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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필수 관광코스 '한복 입고 고궁 방문'…국적불명 한복?

SBS 유영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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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복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


"도대체 어느 나라 옷이냐" vs "안 입으면 무슨 소용이냐"

올해 7월 1달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대인 136만 명을 기록한 가운데 이들이 빌려 입는 한복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한복 입고 고궁 방문'이 외국인 관광객의 '필수 코스'로 대성황을 이루면서 경복궁 등 고궁 주변에서 형형색색 화려한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외국인은 이제 서울의 한 모습이 됐습니다.

다만 이들이 찾는 한복은 전통과 다른 '퓨전 한복'입니다.

"한복 대중화의 기폭제"라는 호응과 "정체성을 훼손한 국적 불명 의상"이라는 비판이 맞섭니다.

"전통 한복은 잘 나가지 않아요. 사진이 잘 나와야 하니까 화려한 디자인을 찾는 손님이 많습니다."


지난 4일 경복궁 인근 한복 대여점의 점원 설 모(34) 씨는 외국인 관광객이 어떤 디자인을 선호하는지 묻자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는 금박 무늬가 붙어 있는 반짝이는 비단 치맛자락을 들어 보이며 "특히 이런 디자인이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결제를 기다리던 외국인 관광객들은 대부분 금박이 화려하게 박힌 퓨전 한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팔이 비치는 시스루 저고리와 서양 드레스처럼 부풀린 링 속치마가 가미된 디자인도 인기였습니다.

설 씨는 "가게에 대만 손님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종로구에서 한복 대여점을 운영하는 한 모(32) 씨도 "코로나19가 끝나고 K-팝 열풍까지 겹치면서 하루 평균 800명 정도 방문하고 있다"며 "대부분 반짝거리는 퓨전 한복을 고른다"고 말했습니다.


폭염이 극성을 부리는 날씨였지만 형형색색의 두루마기나 저고리를 입은 외국인들은 연신 방긋방긋 웃으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타이완에서 온 린진위(30) 씨는 자신의 금박 무늬 두루마기를 가리키며 "그다지 편하진 않지만 빛나는 디자인이 만족스럽다"며 웃었습니다.

허리에 리본을 매단 퓨전 한복을 입은 미국인 제니(29) 씨는 "날씨가 너무 덥긴 하지만 한복이 예쁘긴 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타이완인 팅(46) 씨는 "전통문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한복을 입었다"며 "다들 입고 있어서 입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는데, 막상 입으니 마음에 든다"고 밝혔습니다.

오늘(8일)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의 '4대궁 및 종묘 한복착용 입장객 현황'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복을 입고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은 172만 명에 달했습니다.

하루 4천700여 명이 방문하고 있는 셈입니다.

한복을 입으면 궁궐 입장이 무료입니다.

전통 한복과 생활 한복 모두 무료관람 대상입니다.

다만, 두루마기만 걸친 경우는 인정하지 않고, 상의(저고리)와 하의(치마, 바지)를 갖춰 입어야 합니다.

또 과도한 노출 등을 금지하며 궁궐의 품격에 어울리는 한복을 착용할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퓨전 한복이 전통을 훼손한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앞서 2018년 종로구청은 시스루 저고리, 짧은 치마 등 '국적 불명' 수준으로 변형된 한복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습니다.

종로구에는 4대 궁궐 중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이 위치해 있습니다.

당시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한복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변형되고 왜곡된 경우가 많아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또 2024년 당시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경복궁을 찾는 많은 관광객이 한복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지만, 실제 한복 구조와 맞지 않거나 '국적 불명'인 경우가 많다"며 "국가유산청이 앞장서서 우리 고유의 한복에 대한 개념을 바로잡고 개선할 때"라고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금지는커녕 퓨전 한복은 더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도 "국적 불명 한복 제한에 대한 별도 논의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며 "한복은 시대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고, 고궁에서의 한복 체험이 한복의 세계화·활성화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경복궁 인근 골목에 들어선 한복 대여점들의 대여 가격은 평균 2시간에 2만 원, 4시간에 2만 5천 원 수준으로 책정돼 있습니다.

일부 매장은 1시간에 9천 원, 또 다른 매장은 1시간 30분에 1만 원에 빌려주기도 합니다.

프리미엄 한복은 일반 한복보다 1만 원가량 더 높은 가격에 대여할 수 있습니다.

메이크업과 사진 촬영 비용은 별도입니다.

몇몇 한복 대여점들은 직접 옷을 제작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 대여업자는 "광장시장에서 원단을 사와 가게에서 믹싱해 한복을 만들고 있다"며 "금박 무늬도 일일이 붙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가 한복은 '메이드인차이나'이거나 중국산 원단이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여업체들끼리 경쟁이 붙으면서 점점 더 조악한 옷이 만들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다른 대여업자는 "만졌을 때 플라스틱처럼 느껴지는 등 재질이 좋지 않은 것은 대부분 중국산"이라며 "새 상품처럼 보이는데 대여료가 1만 원대라면 중국산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퓨전 한복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립니다.

대학생 김 모(22) 씨는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게 문화라고 생각한다"며 "꾸준히 사용할 수 있다는 면에서 퓨전 한복은 대중화의 일부"라고 말했습니다.

취업준비생 류 모(25) 씨도 "평소에도 퓨전 한복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며 "전통을 계승하면서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직장인 김 모(25) 씨는 "사진 촬영용으로는 매력적이지만, 한복의 의미를 단순한 코스튬으로 소비하는 건 아쉽다"고 지적했습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집니다.

한복 대여업자 한 모 씨는 "전통이 중요한 건 맞지만 고집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전통과 트렌드 모두 수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황이슬 한복 디자이너는 "전통 한복과 생활 한복은 공존할 수 있다"며 "관광지에서는 체험용 의상으로, 일상에서는 생활 한복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이어 "한복을 입는 것 자체가 드문 현실에서 어떤 형태든 체험이 이어지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박술녀 한복인은 "시대에 따라 한복 디자인도 변하기 마련이지만, 근본을 훼손하는 건 위험할 수 있다"며 "현대화를 거치더라도 우리의 뿌리는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우리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발전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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