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9월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양대 노총 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
우리나라는 문화 선진국인가요? 그런 것 같습니다. 케이(K)컬처가 그 증거입니다. 우리나라는 노동 선진국인가요?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오이시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산업재해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소년공은 공장에서 일하는 미성년자를 일컫던 말입니다. 1970~1980년대에 우리나라에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공장에서 일하며 돈을 벌던 청소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위험한 환경에서 장시간 불법 노동을 했습니다. 노동관계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던 시절입니다. 소년공들은 공장에서 일하며 사고를 당했고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바로 그런 소년공이었습니다. 2017년 출판한 ‘이재명은 합니다’는 그의 소년공 시절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목걸이 공장을 거쳐 성남 상대원동의 공단에 있는 동마고무라는 공장에 취직했다. 1976년, 만 12살이던 해였다. 공장에 취직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취업하는 것이 다반사였다.”
“어느 날 기어이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동력 벨트에 손가락이 휘감겨버린 것이다. 시뻘건 피가 솟고 손가락 세 개가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이른바 고참들이 나를 병원으로 데려갔지만, 소독약을 바르고 깁스를 한 것이 치료의 전부였다. 나는 깁스를 한 채 다시 공장으로 돌아와 나머지 한 손으로 일을 해야 했다. 산재보험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아직도 내 가운뎃손가락 손톱 아래는 그때의 검은 고무 가루가 남아 있다.”
“두 번째 산재 사고를 당한 것은 대양실업이라는 공장에 다닐 무렵이었다.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거기서 내가 맡은 일은 기계식 프레스로 쇠가죽을 절단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눈 깜빡할 순간 프레스에 왼쪽 팔뚝이 찍히고 말았다. 그때도 병원 치료는 아주 간단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2년 뒤쯤 키가 부쩍 자라고 나서야 왼쪽 팔이 심하게 휘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팔뼈 중 하나가 성장을 멈추고 2~3㎝ 정도 자라지 않아 왼팔로는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장애인 6급 판정을 받았다. 그 뒤로도 나는 장애를 숨기고 이 공장 저 공장에서 아픈 팔을 가지고 일했다.”
“나는 시너와 아세톤 냄새를 맡아가며 골방 같은 래커실에서 틈만 나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때 후각의 60%를 상실하는 바람에 나는 지금도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후각 장애가 있다.”
소년공은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 법대에 진학했고 성남시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성남시장이 됐습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2017년 1월23일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는 오리엔트 시계 공장에서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1979년 15살의 나이에 노동자로 일했던 공장이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졌습니다. 2018년 경기지사에 당선됐고 2022년 3월9일 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패배했습니다. 3년 뒤 2025년 6월3일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마침내 ‘대한민국 최초의 노동자 출신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노동자 출신 정체성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검찰의 탄압과 사법 리스크를 견뎌낸 정치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더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였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됐으니 이제 노동에는 별 관심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노동에 진심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취임 다음 날인 6월5일 첫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차관에게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사망 사고가 줄지 않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어떤 상황이냐”고 물으며 산업재해 대응책을 주문했습니다.
한 달 뒤 7월5일 국무회의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산업재해 발생률이 가장 높고 사망률도 가장 높다. 노동부만 할 일은 아니고, 모든 관련 부처가 다 함께해야 할 일이다. 현재 할 수 있는 대책, 필요하면 제도를 바꾸는 입법 대책까지 전부 총괄적으로 정리해서 보고해달라. 산업재해, 특히 사망사고 같은 중대 재해의 예방 대책, 또 사후 책임을 확실히 묻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종합적으로 전 부처의 역할을 전부 취합하라.”
7월17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는 “현장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근로감독관 300명을 신속히 충원해 예방적 현장 점검을 불시에 상시적으로 해나가야 한다”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7월25일 경기도 시흥 정왕동 에스피시(SPC) 삼립 시흥공장에서 현장 간담회를 했습니다. 산재가 자주 발생하는 공장을 대통령이 직접 찾아간 것입니다.
“저도 노동자 출신이고 산업재해 피해자입니다. 수십 년 세월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노동 현장에서 죽어가는 노동자들이 너무 많습니다.”
“왜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될까요? 예방을 위한 비용과 사고가 났을 때의 대가가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죠.”
“돈 때문에 또는 비용 때문에 안전과 생명을 희생하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로 바꿔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고 하고, 소위 국민소득이 4만불에 가까운 선진국이라는데, 노동 현장만큼은 그렇게 선진국같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이시디 국가 중에 최고를 자랑하는 산업재해 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뭔지 한번 그 단초를 마련해 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산재 사고가 빈발하는 원인의 핵심을 찌른 것입니다. 그런데도 포스코이앤씨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계속 터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생중계된 7월29일 국무회의에서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것, 특히 사망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인데 방어하지 않고 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다.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니냐”고 강하게 질책했습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과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사람 목숨 지키는 특공대라고 생각하고 정말로 철저하게 단속해야 합니다.” (대통령)
“직을 걸겠습니다.” (장관)
“진짜로요. 상당 기간 지나도 산재가 안 줄어들면 진짜 직을 거십시오.” (대통령)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관)
이재명 대통령이 7월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된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뒷모습 보이는 이 가운데)에게 산업 현장 안전 확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대통령실 사진기자단 |
이재명 대통령이 산업재해와 씨름하는 동안 국회는 8월24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쟁의에 참여한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고,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해 하청 노동자와 원청의 직접 교섭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2일 국무회의에서 법안을 의결했습니다. 법안은 6개월 뒤 시행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이런 말도 했습니다.
“산업재해를 막으려고 단속과 예방을 강조했더니 건설 경기가 죽는다는 항의가 있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자주 하는 말로 ‘새는 양 날개로 난다’고 한다. 기업, 노동 둘 다 중요하다. 어느 한 편만 있어서 되겠냐.”
“(상습 임금체불 기업이) 재범이거나 충분히 줄 수 있는데도 안 준다면 엄벌해야 한다. 저도 임금을 많이 떼여봤다. 노예도 아니고 일을 시키고 떼어먹는다. 처벌이 약해서 그렇다. 다중을 상대로 하는데, 중대 범죄로 생각해야 한다.”
산업재해와 임금체불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진심에 노동계도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민주노총은 국회에 설치되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하기로 9월3일 결정했습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는 1999년 노사정위원회 탈퇴 이후 26년 만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9월4일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오찬을 함께했습니다.
“요새 제가 산재 얘기하고 체불임금 얘기, 이런 얘기를 좀 많이 했더니 나보고 너무 노동 편향적이라고 (웃음) 주장하는 데가 있던데,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저는 누구의 편 얘기를 하기 이전에, 기본적 인권에 관한 문제, 기본적인 상식과 도리에 관한 문제죠. 임금 체불 문제든, 산재 문제든 목숨과 삶에 관한 기본인데 그걸 가지고 친노동이니 친기업이니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요. 제가 오히려 요즘은 기업인들 접촉이나 간담회를 너무 많이 하면서, 노동자 조직은 한 번도 안 봐가지고. (김동명: 원래 문제 있는 사람들하고 자주 만나는 것 아닙니까.) (참석자들 웃음) 왜 이리 공격적으로 나오십니까.”
정부와 노동계의 관계가 이처럼 화기애애한 것은 1997년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 이후 거의 30년 만인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정부, 노동계, 경제계가 손잡고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잘 될 것입니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잡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에 진심일 수밖에 없는 소년공 출신 대통령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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