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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짜리 쇼츠 탓이다! 지각 마감도, 교내 스마트폰 금지도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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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마감이 늦었다. 뭐라 변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몸이 좀 아팠습니다.” 두번이나 썼다. 두번 다 사실이었다. 세번은 쓸 수 없다. 이러다가는 편집자가 집으로 와서 링거라도 꽂으려 할 것이다. 다른 변명도 있다. “글이 너무 안 써졌습니다.” 솔직하다. 계속 솔직할 수는 없다. 지천명이 되면 깨닫는 사실이다. 세상은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매사 너무 솔직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더 솔직하게 말해서 망해버리자. 이번 마감이 늦은 이유는 지난 마감이 늦은 이유와 같다. 스마트폰이다. 소셜미디어가 문제였다. 아니다. 소셜미디어는 양반이었다. 지난 몇년 내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더욱 급진적으로 늘었다. 그놈의 쇼츠 때문이다.



어젯밤 나는 ‘마감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강박은 ‘소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졌다. 강박은 ‘소재를 찾으려면 스마트폰을 봐야 한다’는 강박으로 발전했다. 스마트폰을 여는 순간, 우리는 마크 저커버그가 요즘 가장 강박적으로 노출하는 콘텐츠의 덫에 걸린다. 쇼츠다.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1분 내외 짧은 영상이다. 쇼츠의 덫에 걸리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스마트폰은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요즘 관심 있는 대상을 어떤 패턴으로 검색하거나 이야기하는지를 꼼꼼하게 추적한 뒤 콘텐츠를 추천한다. 조지 오웰이 ‘2984’를 쓴다면 이야기는 스마트폰의 발명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어젯밤 쇼츠의 문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학내 스마트폰 사용 제한 교육법 개정에 대한 글을 쓰기로 했다. 찬반양론을 페이스북에서 검색했다. 교육 관련 글을 찾으니 관련 광고가 뜨기 시작했다. 광고를 지우다 보니 쇼츠가 뜨기 시작했다. 미국 초등학교 총기 난사 관련 쇼츠가 떴다. 분노하며 쇼츠를 보다 보니 알고리듬은 ‘네가 과연 이 창을 닫을 수 있을까?’라는 투로 쇼츠를 투척했다. 쇼츠의 파도 속에서 1분이 넘어가는 쇼츠는 길다는 이유로 더 짧은 쇼츠로 넘기며 쇼츠 서핑을 하다가 결국 ‘11월 소행성을 가장한 외계인 모선 지구 침공설’에 도달했다. ‘세상이 이 모양이니 망해도 싸다’고 생각한 마음속 소리를 스마트폰이 들었던 모양이다. 새벽 4시22분. 나는 편집자에게 던질 변명을 생각했다. “몸이 좀 아팠습니다.” 네, 정신이 좀 아팠습니다. ‘디지털 치매’를 쓴 독일 정신과 의사 만프레트 슈피처에 따르면 스마트폰은 현대인의 신경학적 질병이다.



딴소리가 길었다. 이 글은 초중고 수업 중 스마트폰을 제한하는 교육법 개정에 대한 것이다. 청소년 인권 단체는 개정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당연한 일이다. 원래 청소년은 규칙과 규율과 규범에 시달리는 존재라 모든 규칙과 규율과 규범이 사라지길 원한다. 내 세대는 교복 자율화 끝물이었다. 교복 자율화를 이야기하는 선생과 친구들이 있었다. 학생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과도한 규율에 반항하는 동시에 적당한 울타리에 안심하는 나이라 그렇다. 나는 교복이 좋았다. 아침마다 뭘 입어야 하나 고민하는 게 싫었다. 진짜 문제는 대부분 교복이 예쁘지가 않다는 것이다. 교복 자율화 투쟁보다는 교복 디자인 학생 의견 수렴 투쟁이 더 나았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생 스마트폰 사용 금지는 세계적인 움직임이다. 프랑스는 2018년부터 3~15살 학생의 교내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진보적인 교육으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는 2024년 1월부터 초중고 스마트폰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대안적인 교육으로 유명한 핀란드도 2025년 8월부터 수업 시간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법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교사에게는 스마트폰 압수 권리도 주어졌다. 덴마크 역시 학교 및 방과 후 클럽에서까지 스마트폰 사용을 법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곧 시행한다.



내가 이렇게 굳이 ‘가장 진보적이고 대안적인 교육으로 유명한 북유럽 국가’를 사례로 드는 이유가 있다. 한국의 진보적 어르신들은 미국이나 일본 사례는 잘 안 들으려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북유럽은 규칙과 규율과 규범이 강하고 명확한 지역이다. 그걸 바탕으로 그들은 신뢰받는 대안적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인권’이라는 단어를 가장 열정적으로 사용하는 미국이야말로 규칙과 규율과 규범이 한국처럼 정권 바뀔 때마다 휙휙 제멋대로 변한다. 그런 미국도 35개 주에서 학생 스마트폰 사용 제한·금지 정책을 시행 중이다.



롤모델이 없는 시대다. 우리도 선진국이다. 다른 선진국 따라 할 이유가 없는 시대다. 다만, 학생 스마트폰 금지는 지난 20여년간 세계적으로 충분한 교육적 데이터가 과학적으로 쌓여 나타난 움직임이다. 1분짜리 쇼츠도 견디지 못하고 30초짜리 쇼츠로 넘기며 밤을 지새우는 성인은 마감을 제때 하지 못한다. 즉각적이고 짧은 보상을 안겨주는 스마트폰을 손에 쥔 아이들은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다. 수업 도중 연속적으로 울리는 소셜미디어 알람을 무시할 만큼 공부에 열심인 학생이란, 물론 어딘가에 존재할 수도 있긴 할 것이다. 그렇게 서울대 들어간 옳고 바른 교육적 어르신들의 추억 속 자기 얼굴 속에 말이다.



교내 스마트폰 금지를 반대하는 몇몇 소셜미디어 글을 보다가 잠시 얼어붙었다. 수업 시간에 스마트폰이랑 놀지 않아도 신날 만한 교육 환경을 만들자는 주장이다. 프랑스도 실패했다. 네덜란드도 실패했다. 덴마크도 실패했다. 핀란드도 실패했다. 성공 신화는 따라 할 수 없다. 실패 신화는 참고하지 않으면 곤란하다. 다들 같은 지점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지만, 거의 비슷한 지점에서 실패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조차 스마트폰이 주는 짧은 영상의 도파민 앞에 쓰러지고 있다. 어떤 바른 소리는 너무 바른 소리라 결국 아무런 의미도 없이 허공에 흩어진다. 물론이다. 나도 한국 교육 환경이 쇼츠만큼 재미있어지는 순간을 기다린다. 마감이 쇼츠만큼 재미있어질 때 그날은 오고야 말 것이다.



김도훈 |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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