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등 기후변화 따른 '급성 가뭄' 기승
주기도 기존 '6개월~1년'서 '주 단위'로
'폭염→가뭄→폭염' 악순환 반복·심화
"'비 오면 끝' 안이한 태도로 대비 금물"
지자체 넘어 '국가적 대응' 시스템 필요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강원 강릉시에 결국 지난달 30일 ‘재난 사태’가 선포됐다. 이 지역 주요 생활용수 공급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6일 오전 급기야 12%대로까지 떨어지는 등 3주에 걸쳐 ‘역대 최저치’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소방차·급수차 536대, 해경 함정 등을 총동원해 오봉저수지와 홍제정수장에 하루 3만여 톤의 물을 쏟아붓고 있지만 생활용수 고갈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계속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며칠 안에 ‘시간제 급수’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강릉 가뭄’은 여름철 극한 폭염이 유발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연 재난, 곧 ‘급성 가뭄(돌발 가뭄)’의 대표적 사례다. 일반적인 가뭄은 6개월~1년의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되다가 갈수기(늦겨울~봄)에 발생한다. 반면에 급성 가뭄은 3, 4주, 길어도 1, 2개월 정도의 매우 짧은 기간에 극도로 높은 기온과 강수량 부족이 겹치면서 갑자기 일어난다. 기상 상황에 따른 예측이 가능한 일반적 가뭄과는 달리, 급성 가뭄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발생하는 탓에 대비도 어렵다.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극단적 기후가 더 이상 예외적 상태가 아니듯, 급성 가뭄 역시 이제는 ‘뉴 노멀’(새로운 기준)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통상 급성 가뭄은 특정 기간 수분 증발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수자원이 빠르게 고갈되면서 발생한다. 학계에선 ‘강수부족형’과 ‘폭염형’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의 급성 가뭄은 대부분 극단적인 기온 상승에 따른 ‘폭염형 급성 가뭄’이다. 토양 내 수분이 급격히 증발하며 진행된다는 얘기다.
주기도 기존 '6개월~1년'서 '주 단위'로
'폭염→가뭄→폭염' 악순환 반복·심화
"'비 오면 끝' 안이한 태도로 대비 금물"
지자체 넘어 '국가적 대응' 시스템 필요
5일 최악의 가뭄 사태가 이어지고 있는 강원 강릉시의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에서 산불 진화용 헬기가 저수율을 높이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는 강원 강릉시에 결국 지난달 30일 ‘재난 사태’가 선포됐다. 이 지역 주요 생활용수 공급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6일 오전 급기야 12%대로까지 떨어지는 등 3주에 걸쳐 ‘역대 최저치’ 기록을 연일 경신하고 있다. 소방차·급수차 536대, 해경 함정 등을 총동원해 오봉저수지와 홍제정수장에 하루 3만여 톤의 물을 쏟아붓고 있지만 생활용수 고갈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계속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며칠 안에 ‘시간제 급수’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강릉 가뭄’은 여름철 극한 폭염이 유발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연 재난, 곧 ‘급성 가뭄(돌발 가뭄)’의 대표적 사례다. 일반적인 가뭄은 6개월~1년의 시간을 두고 서서히 진행되다가 갈수기(늦겨울~봄)에 발생한다. 반면에 급성 가뭄은 3, 4주, 길어도 1, 2개월 정도의 매우 짧은 기간에 극도로 높은 기온과 강수량 부족이 겹치면서 갑자기 일어난다. 기상 상황에 따른 예측이 가능한 일반적 가뭄과는 달리, 급성 가뭄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발생하는 탓에 대비도 어렵다.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극단적 기후가 더 이상 예외적 상태가 아니듯, 급성 가뭄 역시 이제는 ‘뉴 노멀’(새로운 기준)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강원 강릉시의 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4일 오후 사회복지사가 수도 계량기를 잠그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
급성 가뭄, 기후 위기가 불러온 '악순환'
통상 급성 가뭄은 특정 기간 수분 증발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수자원이 빠르게 고갈되면서 발생한다. 학계에선 ‘강수부족형’과 ‘폭염형’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의 급성 가뭄은 대부분 극단적인 기온 상승에 따른 ‘폭염형 급성 가뭄’이다. 토양 내 수분이 급격히 증발하며 진행된다는 얘기다.
강릉 가뭄이 딱 그렇다. 이 지역 생활용수 87%를 담당하는 오봉저수지의 5월 5일 저수율은 85.3%였다. 그러나 두 달여 만인 7월 14일 26.7%로 곤두박질치더니, 지난달 13일 24.6%를 기록하며 종전 최저치(2000년 26%)를 갈아 치웠다. 저수율 하락은 계속됐고, 이달 6일 오전 12.9%를 찍으면서 ‘13%대의 벽’마저 무너졌다. 불과 넉 달 만에 일어난 일이다. 평년 저수율(71%)과 비교하면 5분의 1에도 한참 못 미치는 상태다.
