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바이루 프랑스 총리(가운데)가 7월 31일 파리 외곽 몽트뢰유의 금융조사기관 트라핀(Tracfin)을 방문한 뒤 아멜리 드 몽샬랭 공공계정 담당 장관(왼쪽), 앙투안 마냐 트라핀 국장(오른쪽)과 함께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바이루 총리는 재정 악화로 인해 공휴일 축소·복지 동결 등을 담은 긴축 예산안을 내놓은 상황이다. /EPA·연합뉴스 |
프랑스에서 9개월 새 두 명의 총리가 나랏빚을 줄이기 위한 예산을 내놨다가 불신임당한 것은 단순 정권 위기 차원을 넘어서, ‘재정 포퓰리즘’에 중독된 정치와 정부 운영 방식이 복합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사건이다.
프랑스의 2025년 1분기 기준 누적 국가 부채는 3조3454억유로(약 5461조원)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3.9%로, 유로 사용국(유로존) 중 그리스(152.5%)와 이탈리아(137.9%) 다음으로 높다. 연간 재정 적자도 2024년 1697억유로(약 268조원)로 GDP의 5.8%에 달했다. 유로존 평균 적자율(3.1%)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그래픽=박상훈 |
이러한 재정 취약성의 원인으로는 우선 ‘큰 정부’가 먼저 지목된다. 프랑스의 정부 지출은 GDP의 57.2%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핀란드 다음으로 높다. OECD 평균은 42.6%다. 특히 연금과 건강보험, 실업수당 등 OECD 분류상 ‘사회 보호 부문’, 즉 복지 지출의 비율이 23.4%로 핀란드(25.7%)와 스웨덴(25.0%) 다음이다. 사실상 북유럽형 모델에 가까운 셈이다.
복지 지출을 쉽게 줄이기 힘든 것도 문제다. 프랑스 연금은 현 세대가 낸 보험료로 곧바로 은퇴자의 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부족한 부분은 정부 재정으로 충당한다. 연기금을 적립해 그 수익금과 원금으로 지급하는 한국과 다르다. 재정으로 평균 소득의 절반 이상을 보장하고, 철도·공무원 등 특수 직역 연금도 유지한다. 이 와중에 2023년처럼 정년 연장이나 연금 및 사회보장 급여 삭감 논의가 나오면 대규모 파업이 이어진다.
프랑스 시민들이 2023년 3월 파리에서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연장하는 연금개혁 법안에 반대하며 열린 8차 전국 시위와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
프랑스 건강보험은 진료비의 65~70% 이상을 국가가 부담하고 만성질환자는 사실상 무상 진료를 받는다. GDP 대비 보건 지출은 약 11%로 OECD 평균(9.2%)을 크게 웃돈다. 실업수당 역시 프랑스는 근속과 연령에 따라 최대 24~36개월간 평균 임금의 57%를 지급한다. OECD에서 가장 관대하다. 그 대가는 만성적 적자와 급증하는 부채다. OECD는 “코로나 팬데믹과 에너지 가격 급등 위기 이후 정부의 긴급 대응을 거둬들였지만, 구조적 적자와 이자 비용이 커지며 부채 비율의 상향 경로가 고착됐다”고 했다.
여기에 세입 구조도 계속 악화하고 있다. 프랑스 감사원은 “각종 조세 감면과 사회 부담금 감면으로 연간 1700억유로가 사라지며 세원이 잠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로 인해 명목 세율은 높지만 실효 세수는 계속 낮아진다. 세수는 줄어드는데, 연금과 각종 사회보장 수당은 물가 연동과 고령화로 지출 압박이 커지니 재정은 계속 악화할 수밖에 없다.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증가는 신용 등급 강등으로 이어졌다. S&P는 지난해 5월 프랑스의 국가 신용 등급을 AA에서 AA-로 낮췄고, 올 들어 전망을 ‘부정적’으로 돌렸다. 무디스도 지난해 Aa2에서 Aa3로 하향했다. 이 영향으로 2022년 초 1%대였던 10년 만기 프랑스 국채 금리는 3년여 만인 현재 3.5%에 육박하고 있고, 이자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23년 603억유로였던 국채 이자는 올해 665억유로, 내년 751억유로로 늘고 2029년에는 1077억유로에 이를 전망이다. 경제성장률은 1%대에 머무는데, 이자 부담만 늘어나면서 ‘빚 돌려막기’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보다 못한 EU는 지난해 7월 프랑스에 과도 적자 절차(EDP) 개시를 권고했다. 회원국의 재정 적자와 국가 부채를 감시·시정하는 제도다. EU는 올해 1월 프랑스 정부에 “2029년까지 재정 적자를 GDP의 3%로 줄이라”고도 했다. 바이루 총리와 전임 바르니에 총리의 긴축 예산안은 이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하원 과반 세력이 없고 좌우 양극단이 ‘긴축 반대’를 정치적 무기로 삼으면서, 예산안은 곧 총리의 운명을 좌우하는 정치적 도박이 됐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복지 확대·세금 감면 약속을 했고, 이후 긴축은 좌우 모두에서 거센 반발을 사왔다”고 지적했다.
프랑스 정치권 일각에선 사실상의 ‘국가 부도’인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까지 언급된다. 아멜리 드 몽샬랭 예산장관은 지난 6월 “재정을 건전화하지 않으면 IMF나 EU의 감독을 받을 수 있다”고 했고, 브뤼노 르메르 재무장관도 “긴축안이 무산되면 IMF 개입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유로화를 쓰는 프랑스에서 재정 위기 가능성이 커지면 ECB(유럽중앙은행)와 EU가 우선적으로 나서므로 IMF의 실제 개입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지만 세계 7위 경제 대국인 프랑스에서 이런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것 자체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고 주요 외신들은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