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7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기지에 도착한 후 발언하고 있다. 앤드루스/AP 연합뉴스 |
정유경 | 국제뉴스팀 기자
미국 애틀랜타에서 서울까지의 비행시간은 15시간이 넘는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극 항로를 회피하다 보니 이전보다 시간이 더 늘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에서 가장 붐비는 공항인 애틀랜타의 한국행 게이트 앞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 그리고 한국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는 외국인 여행객들로 북적였다. 구금됐던 한국인 노동자들은 이곳에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며칠 전 언론재단 한·미 언론인 교류 프로그램 참석을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는 분위기가 달랐다. 일부 기자들의 이스타가 갑자기 취소됐다가 재승인되는 소동이 있었고, 입국 심사대 앞에선 초청장을 들고도 긴장을 감출 수 없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엘지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 대한 미 이민 당국의 급습·단속은 워싱턴과 애틀랜타 모두에 여파를 남겼다. 현지에서 만난 정부 관계자들은 암암리에 안타까워하는 뜻을 전했고, 일어나선 안 될 일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사건이 한·미 양국의 경제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는 조심스러워 보였다. 트럼프 정부를 거스를 만한 발언을 피하고 싶어 하고, 정부 관계자들마저도 트럼프의 진의를 파악하려 애쓰는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트럼프의 마음을 아무도 모른다. 이곳에서 만난 싱크탱크의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다. 출범 초기만 해도 대중 강경파들로 내각을 꾸리면서, 중국을 향한 견제 수위를 높이고 한국도 거기 동참할 것을 압박할 것이란 예측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최근 만난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대외 정책은 정치적·경제적 개인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으며, 그는 자신에게 돌아올 이득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인물이라는 데 이견이 없는 듯했다.
공장 급습 대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처음엔 불법 체류자 단속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으나, 단속이 외국 기업 투자에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가 커지자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는 환영받는다”며 이후 한발 물러섰다. 과거 중국 유학생 비자 문제에서도 비슷하게 처음엔 강력한 조치를 내세웠다가 나중에야 태도를 바꿨던 것과 비슷했다.
메트로애틀랜타의 한 공화당 지부를 방문했을 때 만난 지역 주민들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대체로 합법적 절차 안에서 근무했음에도 구금됐다는 점은 잘 알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히려 현대차 공장이 기대만큼 일자리를 늘리지 못했다는 불만이 컸다. 경합주 특성상 정치인들도 외교 문제보다 당장의 지역 민심에 더 민감했다. 한 외교가 인사는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가 지난 대선 때 트럼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점도 오히려 발언을 나서서 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라고 짚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외교보다는 중간선거에 대비한 지지층 결집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가 상승과 양극화 심화 속에서 반이민 정책은 불만을 특정 집단에 돌리는 수단이 되고 있었다. 최근 극우 인플루언서 찰리 커크의 피살로 언론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리자, 조지아 사태는 오히려 실무진에 의해 빠르게 수습되는 분위기다. 교류 프로그램에서 만난 한 현지 언론인은 “문제를 끊임없이 터뜨려 언론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것이 트럼프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한 나라의 외교 정책조차도 종잡을 수 없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무거운 질문이 남는 귀국길이었다.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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