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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노사정 대화’ 요구에 ‘사측은 빼자’는 민노총

조선일보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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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후 양대 노총과 첫 만남
이재명 대통령은 4일 취임 후 한국노총·민주노총 위원장과 처음 만나 “노동 존중 사회, 기업 하기 좋은 나라는 상호 대립적인 게 아니고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며 “첫 출발은 노사가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도 양대 노총이 참여해 대화하자고 제안했다. 민주노총은 1999년 이후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후 위기와 불평등,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전면적인 노정 교섭을 제안한다”며 “노정 교섭을 통해 노정 간 신뢰를 회복, 구축하고 대화의 효용성을 확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다. ‘노사정 교섭’이 아닌 ‘노정 교섭’으로, 기업은 빼고 정부와 노조가 노동 정책을 협상하자는 것이다. 회동 후 민노총은 보도자료를 내고 노정 교섭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노동계 숙원이던 이른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산업재해 엄벌을 공언하는 등 친(親)노동 정책을 펴왔다. 하지만 이날 이 대통령은 양대 노총에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사회안전망, 기업들의 부담,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 문제에 대해 터놓고 한번쯤 논의해야 한다” “싸우든지 말든지, 대화를 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의 관세 인상 등 여파로 올해 잠재 성장률이 최악의 경우 0%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면 노사 화합이 전제돼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노란봉투법 통과 직후 나온 노동계의 고용 보장 요구와 파업 예고에 사실상 자제를 요청한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양대 노총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경사노위 참여 제안에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전 정부가 도입한 ‘노조 회계 공시 제도’의 폐지, 주 4.5일제 시행, 65세 정년 연장, 5인 미만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보호 확대 등 ‘후속 청구서’를 내밀었다. 양경수 위원장은 “트럼프의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라 노동자 편이 되는 행복 메이커가 되어 달라”고도 했다.

◇“정년 연장” “4.5일제”… 양대노총, 李에 청구서 쏟아내

그래픽=박상훈

그래픽=박상훈


양경수 민노총 위원장은 이날 이재명 대통령에게 윤석열 정부가 도입한 ‘노조 회계 공시 제도’와 ‘타임오프제(근로시간 면제 제도) 정상화’ 방안을 철회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대선 때 이 대통령을 지원했던 양대 노총이 앞으로 더 급진적인 ‘청구서’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양 위원장은 이날 이 대통령과 오찬 뒤 민노총 내부에 이 같은 내용의 비공개 간담회 내용을 공유했다고 한다. 노조 회계 공시 제도는 정부의 회계 공시 시스템에 노조 회계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고, 타임오프제는 노조 규모에 비례해 노조 활동을 근로 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인원 한도를 설정한 것인데, 양대 노총은 이를 “노동 탄압”이라고 주장해 왔다.

앞서 민노총은 지난 3일 중앙위원회를 열어 하반기 핵심 추진 의제를 의결했는데, 여기엔 ‘초기업 교섭 활성화 및 단체협약 효력 확대’ ‘특수고용직 등의 노동자성 보장’ ‘작업 중지권 실질 보장’ 등이 포함됐다. 민노총이 앞으로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노조법 등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초기업 교섭은 기존 개별 기업 중심의 노사 교섭 구조를 산업별 등으로 묶어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단체 교섭 효력이 개별 업체가 아니라 동일 산업 등으로 확장된다. 산업 전체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개별 기업의 사정은 제대로 반영되기 어렵고, 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기업은 제재를 받게 되고 아예 문을 닫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대리기사, 배달 라이더 등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건설 현장 등에서 노동자가 사업주에게 작업 중지를 요청할 권리인 ‘작업 중지권 실질 보장’ 등도 업계 환경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다. 한국노총이 요구하는 법적 정년 연장도 청년 등을 위한 신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사회적 논란이 큰 사안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어느 수준에서 노동계 요구를 수용하면서 재계를 설득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날 노동계에서 금기시하는 ‘고용 유연성’ 문제를 언급하며 “터놓고 한번쯤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기업 입장에서는 (노조를 의식해) 절대 정규직을 안 뽑고 다 비정규직 뽑고 외주 주고, 노동자 입장에서는 ‘해고는 죽음이다’ 이런 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이게 악순환인데, 이걸 풀려면 그 첫 출발이 (노사가) 마주 앉는 것”이라고 했다. 노사 간 대화로 신뢰를 쌓아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런 요청을 한 것은 최근 경제 상황과 관련이 있다. 부정적 전망이 대부분인 경제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노사 관계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류덕현 대통령실 재정기획보좌관은 이날 김어준씨의 유튜브 방송에서 “올해 0%대 성장이라는 참담한 성적표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도 이런 경제 전망에 대한 걱정과 고민이 크다고 한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각종 경제 지표가 공통되게 경제 악화를 가리키고 있지만 뾰족한 해법은 없는 상황”이라며 “반등을 위해선 노사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부터 줄여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새는 양 날개로 난다. 기업과 노동이 둘 다 중요하다”며 “쇠뿔 바로잡으려고 소를 잡는 이른바 ‘교각살우’의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노조와 기업이 양립할 수 있다면서, 대통령 자신은 누구의 편도 아니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요새 제가 산업재해, 체불임금 이런 얘기를 좀 많이 했더니 너무 노동 편향적이라고 주장하는 데가 있던데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한다”며 “내가 편이 어딨나”라고 했다. 또 “제가 오히려 요즘은 기업인들 접촉이나 간담회를 너무 많이 하면서 노동자 조직은 한 번도 안 봤다”고 했다. 이에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이 “원래 문제 있는 사람들하고 자주 만나는 것 아니냐”고 하자, 이 대통령은 “왜 이리 공격적으로 나오시느냐”고 다독였다.

[박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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