려 한 혐의(2차 강제추행) ▷사건 발생 4개월 뒤 피해자가 더불어민주당에 신고하자 자신의 측근들에게 ‘피해자가 3억원을 요구한다. 법적 대응할 것이다’라며 2차 가해한 혐의(명예훼손)이다.

박 전 의원은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에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공론화에 나서자 태도를 바꿨다. 의원실 내에서 입지가 약해진 피해자가 없는 일을 꾸며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박 전 의원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된 반면 박 전 의원의 발언과 행위는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론화 하자 “기억 안 난다” → “그런 적 없다”
박 전 의원은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박 전 의원은 2021년 12월 9일 당일의 일을 기억하고 있고 강제추행한 적이 없다고 했다. 법원은 사건이 발생하고 2022년 4월 피해자 A씨가 더불어민주당 젠더폭력신고센터에 신고하고 경찰에 고소하기까지의 상황을 꼼꼼히 살폈다.


A씨는 범행 발생 4일 후인 2021년 12월 13일 메신저를 통해 박 전 의원에게 사건을 처음 언급했다. 이후에도 메신저, 전화 등을 통해 몇 차례 사건에 대해 말했다. 법원은 이 과정에서 박 전 의원이 ‘사실관계 확인’ 시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기억이 분명한데도 ‘그런 적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한 사실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1심 재판부는 “(2021년 12월 13일) 메신저의 전체적인 문맥상 성적인 문제라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쉽게 추단할 수 있다”며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목요일 일로 충격’, ‘지난 18년이 부정될 만한 일’,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한 실수가 무엇인지’ 등을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은 매우 비상식적으로 보인다”고 했다.

2022년 3월 3일 박 전 의원은 피해자와 통화를 하며 구체적으로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판결문에 기재된 녹취록에 따르면 박 전 의원은 수차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며 사과했다. 본인이 한 행동을 하나하나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게 아니라 그런 사실이 없다’고 했다. 해당 통화에서 피해사실을 인정한 것은 정치적 상황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민주당 내 성비위 의혹이 불거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다.


‘대선’을 우려한 것은 피해자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불과 하루 전에 피해자로부터 ‘선거 때문에 (3개월 동안) 참았다’는 말을 들었다. ‘대선 끝나고 대화하자’ 등으로 부탁해도 공론화하지는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할 수 있었다”며 “범행을 전적으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법원은 대선이 끝난 후 정황도 주목했다. 박 전 의원은 대선이 끝난 후 자신의 전직 보좌관 B씨와 민주당 당직자 C씨를 두 차례 만나 A씨와 합의를 시도했다. B씨는 피해자가 ‘정계 은퇴 및 사과’를 원한다고 전했고, C씨는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전 의원은 B씨와 대화하며 ‘남은 2년에 대한 보상’을 먼저 제안했다. A씨가 강제추행 사실을 공론화 하지 않고 의원실을 그만 둘 경우 남은 박 전 의원의 임기 동안 받을 수 있던 보수와 피해 보상을 의미한다.

박 전 의원은 이들과 대화하며 ‘기억 나지 않는다. 그런데 피해자가 나에게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1심 재판부는 “대선이 끝난 후부터 즉시 태도를 바꾸어 범행을 부인할 수 있었다”며 “피고인이 6개월 질병휴직을 먼저 제안하면서 정계은퇴 등에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자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렵다”고 했다. 또 박 전 의원이 B씨, C씨와 두번째 만남에서 피해자의 조건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도 범행을 부인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강제추행한 적이 없다는 피고인의 진술은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2심 재판부도 “당시 일을 모두 기억하고 피해자가 허위 주장을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대선 정국을 고려해 피해자와 통화하며 사과하는 태도를 보였을 뿐이라는 피고인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 일관된 진술…朴 측 ‘피해자다움’ 공격도
반면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됐다. A씨는 사건 발생 직후 지인 D씨에게 전화를 해 피해사실을 토로했다. 분노를 표출하면서도 통화녹음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사건이 외부에 알려질 것을 ‘본능적’으로 우려했다. 2021년 12월 ~ 2022년 1월께 피해자로부터 피해사실을 들은 지인들의 진술, 피해자의 경찰·검찰 진술 내용, 재판 증언 등도 대부분 일치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의 진술은 노래주점에서 사건 발생 당시 상황 및 추행행위의 세부적인 내용, 피해자 및 피고인의 행동과 반응, 지하주차장 사건 발생 당시 상황 및 피고인이 한 추행행위의 세부적인 내용, 피해자가 느낀 감정 등에 관해 일관성이 있고 매우 구체적이다. 경험하지 않고서는 진술하기 어려운 세부적이고 비정형적인 사항까지 상세하다”며 “주요한 부분에 관해 합리적이지 않거나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은 없다”고 했다.

