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중국 수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신화 연합뉴스 |
중국 전승절 행사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시베리아의 힘2(Power of Siberia 2)’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짓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이 러시아 가스 의존도를 급격히 줄임에 따라 러시아의 가스 수출량은 전쟁 전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이에 러시아는 주요 에너지를 중국으로 수출하려는 전략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가스 수출은 러시아 경제의 핵심 축이다. 중·러 간 전략적 에너지 파트너십은 유럽에서의 경제적 손실을 만회하는 것을 넘어 러시아의 에너지 시장을 서방에서 동방으로 옮겨 글로벌 에너지 패권 구도를 흔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중국은 그간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을 고려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며 러시아에 대한 국제 제재에 저항하거나 군사 제공을 지원하는 일을 피해 왔다. 그러나 이번 전승절을 계기로 보여준 중·러 밀착은 미국을 견제하는 상징적 외교 메세지를 넘어 경제협력으로 확대·공고화하려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체결한 가스관 양해각서는 단순한 에너지 프로젝트가 아니라 글로벌 에너지 시장과 국제 안보 질서의 균형을 재편하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로 봐야 한다. 중국은 관세 협상 등 미국과의 긴장 고조 속에서도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강화 의지를 분명히 했는데, 미국 및 글로벌 LNG 시장에 대한 메세지로 해석될 수 있다.
중·러 간 첫 번째 가스관(POS1) 계약 체결 시기를 보면 현재의 구도와 비슷한 양상을 볼 수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를 병합하면서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자, 유럽 의존도를 줄이고 대체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중국과의 에너지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강화했다. 그 결과 2014년 5월 연간 최대 38bcm의 가스를 30년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그것은 양국 간 경제 및 에너지 관계에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사실 중·러는 2000년대 초반부터 가스관 건설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지만 가격, 수송관 노선, 수요 예측, 그리고 양국 간 정치적 신뢰 부족으로 오랫동안 진척 안 됐다. 중국은 가격과 재정 분담, 기술 등에서 유리한 조건을 요구해 왔다. 러시아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다가 크림반도 합병 이후 유럽 의존도를 줄이려는 지정학적 맥락이 중요해지자 중국에 보다 유리한 계약이 체결되면서 비로소 가스관을 짓게 되었다. 러시아는 POS1을 통해 2019년 말부터 중국으로 가스를 보내고 있으며, 공급량은 해마다 점진적으로 늘어 최근 몇 년간 20~30bcm 수준까지 증대되었다.
지난 2006년 벨라루스 민스크에서 남서쪽으로 약 130km떨어진 네스비즈 근처 야말-유럽 가스 파이프라인의 가스 압축소에서 한 작업자가 파이프를 점검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시장이 사실상 봉쇄된 지금 러시아는 가스 수출의 동방 축을 공식화하며 중국 의존도를 높이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 구체적 계약 조건은 아직 논의 중이지만 가격, 시점, 수량 등 모든 면에서 중국이 협상 우위를 점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유럽형 또는 아시아 벤치마크 가격을 수용하지 않고 기존 POS1에서 사용된 유가 연동 방식의 저가 모델을 기반으로 협상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일반적인 장기 가스 계약에서 흔히 포함되는 ‘Take-or-Pay’ 조항(수령하지 않아도 일정 물량 비용 지불)은 최소화하려 할 것이다. 이에 따라 중국은 글로벌 가스 시장에서 가격 조정자(swing player)로 기능할 수 있는 기반을 갖게 된다.
양국은 POS2 계약 조건에 대해 협상을 진행 중이며 이번 양해각서가 실제 가스 공급으로 이어지기까지 적어도 5~7년이 걸릴 전망이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해 글로벌 LNG 산업은 중국 리스크를 다시 계산해야 한다. 미국, 호주, 카타르 등 주요 LNG 수출국들이 2030년 중국 수요 증가를 전제로 진행 중이던 대규모 프로젝트들도 POS2 계약이 성사될 경우 재검토가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이 가스관을 우선 도입하고 LNG를 보완재로 전환할 경우, 가격 경쟁력이 약한 미국산 LNG는 중국 시장에서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 한국과 일본 역시 중국 중심으로 아시아 에너지 수급 구조가 변화할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
POS2는 단지 러시아 가스가 중국으로 흐르는 수송관이 아니다. 에너지 안보의 축이 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가스 수급의 주도권이 바뀌는 흐름을 살피고, 에너지 안보 전략을 새로 짜야 한다. 특히 한미 간 관세 협상과 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로 한국 가스공사는 미국산 LNG를 2028년부터 일정량 장기 계약하기로 했으며, 알래스카 LNG는 주요한 협력 어젠다로 논의 중이다. 중·러 에너지 협력 확대가 지역 에너지 안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면밀한 이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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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연 美 랜드연구소 한국 석좌 겸 국방안보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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