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뉴스1 언론사 이미지

청나라 서태후의 광서제 유폐 [김정한의 역사&오늘]

뉴스1 김정한 기자
원문보기

1898년 9월 21일



서태후. (출처: Yu Xunling, 190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태후. (출처: Yu Xunling, 1900,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898년 9월 21일, 청나라의 무술변법이 서태후에 의해 좌절되면서 광서제가 유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청나라의 개혁 시도가 보수파의 반격으로 무산됐음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역사로 기록됐다.

무술변법은 1898년 6월 11일부터 9월 21일까지 단 103일 동안 진행된 개혁 운동이다. 당시 청나라는 아편전쟁, 청일전쟁 등을 거치며 서구 열강에 의해 국권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에 젊은 황제 광서제와 그의 개혁파 신하들은 부국강병을 목표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했다. 이들은 과거제도 개혁, 군대 개편, 신식 학교 설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안을 내놓았다. 특히, 캉유웨이, 량치차오 등 개혁 사상가들이 주도한 이 운동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보기로 삼았다.

그러나 이들의 개혁은 서태후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서태후는 섭정을 통해 오랫동안 권력을 장악해 왔으며, 광서제의 개혁이 자신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판단했다. 보수파는 개혁이 전통적인 질서를 파괴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혁파 신하들을 '망국의 주범'으로 몰아붙이며 광서제를 압박했다.

결국 서태후는 위안스카이 등의 도움을 받아 정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광서제는 자금성 내 잉타이(瀛臺)에 유폐됐고, 캉유웨이, 량치차오 등 개혁파 인사들은 해외로 망명하거나 처형됐다. 이 사건은 '무술정변'이라 불리며, 중국 근대사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청나라는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변화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잃었다. 이후 청나라는 의화단 운동과 신해혁명 등 격변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광서제는 유폐 생활을 이어가다 1908년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서태후 역시 같은 해 사망했다.

광서제 유폐 사건은 당시 중국 사회의 보수적인 기득권층이 개혁과 변화를 얼마나 거부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청나라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됐다.

acene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전준호 별세
    전준호 별세
  2. 2스위스 리조트 폭발
    스위스 리조트 폭발
  3. 3강선우 제명
    강선우 제명
  4. 4손흥민 토트넘 이적
    손흥민 토트넘 이적
  5. 5송도순 별세
    송도순 별세

뉴스1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