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27)씨가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먹은 편의점 삼각김밥과 콜라/장경식 기자 |
서울 중구의 한 기업에서 일하는 1년 차 직장인 박모(27)씨는 일주일에 두 번 편의점에 들러 점심을 해결한다. 샌드위치(3500원)와 삼각김밥(1500원), 삼각김밥과 콜라 한 캔(1700원)이 단골 조합이다. 매번 식당에서 점심 사 먹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박씨는 “국밥 한 그릇 가격이 1만원을 훌쩍 넘는데 매일 ‘점심 외식’은 사치”라며 “편의점 식단을 하는 날은 오후 4시만 돼도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 퇴근 시간까지 버티기 쉽지 않다”고 했다.
콩국수 한 그릇에 1만5000원, 냉면은 1만7000원 하는 시대. 특히 올여름 역대급 폭염과 집중호우로 식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점심값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그러자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산 음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미국 대도시에서는 점심값을 아끼거나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등으로 사무실 책상 앞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는 ‘책상 앞 슬픈 점심(sad desk lunch)’ 문화가 있다. 가파르게 치솟는 외식 물가 탓에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
통계청이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에 따르면 농·축·수산물 물가는 4.8% 상승해 지난해 7월 이후 13개월 만에 최대로 올랐다. 특히 작년 동월에 비해 찹쌀(45.6%), 돼지고기(9.4%), 국산 쇠고기(6.6%), 고등어(13.6%), 달걀(8%)의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서울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 7개의 평균 가격도 최근 일제히 오르고 있다. 지난 7월 기준으로 2년 전 동월과 비교하면 김밥 13%, 비빔밥 11%, 냉면 10%, 김치찌개 및 백반은 9% 올랐다.
강남이나 광화문, 여의도 등 서울 시내 주요 오피스 권역 직장인들이 느끼는 점심값 상승률은 더욱 가파르다. 수서역 인근 식품 회사에 다니는 이한준(27)씨는 집에서 계란 2개와 닭가슴살 등을 싸 와서 점심때 홀로 먹는다. 모자라면 회사 탕비실에 있는 과자로 때운다. 이씨는 “주말 소개팅에 밥값을 많이 쓰는데 평일까지 동료들과 한 끼에 몇 만원 하는 초밥, 파스타 등을 사 먹기 부담스럽다”고 했다.
회사 인근 자취방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직장인들도 많다. 2년 차 직장인 변모(25)씨는 점심시간이면 회사 근처에 있는 자취방으로 뛰어가 밥을 먹고 돌아온다. 부모님과 살면서 회사를 출퇴근하는 김모(24)씨는 “계란, 과일 등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털어와 도시락을 싸 먹으니 월급을 훨씬 아낄 수 있더라”라며 “같은 팀 동기 4명 모두 도시락을 싸 다닌다”고 했다.
비싼 점심값에 지친 직장인들은 주변 구내식당으로 ‘원정’ 가고 있다. 8일 오전 11시 서울 송파구 문정동 법조타운 구내식당에는 20m가 넘는 줄이 늘어섰다. 9000원을 내면 페퍼로니 피자에 돈가스, 들기름 막국수, 닭죽, 고추장 불고기에 샤인머스켓과 단호박식혜까지 먹을 수 있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 한국전력공사 조끼를 입은 직장인, 의사와 간호사 등 근처에서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170여 개 테이블이 가득 찼다. 직장인 김지섭(38)씨는 “냉면 한 그릇도 못 사 먹는 돈으로 이렇게 푸짐하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 구내식당 말고는 없다”며 “일주일 치 식권을 미리 구매해 매일 20분 걸어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고물가에 지친 직장인들이 외식을 줄이자 식당들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사업체는 총 40만2000곳으로 2020년 이후 매년 증가 중이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약 10%(4만1000곳) 증가했다. 일반음식점 7만4000곳, 휴게음식점 3만6000곳이 문을 닫았다.
본지가 만난 서울 지역 직장인들은 정부가 직장인들의 식비를 지원해 밥값 부담을 줄이는 ‘직장인 든든한 점심’ 정책을 실시하는 데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송파구 문정동에서 만난 백모(27)씨는 “결국 우리 세금으로 다시 밥값을 주는 것 아니냐”며 “단발성 현금 지원보단 물가 안정에 더 신경 썼으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광화문에서 근무하는 이모(34)씨는 “정부 돈을 받은 직장인들이 몰리면 식당이 가격을 더 가파르게 올리는 것 아니냐”고 했다.
[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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