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펼쳐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서 첫날 최고가인 450만달러(약 62억6천만원)에 팔린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퍼드의 3부작 ‘그래, 그럼 내가 사과하지’(2025)를 사람들이 살펴보고 있다. 노형석 기자 |
그들 앞에 한국 미술 시장은 활짝 열린 탄탄대로의 장삿길이었다.
지난 3~7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 미술품 장터(아트페어)로 펼쳐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의 가장 큰 승자는 프리즈 서울에 참여한 세계 최대 다국적 화랑 업체 하우저앤워스였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1990년대 초반 창업해 미국, 유럽, 홍콩 등 지점을 거느린 이 거대 화랑은 개막 첫날부터 대박을 터뜨렸다. 사회적 추상회화를 작업해온 미국 대표 작가 마크 브래드퍼드의 3부작 ‘그래, 그럼 내가 사과하지’(Okay, then I apologize. 2025)를 장터 최고가인 450만달러(약 62억6천만원)에 거래했고, 여성 거장 루이즈 부르주아의 드로잉 2종(21억여원), 현대 회화 대가 조지 콘도의 신작(16억7천만원) 등도 팔아치웠다. 라시드 존슨, 제프리 깁슨, 이불, 에이버리 싱어 등 주요 작가 작품까지 컬렉터들이 관심을 보이면서 첫날에만 800만달러(108억원), 전체 통틀어 130억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100억원을 훌쩍 넘겼던 2022년 첫 회 프리즈 서울 출품 때보다 웃도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지난 3~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펼쳐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노형석 기자 |
빙하기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미술 시장이 장기 불황에 짓눌린 지금 상황에서 이런 결실을 거둔 데는 이 화랑의 작가 섭외력과 미술계 영향력 네트워크가 한몫 단단히 했다. 1년여 전부터 리움미술관, 호암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과 협업 관계를 유지해, 페어 개막 직전 일제히 개막한 이불 리서치 개인전(리움), 루이즈 부르주아 회고전(호암), 마크 브래드퍼드 개인전(아모레퍼시픽)의 후원 업체가 됐다. 이런 전시 성과는 자연스럽게 이번 페어의 신작 매출의 결실로 이어졌다. 이미 세계 미술계에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 거대 화랑은 한국 시장도 자신들의 마케팅 텃밭임을 이번 페어에서 입증한 셈이 됐다.
영국의 세계적인 아트페어 업체 프리즈가 주최한 프리즈 서울에선 하우저앤워스와 나머지 화랑의 매출액 편차가 도드라졌다. 화이트큐브, 타데우스 로파크, 리먼 머핀 등 다른 서구 유력 화랑들도 게오르크 바젤리츠, 앤터니 곰리, 모나 하툼, 바버라 크루거, 허넌 배스 등의 작품으로 30억~40억원대 매출액을 올렸지만, 하우저앤워스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 화랑들과의 격차는 더욱 심했다. 계엄령 여파와 불황으로 서구 화랑들이 대거 불참한 공백을 한국 화랑이 메우면서 프리즈 서울에 무려 31개 업체나 참여했으나, 김환기의 1950년대 반구상 작품을 20억원대에 판매한 학고재 화랑을 제외하면, 대체로 단색조 회화 작가 중심으로 10억원대 미만의 올망졸망한 거래 실적을 내는 데 그쳤다. 일각에선 프리즈 안에 한국 화랑들이 별도의 위성 장터를 차렸다는 촌평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3~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펼쳐진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 서울’에서 사람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노형석 기자 |
한국화랑협회가 주최한 올해 키아프 서울에는 20여개국 175개 화랑이 부스를 차렸다. 국외 갤러리(50곳)의 참여가 도드라졌다. 하지만 매출액 규모는 프리즈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해 공개하기가 ‘남세스럽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단색조 회화 대가 박서보와 일본 설치 작가 시오타 지하루, 작고 대가 김창열 등의 작품을 갤러리 현대, 가나아트, 국제갤러리 등 메이저 갤러리들이 수억원대에 판 것을 빼면, 대다수 화랑들은 중견·소장 작가 작품을 수백만~수천만원에 파는 중저가 시장에 고정되는 양상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의 영향으로 젊은 고객이 크게 늘어 소품을 구매하는 양상이 나타났고, 아시아권 화랑을 위시한 소장 갤러리들이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청년 작가 출품작을 다수 전시해 신선한 자극을 준 점이 돋보였다.
이번 페어는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시장 여건이 맞물려 돌아갔다. 결국 1억5천만원 넘는 비싼 부스비를 물면서 수지는 전혀 기대하지 못한 채 허울 좋은 스펙 쌓기의 구실로 변해가는 한국 중견 화랑들의 프리즈 출품과 키아프 홀대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과제로 남았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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