급성 가뭄은 폭염과 맞물리며 서로를 강화하는 ‘악순환’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특히 위험하다. 기상청 지정 가뭄특화연구센터 센터장인 정지훈 세종대 환경융합공학과 교수는 “폭염이 3주가량 지속되면 토양 수분이 고갈되는데, 물이 말라 땅이 뜨거워지면 지면의 대기가 달궈지면서 폭염도 더 심해진다”며 “이 경우 가뭄 역시 가속화화기 때문에, 사실상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악의 가뭄 사태가 이어지는 강원 강릉시의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옆 도로에서 5일 살수차들이 저수율을 높이기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강릉=연합뉴스 |
2010년대 들어 본격화… 급성 가뭄, 세계적 추세로
급성 가뭄은 여름철 장마 기간이 긴 한반도의 전통적인 기후 특성상 극히 드물었던 현상이다. 여름철 최고기온이 여간해선 35도 이상까진 올라가지 않았던 2000년대만 해도 이런 형태의 가뭄은 전례를 찾기 힘들었다. 정 교수는 “2010년대 이후로는 체감온도가 39~40도에 달하는 극한 더위가 2주를 넘어 3주까지 이어졌고, 비가 국지적으로 많이 내리고 급속도로 말라 버리는 강수 패턴이 반복됐다”며 “기후변화가 가속화하면서 급성 가뭄이 발생하기 쉬운 조건을 갖추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역대 최악의 폭염을 기록했던 2018년엔 전국적으로 급성 가뭄이 일어났다. 기후 정책 연구단체 ‘넥스트’의 연구에 따르면 2018년 여름에만 전국 150여 곳의 시·군에서 가뭄을 겪었고, 농업 용수에도 피해를 입었다.
한반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 교수는 “전 세계적인 지구온난화로 인해 동아시아 내륙 토양은 지속적으로 건조해졌다”며 “최근 2, 3년 사이 학계에서도 ‘세계적으로 가뭄의 양상이 일반 가뭄에서 급성 가뭄으로 바뀌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6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된 옥스퍼드대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지구온난화에 따른 대기 갈증 현상은 가뭄을 40%가량 더 심하게 유발했다. 특히 연구 대상 기간의 마지막 5년이었던 2018~2022년엔 대기 갈증으로 인한 가뭄 지역 면적이 이전 40년보다 평균 74% 더 넓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4일 강원 강릉시 사천면의 한 취수장에서 펌프 트럭들이 물을 싣고 있다. 강릉=뉴시스 |
전문가들 “돌발 가뭄, 복합 재난 함께 관리해야”
문제는 가뭄에 대한 대비책이 다른 기후 재난에 비해 미비한 편이라는 점이다. ‘비만 오면 해결된다’는 안이한 인식 탓이 크다. 이번 강릉 가뭄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정 교수는 “기상청은 6월 말 ‘장마가 끝났다’고 예보했고, 강릉에선 7월 초부터 비가 오지 않았다”며 “강원·영동 지방은 원래도 여름철 비가 적은 곳이기 때문에 기상청 예보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초래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통상적으로 8월 말~9월 초쯤 태풍이 오니, 별다른 대비 없이 비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했다. 강릉은 지난해 여름에도 저수율이 30% 이하로 떨어져 물 부족 문제를 겪었다.
돌발 가뭄은 앞으로 더 잦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환경연구원은 2023년 가뭄 관리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최근 가뭄이 2, 3년에 한 번씩 발생하는 추세로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며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의 심도와 발생 빈도가 증가한다는 전망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중심의 선제적인 가뭄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기후 정책 연구단체 ‘넥스트’도 “돌발 가뭄의 횟수는 2010년 이후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늘고 있다”며 “더 이상 ‘비만 오면 가뭄은 끝난다’는 낙관적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4일 강원 강릉시의 공중화장실 앞에 '심각한 가뭄으로 부득이 폐쇄 조치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강릉=뉴시스 |
전문가들은 돌발 가뭄을 비롯한 기후 재난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새로운 대비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허창회 이화여대 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앞으로는 폭염, 집중 호우, 급성 가뭄, 태풍 등의 기후 재난이 두 개 이상 동시에, 연쇄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높다”며 “급성 가뭄 역시 지금까진 생소했지만, 향후 빈번해질 가능성이 커진 만큼 지자체를 넘어 국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 교수도 “급성 가뭄은 이번 강릉의 경우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맞닥뜨릴 때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며 “강릉처럼 타 지역에 비해 수자원이 충분하지 않은 지역의 경우엔 기상청 예보 데이터를 토대로 미리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