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토안보부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현장을 급습해 한국인 근로자들을 체포하고 있다./ ICE 홈페이지 |
“한국으로부터 수십억 달러 투자를 미국으로 유치했다고 자랑하더니, 돌아서서는 현대차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임시로 미국에 온 한국인들을 체포했다. 어리석음은 화를 부른다(stupidity burns).”
미국의 경제 전문 저널리스트 제임스 수로위에키는 지난 4일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급습 이후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미국의 해외 투자 유치와 인력 정책 사이의 모순을 집약한 비판이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올 초 출범 이후 한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에 수십조 원대 투자를 요구하며 “미국 제조업 르네상스”를 외쳐 왔다. 하지만 정작 그 투자와 패키지로 묶이는 인력 유입에는 구조적 벽을 치고 있다. 대규모 공장을 짓고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려면 현장에서 기술을 전수할 숙련 인력이 필수적인데, 이 부분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지아주 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 구금 사태는 그 모순이 현실로 드러난 사례였다.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의 태도 변화도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단속 하루 전날인 지난 3일 또 다른 한국 바이오 기업의 조지아주 신규 투자를 “조지아 경제의 성장 동력”이라고 환영했던 그는, 하루 뒤에는 ICE의 단속에 대해 “주 정부가 협력했다”며 이를 적극 정당화했다. 한국 투자를 반기는 모습과 한국 인력을 겨냥한 단속 지원이 불과 하루 간격으로 엇갈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메릴랜드주 앤드루스 합동 기지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최근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합작 공장 건설 현장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미 이민 당국에 대규모로 체포된 일과 관련해 “우리는 한국과 매우 좋은 관계”라며 이번 일로 한미 관계가 긴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AP 연합뉴스 |
태미 오버비 전 미국 상공회의소 아시아 담당 부회장은 뉴욕타임스에 “‘미국은 우리 돈(투자)은 원하지만, 우리(인력)는 원치 않는다’는 신호에 아시아 전역이 큰 충격을 받고 있다”고 했다. 미 매체 액시오스는 “트럼프 행정부는 공장을 미국에 짓도록 압박하면서도 동시에 이민 단속을 강화해 고숙련 엔지니어 인력 부족을 초래했다”며 “이번 사태가 다른 해외 제조업체들의 미국 투자 계획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모순은 최근의 정책 흐름에서도 드러난다. 트럼프가 관세를 앞세워 해외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연일 압박하는 와중에, 국토안보부(DHS)는 지난달 28일 외국인 학생·연구자의 체류 기간을 최대 4년으로 제한하고, 전문 인력 비자 심사도 까다롭게 바꾸는 정책을 발표했다. 비자 승인 지연으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조차 숙련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사 과정이나 첨단 연구 프로젝트처럼 장기간 체류가 필요한 경우엔 사실상 발목이 잡히는 셈이다. 미 과학·기술 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미국 이민국의 고용 비자 심사가 갈수록 까다로워지면서 승인 지연 문제가 심각하다”며 “실리콘밸리 기술 인력의 3분의 2가 외국 국적인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산업 혁신을 저해한다”고 지적했다.
8일 조현 외교부장관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미국 워싱턴DC로 출국길에 오르고 있다. /장경식 기자 |
동시에 이민자 단속 수치 달성을 위한 ‘토끼몰이식 단속’도 계속되고 있다. ICE는 조지아 공장 급습 직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일대에서 ‘패트리엇 2.0’ 작전을 개시했다. 지난 5월 해당 지역 일대에서 약 1500명을 체포했던 단속 작전의 후속판이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도 엇박자가 감지된다. 톰 호먼 국경안보 책임자는 7일 CNN 인터뷰에서 “앞으로 이런 대규모 단속을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트럼프 역시 사태 초기에는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ICE는 자기 일을 했다”고 했지만, 7일에는 “배터리 인력이 부족하다면 한국 전문가를 불러와 미국인을 훈련시켜야 한다”며 유화적인 메시지를 내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번 사태는 트럼프의 요구에 따라 미국 투자를 고려하던 해외 기업들에 새로운 위험 요인을 주입한 사건”이라며 “조지아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공장은 트럼프의 두 가지 핵심 정책인 ‘불법 이민 단속’과 ‘미국 제조업 재건’이 충돌한 장소”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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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박국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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