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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북·중·러 결속 이후 한국의 외교 전략

조선일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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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승절 행사로
전체주의 삼각체제 출정
김정은 입지도 강화돼

미·북 직거래 경계하고
한국의 가치와 쓸모를
행동으로 美에 입증해야
9월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등이 전승절 열병식 참관을 위해 베이징 톈안먼 망루로 이동하고있다./UPI 연합뉴스

9월 3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 등이 전승절 열병식 참관을 위해 베이징 톈안먼 망루로 이동하고있다./UPI 연합뉴스


2012년 말 중국 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기치로 아시아 패권 장악을 위한 대미(對美) 도전에 나섰다. 그 후 2~3년간 중국은 대외 영향력 확대를 위해 ‘일대일로 구상’을 천명하고,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창설을 주도했다. 첫 항공모함 랴오닝함을 진수하고, 태평양 세력권 분할을 미국에 요구하는 등 영향력 확장에 매진했다. 중국이 방대한 남중국해의 군사적 강점을 시작한 것도, 한국 해군함의 동경 124도 서측 잠정조치수역 진입을 차단하면서 실효 지배 책동을 시작한 것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하는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한 것도 모두 그 무렵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2015년 9월 3일 중국군의 ‘항일 전쟁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를 기리는 전승절 70주년 열병식에 전례 없던 각국 정상 초청을 진행했다. 이는 명백히 중국 영향력 아래에 있는 국가들을 줄 세워 세력을 과시하려는 의도였다. 당시 22국 정상이 참석했는데, 박근혜 대통령 외 서방 주요국 정상은 없었다. 당시는 미·중 패권 대결이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시점이었으나, 한국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열병식 맨 앞줄 주빈으로 참석했던 기이한 장면은 미국 정부와 싱크탱크들의 기억 속에 잊을 수 없는 충격적 흑역사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지난 3일 같은 곳에서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이 개최되었다. 신냉전으로 세계가 두 동강 난 시기에 열린 이 열병식은 중국과 러시아를 주축으로 하는 반미·반서방 진영의 결속을 상징하는 자리가 되었다. 중국 정부는 참가국 확대를 위해 많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으나, 정상급 외빈은 한두 명 늘었을 뿐이고 질적으로는 10년 전만 못했다. 브릭스(BRICS) 국가 가운데 중·러를 제외한 인도·남아공·브라질이 모두 불참했고,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 회의 참석차 이틀 전까지 톈진에 머물렀던 인도 총리도 오지 않았다. 10년 전 참석했던 한국·이집트·남아공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이 불참한 반면, 북한·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정상 등이 새롭게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과 우방국들을 싸잡아 관세 협상과 방위비 협상으로 압박하고 홀대하는 와중에도, 신냉전 시대에 미국을 등지고 중국 진영에 합류하는 모험을 감행한 나라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패권국이 될 가능성이 점차 희미해지는 미·중 패권 경쟁의 현실이 참석 여부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적과 아군’ 구분에 민감한 트럼프 행정부의 날카로운 시선도 주요 고려 사항이었을 것이다. 그런 배경에서 중국이 시진핑·푸틴과 더불어 열병식 맨 앞줄 주빈석을 장식할 얼굴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초빙한 것은 깊은 고심과 고육지책의 산물로 보인다.

1959년 마오쩌둥, 흐루쇼프, 호찌민, 김일성 등 세계 공산주의 지도자 4인방이 함께 섰던 천안문 망루에 66년 만에 시진핑 주석, 푸틴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이 나란히 섰다. 이 모습은 신냉전의 세계에서 자유 민주 진영과 대결하는 전체주의 진영의 결속을 과시하는 상징이었다. 또한 중국이 열병식에서 과시한 신형 전략핵무기들과 더불어 그 세 나라가 미국에 보내는 무언의 위협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반미 결속이 외교적 과시의 차원을 넘어 얼마나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국내외 난국 타개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중요한 전략적 흥정을 벌여야 하는 북한과 러시아는 중국과는 다른 셈법으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이미 사실상 존재해 온 북·중·러 3국의 결속은 새삼 놀랄 만한 큰 변화는 아니나, 한국에 불리한 상황 전개임엔 틀림없다. 김정은은 전승절 행사에 핵심 조연으로 출연한 대가로 최상의 의전적 예우와 소원했던 북·중 관계의 복원뿐 아니라 상당한 실질적 지원도 약속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미 협상 입지가 강화된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라 한국을 배제하고 미국과의 한반도 문제 직거래를 적극화할 수 있다. 한국의 국익에 반하는 미·북 합의가 도출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동맹국 한국의 가치와 유용성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미국에 입증함으로써 미국이 스스로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고 배려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최선의 외교 전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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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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