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증권투자자·선물거래자 보호센터(SFIPC)의 장신티 이사장이 8월 25일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봉현 |
“개인은 기업이나 금융회사와의 분쟁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다. 정보 부족, 개인 역량의 한계, 높은 소송 비용 등으로 인해 법적 절차를 통해 권리를 지키는 일이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대신해 주는 것이다.”
대만의 증권투자자·선물거래자 보호센터(SFIPC·이하 센터)는 다른 나라에서 비슷한 예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금융투자자 보호 기구이다. 공권력이 금융시장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투자자 보호와 건강한 기업지배구조를 확립하기 위한 대만 사회의 의지가 어떤지를 보여주는 제도이기도 하다.
‘증권투자자 및 선물거래자 보호법’에 따라 2003년 1월 설립된 사실상 공기업인 이 재단법인은 기업과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일반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 센터는 투자자보호기금을 재원으로 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집단소송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한다. 또한 사후 구제기관 역할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 주주 행동주의를 실행하는 기관으로 발전했다. 연간 70곳 이상의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감시 활동을 수행하고, 필요하면 이사 해임소송이나 대표소송을 통해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한다. 소액주주들이 개별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체계적 감시를 가능케 해 대만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건전성 증진에 큰 역할을 해왔다. 지난달 25일 이 센터의 장신티(張心悌)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변호사이자 국립타이베이대학 법학과 교수이다.
— 센터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
“회사 경영진의 잘못으로 피해를 본 주주들을 모아 집단소송을 대행한다. 또 이사의 잘못으로 일어난 손해를 회사가 제대로 추궁을 하지 않으면 회사를 대표해 주주대표소송을 한다. 아울러 부적절한 이사에 대해 해임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대만 거래소 상장회사, 장외시장 등록회사, 신흥시장 상장회사의 주식을 1천주씩 갖고 있다. 필요하면 주주총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소송도 할 수 있다. 투자자 상담과 민원처리, 증권 및 선물 거래로 인한 분쟁 조정, 증권이나 선물회사가 파산한 경우 손해 변제를 위한 기금 운용도 우리의 일이다.”
- 왜 이런 독특한 기구를 만들게 됐나?
“대만은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다. 옛날에는 70~80% 정도였고 지금도 50∼60% 정도이다. 이들은 기업이나 증권·선물회사와의 분쟁에서 경제적으로 열등한 위치에 있다. 이들의 권익이 침해되더라도, 정보 부족, 개인 역량의 한계, 높은 소송 비용 등으로 인해 스스로 법적 절차를 통해 권리를 지키기 어렵다. 그래서 이들을 우리가 대신해 주는 것이다. 소송이나 중재를 통해 받은 배상금은 센터가 필요한 비용을 제외하고 피해자에게 분배한다. 센터는 이들에게 별도의 비용을 청구하지 않는다. 투자자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독려하고 투자자를 보호해 대만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꾀하려는 센터의 비영리적 활동이다.”
- 그런 일을 하려면 상당한 전문인력이 필요할 텐데.
“현재 52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중 변호사가 20명, 회계사가 2명 있다.”
- 소송은 어떻게 하나?
“검찰이 수사하거나 고소장이 접수된 사건의 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그중 센터 이사회가 심의해서 소송할지 말지 결정한다. 검찰이 다루는 사건을 주로 하는데 형사소송과 민사소송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뉴스 등에서 이슈화가 된 사건도 민사소송을 검토한다. 소송하기로 결정하면 투자자 권한 위임을 요구하는 공고를 한다.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은 일단 20명 이상의 투자자가 신청해야 한다. 청구인이 모이면 센터가 소송이나 중재신청을 하고 확정판결이 나면 강제집행 청구한다. 이를 소송에 참여한 이들에게 분배하면 마무리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체 소송 비용을 줄이고 법원의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 대만 사회가 센터에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한다는데.
“검찰과 협력을 많이 한다.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행화되어 있다. 기업 관련된 사건에 대해 검찰이 기소해도, 기소하지 않아도 연락이 온다. 공소장을 볼 수 있다. 그래야 민사소송을 할 수 있다. 또 센터가 소송이나 중재 신청을 신속히 진행할 수 있도록, 요청 시 관계 기관이 자료를 제공하도록 보호법에 규정되어 있다. 아울러 집단소송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보호법은 센터가 신청하는 가압류 또는 가처분에 대해 법원이 담보 제공을 면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센터가 제기한 소송이나 상소에 대한 소송비용은 3천만 대만달러(약 15억원) 이내로 제한되며, 강제 집행 시에도 집행 수수료가 잠정적으로 면제된다.
지난해 11월21일 대만 신추시에 위치한 대만 반도체 기업 티에스엠시(TSMC)의 본사에 있는 혁신 박물관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오고 있다. AFP 연합뉴스 |
- 소송 비용과 기관운영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법에 따라 조성된 보호기금이 있다. 처음 조성된 기금은 대만 돈 10억 달러(약 500억원)였다. 여기에 금융감독관리위원회(FSC)가 지정해 대만증권거래소(TWSE), 대만선물거래소(TAIFEX), 타이베이증권거래소(TPEx) 등이 매달 거래수수료의 일정 비율을 보호기금에 낸다. 이제 센터가 커져서 돈이 많이 필요하다. 한 달에 약 1500만 대만달러(약 7억5천만원) 정도 들어온다. 올 7월 현재 모인 기금은 93억 대만달러(약 4650억원) 정도이다. 그런데 원금은 두고 이자만 사용할 수 있어서 운용이 넉넉지는 않다. 펀드가 커 보이지만 파산하는 증권사나 선물회사가 있으면 여기서 배상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아직 다행히 그런 곳은 없었다.”
- 지금까지 얼마나 소송을 제기했나?
“센터가 설립된 2003부터 올해까지 모두 305건의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액은 약 800억 대만달러(약 4조원)이고 중재 등을 포함해 이 중 77억3천만 대만달러(약 3865억원)를 회수했다. 위임자 수는 18만6천여명에 이른다. 집단소송 유형으로는 거짓된 재무제표, 투자설명서 등을 허위기재 한 게 34%로 가장 많고 내부자거래(32%), 주가조작(26%), 순이다.”
- 소송 같은 사후구제 말고도 주총 참석으로 적극적 주주 행동도 한다는데
“우리는 주요 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주식을 1천주씩 보유하고 있다. 주주로서 참석한다. 연간 70여 개 이상의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감시 활동을 수행하고, 필요하면 이사 해임소송이나 대표소송을 통해 경영진의 책임을 추궁한다. 올해 우리는 67개 정기 또는 임시주총에 참석했다. 인수합병, 임원의 과도한 보상. 감자 등 주요 안건에 대해 발언하고 찬성반대 의사표시를 한다.”
타이베이/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민주주의, 필사적으로 지키는 방법 [책 보러가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