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골프 모임에 뜸했더니 왜 안 나오느냐고 총무가 자꾸 조르는데 참 난감하네요.”
대기업 임원을 하다 퇴직한 지인이 정례 골프를 자제하면서 봉착한 고민이다. 멤버가 부족하다며 계속해서 오는 연락에 그냥 사정 때문이라고 답하는데도 매번 재촉에 이젠 속내마저 불편하다.
간혹 건강이나 선약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사실 경제적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한 번 나가면 뒤풀이까지 합해 30만원 가까운 비용이 은퇴자인 그로선 사실 벅차다. 일본 가서 드는 비용보다 훨씬 비싸기에 가성비도 따지게 된다.
오래 이어온 소모임 골프까지 커버하려면 월 100만원을 지출해야 하는 그가 단체 골프 자제 결단을 내린 본질적인 배경이다. 그런 그에게 지속적인 참가 독려와 거듭된 거절은 난감하고 때론 거북하다.
경제 여력이 안 된다고 대놓고 얘기하기도 쉽지 않다. 두 번 정도 해명을 듣고 나면 능히 짐작해야 하는데 다급한 총무는 물러서지 않는다.
이러다 보니 요청 받는 사람과 요청하는 모두 부담을 넘어 괴롭기까지 하다. 즐겨야 할 골프가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패러독스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은퇴자 단체팀이 주변에 흔하다. 시간이 갈수록 주최 측으로선 멤버 채우기가 힘겹다.
직장 동우회, 고교동창, 사교모임 등에서 자주 나타난다. 60대 중반 한국은행 퇴직자로 구성된 부부동반 단체팀도 이런 이유로 10팀에서 2팀으로 줄었는데 그나마 근근이 정족수를 채운다.
어떤 멤버가 하루 전 다급한 사정으로 빠진다는 연락을 접하면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간이 덜컹 내려앉는다. 주최 측으로선 연부킹 사정을 감안하면 골프장에 아예 취소를 통보하거나 매번 최소 팀으로 강행할 면목이 없다.
연령대가 높은 팀일수록 이런 사례가 더해진다. 이에 따라 팀을 확 줄여 여건이 되는 멤버끼리 이어가거나 해체하는 일이 생긴다.
뭐니 해도 이유는 그린피가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사업하거나 여유 있는 멤버들이 간혹 과하게 팁을 주거나 비싼 음식, 고급 술을 시키면 옆에서 말도 못하고 끙끙댄다.
퇴직 직후에는 자금 여력과 부대 수입도 있었지만 결국 골프 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연금 생활자가 골프에 돈을 펑펑 쏟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안으로 골프장에 연부킹 대신 요즘 잘만 찾아보면 저렴하면서도 부킹 여력이 있는 골프장이 있다. 2~3주 전까지 흔쾌히 동의한 멤버 위주로 팀을 정해 골프장에 연락하거나 예약자를 달리해 부킹해도 된다.
소모임이면 도심에서 거리가 멀더라도 그린피가 더욱 저렴한 골프장을 찾는다. 9홀을 두 번 돌거나 캐디 없는 골프장이 대표적이다.
아예 비용이 5000원~1만원에 불과한 지자체 파크 골프로도 대안을 찾는다. 절약형 골프가 점점 두드러지는 현실이다.
그린피 부담은 골프장 경영 수입 감소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레저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35% 급감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한 15개 골프장의 상반기 경영 실적을 분석한 결과이다. 이들 골프장 평균 매출액은 98억83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7.9%, 평균 영업이익은 16억9600만원으로 34.6% 줄었다.
표본은 적지만 정부 공식 자료이기에 추세 파악에 무리가 없다. 경기 침체, 골프 접대 감소, 해외 골프 증가, 날씨 영향이 복합적으로 겹쳤다.
지방이 더 심각하다. 전주월드컵골프장(9홀)을 운영∙관리하는 전주시설공단은 지난해 6월 물가 상승률과 운영비 상승 등을 이유로 그린피를 40% 이상 올렸다.
기존 2만9000원이던 평일 이용료는 4만1000원, 공휴일 이용료는 3만8000원에서 5만2000원으로 각각 인상해 지난해 6월부터 적용했다. 그 결과 올해 6월 내장객은 절반 가까이 감소하고 매출도 급감했다.
그린피 인상에 골퍼들이 얼마나 민감한지 드러난다. 지난해 1∼5월 1만2422개팀에 비해 올해 같은 기간에는 6590개 팀이 골프장을 찾아 46.9% 감소했다.
아예 폐업된 곳도 나타났다. 전남 영암군의 사우스링스 영암CC 코스모스 링스 입구에 플래카드가 현재 걸려 있다. ‘당 현장은 공사금 미불로 인하여 유치권 행사 중이므로 출입을 통제합니다’라는 문구이다.
세계 최초 활주로 골프장으로 주목받은 코스모스 링스가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2년 전 KPGA 비즈플레이 전자신문 오픈이 개최된 곳이다.
정식 개장 직후 일부 마니아층이 생겼지만 코스가 단조롭다는 이유 외에 호남 지역 그린피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경영난이 가속화됐다.
국내 골프장 비용은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 거세다. 작년 통계를 보면 대중형 골프장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해 30~40% 높은 평균 매출을 올렸다. 대중형 골프장은 180억원, 회원제 골프장은 206억원으로 각각 33.6%와 44.6% 늘었다.
골프 산업계는 골프장 매출이 인구 감소 추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줄어 2030년께는 코로나 이전인 2018년 정도에 수렴할 것으로 전망한다. 당시 그린피 10만원으로도 골프를 충분히 즐기는 시절이었다.
2030년 후에는 젊은 층 유입이 확 줄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점에 이르기 전에도 골프장 이용 금액은 계속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파크 골프가 생각보다 인기 있고 골프 매력을 압축해놓았다고 하더라고요. 도심에서 즐길 수 있어 시간과 비용 부담도 전혀 없고요.”
내년부터 연금을 수령하는 지인은 조만간 파크 골프채를 구입할 계획이다. 아내도 함께 입문해 국내 여행으로 지방을 돌면서 파크 골프를 즐긴다는 꿈을 그리는 중이다.
정현권 골프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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