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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각] 자살률 탈꼴찌가 목표인 나라

조선일보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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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이날 이 대통령은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한국의 자살률 관련 질문을 했다고 한다./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후 첫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 이날 이 대통령은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한국의 자살률 관련 질문을 했다고 한다./대통령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자살률이 10만명 당 28.3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가장 높습니다. 2위인 리투아니아가 17.1명입니다. 17명이라는 목표는 다소 과감하고 도전적이지만, 꼭 필요한 자살 예방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지난 12일 정부의 ‘2025 국가 자살 예방 전략’이 발표되기 하루 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이형훈 보건복지부 2차관의 사전 브리핑이 열렸다. 사실상 이재명 정부의 첫 복지 정책을 언론에 설명하는 자리였다. 자살 예방 대책은 이 대통령이 첫 국무회의부터 복지부 장관에게 물어볼 정도로 현 정부 복지 정책의 최대 화두다. 지난 6월, 아직 지난 정부의 의정 갈등 사태도 봉합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이 대통령은 자살을 더 큰 해결 과제로 삼고 가장 먼저 질문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렇게 중요한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가 ‘17’이라는 숫자에 매몰되고 말았다. 정부는 새로운 자살 예방 정책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자살률 목표를 2034년까지 10만명당 17명으로 낮추겠다고 가장 앞세워 설명했고, 이를 크게 강조했다.

기자들은 의아했다. “OECD 자살률 1위만 피하면 된다는 것인가”, “무슨 근거로 17명이라는 목표치가 나왔나”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이날 기자들은 20개도 안 되는 물음을 던졌는데, 그중 5개가 자살률 목표치 관련 질문이었다. 정부는 2029년까지 목표로 내세운 자살률 19.4명이 연간 자살자 수 1만명 이하로 낮췄을 때 가능한 숫자라고만 설명했을 뿐, 17명이라는 2034년 목표에 대해선 “총력적인 대응을 해 나가겠다”며 ‘리투아니아’만 되풀이했다.

물론 자살률은 낮을수록 좋다. 이 대통령이 앞서 얘기하고 복지부 차관도 강조했듯이 “출생률이 낮은 국가에서 한 명의 생명이라도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얼마나 제대로 해 나가느냐다. 당장 이날 내놓은 대책만 하더라도 기존 정부가 하던 것의 ‘짜깁기’ 수준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다.

OECD 38국 중 꼴찌가 아닌 37등을 하는 게 당장의 목표가 되면 곤란하다. 심지어 정부는 자살률을 낮춘 해외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리투아니아의 사례는 담지도 않았다. 리투아니아는 6년 만에 자살률을 10명 가까이 줄인, 원래 OECD 자살률 1위를 하던 국가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등수로 목표를 정하는 것을 한국 사회의 스트레스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는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자살’ 얘기했다고 갑자기 달려들어 ‘꼴등 안 하겠습니다’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청소년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우울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지적했다. 탈꼴찌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위한 목표를 세우길 바란다. 본질을 잃는 순간 정책은 숫자 유희가 된다.

[조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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