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10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글로벌 산업 구조의 변화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산업전략 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최현수 기자 emd@hani.co.kr |
한국 산업 위기론이 커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중국의 산업 굴기가, 또 한쪽에서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이 한국 기업들을 짓누르고 있다. 지난달에는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궁지에 몰린 석유화학업계가 결국 연말까지 나프타분해시설(NCC)을 25%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석유화학업계의 위기가 철강 등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지난 8월 대미 수출은 전년 대비 12%나 급감했다. 미국의 관세 압박에 기업들은 앞다퉈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옮기고 있다. 중국발·미국발 공동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한국판 러스트벨트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외부적 요인뿐 아니라 오랫동안 새로운 성장동력 찾기와 혁신 노력을 소홀히 한 것도 현재 위기의 원인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여기에 2023년부터 본격화한 생성형 인공지능(AI) 바람이 전 세계를 휩쓸면서 각 나라가 치열한 기술경쟁에 돌입했다. 새 정부는 2030년까지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해 잠재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내년 예산안에서 AI 분야에 지난해 예산의 세 배인 10조원을 배정했고, 지난 10일에는 AI, 반도체, 미래차, 바이오 등 첨단전략산업 투자를 위해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추진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 10일 김계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나, 한국 산업의 위기와 그 원인, 글로벌 산업 구조의 변화와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필요한 산업전략 등에 관해 의견을 들었다. 김 연구위원은 산업연구원에서 산업통상연구본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글로벌 경쟁력 연구단에서 경제안보와 산업전략의 방향,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을 연구하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파리 고등사회과학연구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한국의 산업, 특히 제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제조업이 위기라고 볼 수 있나.
“일반적으로 경제 분야에서 ’위기’라고 하면, 소위 금융위기나 그에 따른 경제위기 등을 생각한다. 금융시장이 순식간에 붕괴되고, 그다음에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고 하는 그런 현상들이다. 산업의 위기는 그런 류의 위기는 아니다. 일종의 만성화된 그리고 구조화된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처럼 위기가 온 것도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제조업 관련 지표들을 보면 위기의 징후들이 뚜렷하다.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50 이상이면 경기 확장, 50 이하면 경기수축)는 지난 3년간 대부분 50 이하였다. 제조업체 수가 크게 줄고 있고, 고용도 감소하고 있다. 지난 8월 수출을 보면 15개 주력 수출 산업 중에서 반도체, 자동차, 선박 외 12개가 전년 대비 마이너스였다. 대기업들이 비핵심사업을 매각하며 사업 구조를 슬림화하고 있는데, 기업들은 위기에 대비할 때 그런 양태를 보인다. 설비투자도 2020년 이후 반도체 등 소수 업종 외에는 감소하고 있다.”
―위기의 원인을 무엇으로 봐야 하나
“산업은 교역재와 비교역재로 나뉘는데 제조업은 전형적인 교역재 산업이다. 당연히 국가 간 경쟁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국제 경쟁에서 경쟁력이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산업적 부상이 기본적인 압박 요인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들이 소위 보호무역주의 또는 제조업의 부활이라는 형식으로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으로 이행하고 있다. 선진국들이 그동안 소홀히 했던 제조와 생산에 다시 전략적인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과거 30~40년 동안 미국, (독일을 제외한) 서유럽 등이 제조업보다 연구개발, 서비스업에 특화하고, 중국·한국·대만 등은 제조와 생산에 특화하는 수직적 국제분업 체계가 작동을 해왔다. 그 체계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산업으로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 재건 시도, 이 두 가지가 위기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인가
“그게 외부적인 요인이라면 내부적인 요인들도 있다. 산업의 발전은 끊임없이 새로운 국가들이 참여를 하고, 기존 국가들은 어떻게든 새로운 국가들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려고 노력하면서 이루어진다. 중국을 비롯한 새로운 국가들이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경쟁 우위 분야에서 침식을 해간다면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을 발굴하고 새로운 포지셔닝을 해야 하는데, 그 점에서 부족함이 있었다. 고령화 대응, 인력 양성, 비용상승 등에 대한 대응에서도 지체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산업의 새로운 포지셔닝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나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 미국은 제조업에서 일본, 독일 등에 추격당하자, 정보통신기술(ICT)이라는 새로운 기술 체계로 이동을 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중 데탕트로 대표되는 글로벌화라는 지정학이 태어났다. 미국이 주도한 ICT 혁명의 파트너 역할을 중국·한국·대만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했다. 지금도 두 가지 변화가 겹쳐 일어나고 있다. 하나는 인공지능(AI), 그린, 바이오 등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으로의 이행이고 또 하나는 미·중 패권전쟁 등 지정학적 재편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글로벌 산업 지형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변화를 출발점으로 삼아 산업전략, 산업정책을 짜야 한다.”
―산업정책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나.
“산업의 구조를 사회 또는 국가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특정 방향으로 변화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의 경제에 대한 개입을 말한다. 보조금 지급, 세금감면, 규제 등 특정 산업이나 기업에 대한 마이크로한 개입을 수단으로 사용한다.”
