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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9분’. 지난 29일(현지시간)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수가없다’의 월드 프리미어 상영 이후 기립박수가 이어진 시간이다. 상영회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과 이병헌, 손예진 등 배우진들은 손을 맞잡고 인사하며 기립박수에 화답했다. 9분이나 이어진 기립박수는 ‘어쩔수가없다’의 베니스 수상에 대한 기대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난 3일. 또 하나의 경쟁부문 진출작인 카우타르 벤 하니야 감독의 ‘힌드 라잡의 목소리’가 베니스에서 세계 최초 공개됐다.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니스영화제 예술감독이 “논란의 여지가 없기를 바란다”고 밝힌 ‘이스라엘·가자지구’ 분쟁을 다룬 영화다. 마찬가지로 상영이 끝나자마자 기립박수가 터져나왔다. 무려 ‘20분’이 넘게.
누가누가 더 오래…길어지는 ‘기립박수’ 경쟁
지난달 27일 개막한 베니스영화제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 사이 수 많은 기대작들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세계 최초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영화의 내용과 작품성 만큼이나, 올해도 어김없이 월드 프리미어 상영 후 각각의 영화가 얼마나 오래 기립박수를 받았는지에 관심이 쏠렸다.
미국 연예매체 벌처는 “영화 역사에서 인간의 손이 이렇게나 관심을 받은 적이 있을까 싶다”면서 “베니스는 칸 영화제만큼 박수에 집착하는 축제는 아니지만, 오랜 역사만큼이나 열정적인 호응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참석한 영화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진 [CJ EMN 제공] |
일부 매체는 초 단위로 기립박수 시간을 재서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이 같은 보도 문화가 자리잡은 것은 2010년 이후다. 심지어 이 같은 기립박수는 점점 더 길어지는 추세다. 올해만해도 5일 현재까지 최소 7편의 초청작이 상영회에서 10분이 넘어가는 수위 ‘두 자릿 수’ 기립박수를 받았다.
올해 베니스에서 가장 오랜 기립박수를 받은 작품은 ‘힌드 라잡의 목소리’다. 영화는 지난 2024년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몇 시간 동안 차량에 갇힌 후, 목숨을 잃은 다섯 살 팔레스타인 소녀의 이야기를 응급 구조대의 실제 녹음을 통해 들려준다. 보도마다 정확한 시간은 다르지만, 월드프리미어 상영 후 최소 20분 이상 기립박수가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의심할 여지 없이 베니스 영화제를 가장 뜨겁게 달군 영화”라면서 “기립박수가 영화 상영 시간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23분동안이나 이어졌다. 객석에서 흐느낀 관객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 다음으로 긴 기립박수를 받은 영화는 노르웨이 출신 모나 파스트볼 감독은 ‘앤 리의 고백’과 드웨인 존슨이 주연한 베니 사프디 감독의 ‘더 스매싱 머신’이다. 두 작품 모두 15분 가량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여기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이 14분, 비경쟁 작품인 거스 밴 샌트 감독의 ‘데드 맨스 와이어’가 12분으로 그 뒤를 이었다. 지난 2010년 ‘하트 로커’로 아카데미를 거머쥔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연출 복귀작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는 11분 이상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영화 ‘부고니아’ [CJ ENM 제공] |
올리비에 아사야사 감독의 ‘크렘린의 마법사’ 월드 프리미어 상영 당시에도 10분 가량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영화는 젊은 블라디미르 푸틴과 전략가의 충돌과 갈등을 그린 작품으로, 주드로가 젊은 시절 푸틴을 연기해 일찍이 주목받았다.
그 외에도 노아 바움백 감독의 ‘제이 켈리’가 10여분, 장준환 감독의 장편 데뷔 영화인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작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연출의 ‘부고니아’가 약 7분, 그리고 개막작이기도 한 ‘은총’은 6분 가량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기립박수’와 수상의 상관관계 있다? 없다?
관심은 ‘기립박수’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경쟁 진출작의 경우 기립 박수의 길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수상 여부다. 그렇다면 기립박수를 오래 받을 수록 수상 가능성이 올라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다.
가령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2020)는 베니스 최초 상영 당시 기립박수를 길게 받지 못했지만, 그 해 황금사자상과 토론토 국제 영화제 관객상, 그리고 아카데미 작품상을 휩쓸었다.
2022년 제79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전기 다큐멘터리 ‘내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도 다른 상영작에 비해 기립박수가 길지 않았다. 반면 함께 경쟁 부문에 진출한 ‘블론드’는 14분이나 이어진 기립박수에도 불구하고 혹평을 받았다. 마릴린 먼로의 삶을 다룬 이 영화가 그의 실제 삶이 아닌 비극과 피해자 측면만 부각시켰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영화는 이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도 올랐으나 수상은 하지 못했다.
극장 이미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음. [123rf] |
이듬해인 2023년 베니스와 아카데미를 모두 휩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연출, 엠마 스톤 주연의 ‘가여운 것들’(10분)도 기립박수가 다른 경쟁작들에 비해 눈에 띄게 길지는 않았다. ‘가여운 것들’은 베니스에서는 황금사자상을, 그리고 아카데미에서는 여우주연상과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 등을 받았다.
물론 열광적인 기립 박수 속에 수상의 영광까지 안은 작품도 있다. 지난해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룸 넥스트 도어’는 월드 프리미어 상영회에서 18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같은 해 경쟁 부문 진출작인 ‘브루탈리스트’는 최초 공개 당시 기립 박수가 13분 가량 이어졌는데, 영화는 베니스에서 은사자상 : 감독상과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한 것에 이어 올해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과 촬영상, 음악상 등 3관왕에 올랐다.
한 외신은 “올해 베니스에서 지금까지 세 편의 영화가 15분 이상 이어진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너무 과하게 오랫동안 기립박수를 치는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며서 “베니스는 주요 영화제 중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가장 많이 배출하고 있지만, 모든 수상작이 최장 기립박수 기록을 세운 영화들이 아닌 점이 흥미롭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