박 전 의원 측은 재판에서 ‘피해자다움’도 공격했다. 피해자가 4개월이 지나서야 고소를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건 당일 의원실 직원 E씨의 승진을 두고 박 전 의원과 의견이 갈렸는데 이에 앙심을 품고 무고했다고도 주장했다.

법원은 20대 대선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 박 전 의원과 피해자의 오랜 인연 등이 즉각적인 문제제기를 가로막았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범행 직후 피해사실을 알리지 못했던 이유는 피해자가 몸담고 있던 당과 피고인에게 미치는 영향, 특히 약 3개월 후 치러질 대선에서 패배할 우려를 염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했다.

2심 재판부 또한 “피해자는 직후 지인 몇 사람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았을 뿐 외부에 알리거나 고소할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며 “2021년 12월 말 사건 당일 반대했던 승진 인사를 하면서 강제추행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자 대선 이후 고소할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피해자의 성격을 문제 삼은 박 전 의원 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평소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거나 직언에 서슴지 않았다. 피해자가 피고인의 업무상 지적에 강한 어조로 불만을 표했다고 해서 무고할 정도로 수개월에 걸쳐 보복 감정을 키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명예훼손도 유죄…피해자 “2차 가해 치떨리게 잔인”
박 전 의원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점도 유죄로 인정됐다. 박 전 의원은 2022년 5월 4일 충남의 한 식당에서 지역 의원, 지역보좌진 등과 식사를 하며 “윤리심판위원회에서 조사를 받는다. (피해자가) 3억원, 2년 자리 보장과 정계 은퇴를 요구해왔다”며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법적 투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2022년 4월 말 피해자가 당내 기구에 신고를 하면서 박 전 의원이 성비위에 연루됐다는 소문이 퍼졌지만, 합의 시도는 알려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이 사건 발언을 할 무렵 피고인과 피해자가 강제추행 피해보상 협의를 진행했다는 사실은 당사자들 외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며 “피해자가 거짓된 피해사실을 주장하면서 과도한 요구를 한다는 인상을 받게 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1심 재판부는 “발언 당시 윤리심판위원회 조사, 법적 투쟁을 하겠다는 내용 외에 피해 보상의 조건과 자신의 의견을 발언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며 “굳이 피해자의 보상 요구 사실까지 더해 발언했다. 명예가 훼손되는 결과가 발생하리라 충분히 인식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는 “발언 상대방들이 피고인과 정치적 이해관계를 함께 한다면 발언을 전파할 가능성도 있었다”며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더라도 전파가능성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실제 한 참석자는 다음날 발언의 진위를 D에게 물었다”고 했다.

피해자 A씨는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2차 가해에 대한 법적 처벌이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A씨는 “가해자와 가족, 지지자들의 2차 가해는 치가 떨릴 정도로 잔인했다. 제도권 밖에서 여성인권과 권력형 성범죄를 비판했던 민주당 여성의원들의 침묵이 가장 서운했다”며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2차 가해에 대해서는 법 처벌이 미비하다고 생각했다. 강력한 법적 보완이 있어야한다”고 했다.

현재 진행 중인 조국혁신당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A씨는 “제 사건은 당시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이 당내에서 잘 처리했다”면서도 “다른 당이 그렇게 할 지 의문이다. 피해자와 조력자는 당에서 버려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박 전 의원은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헤럴드경제는 박 전 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신민아 김우빈 결혼
    신민아 김우빈 결혼
  2. 2레오 7000득점
    레오 7000득점
  3. 3이시영 킬리만자로 도전
    이시영 킬리만자로 도전
  4. 4대구FC 한국영 영입
    대구FC 한국영 영입
  5. 5MMA2025 2차 라인업
    MMA2025 2차 라인업

헤럴드경제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