―최근 선진국에서 산업정책이 다시 강화되고 있는 이유와 그 특징은 무엇인가
“적어도 근대 경제로 이행한 이후 산업정책이 없었던 시기는 없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세계무역기구(WTO)는 무역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산업정책을 금지했다. 연구개발(R&D)정책, 중소기업 지원 정책, 지역산업정책 등은 있었지만, 산업의 대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정책은 아니었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이 제조업 르네상스라는 이름으로 전환을 시작한다. 2010년대 후반이 되면 미국의 러스트벨트 충격과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출범, 영국의 브렉시트 등으로 인해 정치사회적 위기 이면에 탈산업화가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강화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국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지정학적 위기감이 결합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산업정책의 특징은 AI·양자컴퓨팅·로봇공학 등 신흥전략기술이 타깃이고, 제조와 생산을 중요시하며, 기술개발에서 생산까지 전 단계를 자국 내에서 완결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적극적인 산업정책이 필요한 때라고 봐야 하나
“현재 기술과 산업을 둘러싼 국가 간의 경쟁이 대단히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를 ’산업 군비경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 간에 어떤 산업 역량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여러 수단을 동원하는 그런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AI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혁명이 산업의 기반 자체를 재편하고 있는 시기다.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이 시스템 전환의 시기에 개별 기업의 판단과 결정에 맡겨놨을 때는 필요한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현재 AI 등 기술 변화가 산업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인가.
“19세기 말 산업혁명을 먼저 한 나라와 나머지 나라 사이에 격차가 급격하게 벌어지는 현상이 있었다. 산업혁명 진입이 늦었던 대부분 나라가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런 현상을 ’대분기’라고 말한다. 지금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AI는 하나의 범용기반기술이기 때문에 AI와 직접 관련된 AI 산업 그 하나만 중요한 게 아니다. 전기나 증기기관처럼, 모든 산업으로 확산이 되면서 기존의 산업들을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바꾸게 된다. 자동차는 자율주행차, 조선소는 스마트 조선, 의료는 스마트 의료로 변할 것이다. 국가 간의 위계도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을 ’제2차 대분기’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향후 수십 년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시기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산업의 대전환은 다른 말로 자본스톡의 대규모 재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기존의 산업 패러다임 속에는 축적된 여러 가지 자산들이 있다. 철도·도로·항구 등 물리적 인프라도 있고, 제품도 있고, 사람에게 체화된 기술, 규제와 제도 등도 있다. 산업혁명은 이 자본스톡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새로운 성격의 인프라, 기술, 제도, 기업을 만드는 과정이 투자다. 또한 이 과정에서 기존의 인프라, 기술 등은 좌초자산이 되기 때문에 전환에 대한 저항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들도 필요하다.”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성장률 제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건가
“초반에 말했던 구조화된 산업의 위기, 생산성의 정체 등을 해결할 수도 있고, 거시경제적으로 보면 성장동력이 될 수도 있다. 최근 우리 경제가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또 선진국이 됐으니까 낮은 성장률에 만족해야 한다 이런 시각도 있다. 하지만 산업 혁신에 필요한 인프라, 기술, 인력에 투자를 집중함으로써 그런 비관론에서 탈피할 수 있다고 본다. 투자주도성장 또는 기술주도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구적 차원에서도 다음 세 가지를 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투자 사이클에 진입하는 국면이다. 탄소 제로 이행을 위한 투자, 인공지능·디지털 전환을 위한 투자, 2050년까지 중산층 소비자가 현재의 두 배 수준(35억)으로 증가하는 인구 구조의 변화. 비관론자로 잘 알려진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가 최근 2030년 미국의 잠재성장률이 4%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통은 2% 정도로 전망한다. AI를 비롯한 새로운 기술의 생산성 향상 효과, 혁신 효과를 매우 크게 보는 것이다. 슘페터주의 경제학자인 카를로타 페레즈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30여년간 선진국에서 고성장과 분배 개선을 동시에 달성한 자본주의 황금기가 있었듯이,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의 확산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황금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황금기가 가능하다는 것인가
“우리가 위기라고 하지만, 상황이 더 안 좋은 나라들도 많다. 우리뿐 아니라 전 세계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대전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산업의 포트폴리오가 좋기 때문에 출발점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새로운 기술 패러다임의 확산을 한국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도 AI 대전환 등을 통해 성장률을 끌어올리겠다며 관련 예산 증액, 국민성장펀드 조성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방향 설정을 잘하고 있다고 보나
“ ’혁신’과 ’혁신의 확산’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AI 기술이 혁신이긴 하지만 성장에 대한 효과는 제한적이다. 진짜 효과는 이 기술이 범용화돼서 가격도 싸지고 여러 분야에 응용이 돼서 많은 산업으로 확산이 될 때 나타날 것이다. 따라서 AI의 기존 산업으로의 확산에 초점을 맞추는 산업정책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AI의 잠재력을 각 산업 부문에서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부문별로 특화된 응용 연구개발에 대한 지원도 확대돼야 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방향은 비슷하기 때문에 결국 어떻게 효과적으로 실행해낼 것인가가 관건이다. 국가의 실행 역량이 중요하다.”
―AI의 확산 등 산업 전환의 과정에서 고용이 축소되고 일자리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자본스톡의 전환 과정에서 기존에 축적된 자산의 가치가 감소하는데, 그중 한 현상이 실업이다. 이 전환 비용을 어떻게 낮추고 어떻게 나눌 것이냐가 문제다. 그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는 방식이 사회보장제도다. 또 너무 급격하다 싶으면 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 비용이 특정 지역과 특정 계층으로 집중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또한 AI발 전환이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다. 자동화를 중심으로 기술을 개발할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역량을 강화하거나 인간과 AI가 협업을 하는 쪽으로 기술을 개발할 것인지는 고정돼 있지 않다. 누구의 관점에서 누가 주도하느냐에 따라 기술 개발의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여러 이해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되는 방식으로 연구개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에만 맡겨두면 이윤 압박 때문에 특정한 방향으로 쏠릴 가능성이 있다.”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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