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입구 천장에 17m 길이의 은빛 비행선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이 매달려 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이불의 대규모 서베이 전시다. /리움미술관 |
지금, 서울은 가장 뜨거운 미술의 도시다. 3일 동시에 개막한 글로벌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6일까지)과 ‘키아프 서울’(7일까지)에 맞춰 국내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들이 올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전시를 열고 있다. 미술관과 갤러리가 밀집한 삼청동, 한남동, 청담동 일대를 중심으로 관람 시간표와 동선을 잘 짜두면 효율적으로 전시를 즐길 수 있다.
◇한남동에 몰려온 수퍼스타들
프리즈와 키아프 기간에 맞춰 수퍼스타급 작가들이 서울로 몰려왔다.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선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이불의 대규모 서베이 전시 ‘이불: 1998년 이후’가 개막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30년 작업을 총정리해 조망하는 국내 첫 대규모 전시. 조각, 대형 설치, 평면, 드로잉과 모형 등 150여 점을 전시한다. 그동안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은 주로 해외 미술관에서 열렸지만 이번에는 국내에서 진행되는 대규모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인근 페이스갤러리에선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의 전시가 한창이다. 2008년 이후 서울에서 17년 만에 열리는 터렐의 개인전으로, 빛과 공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작가의 주요 작업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마크 브래드퍼드, 'He Would See This Country Burn if He Could be King of the Ashes'(2019).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미국 작가 마크 브래드퍼드 개인전 ‘Mark Bradford: Keep Walking’이 열리고 있다. 작가는 바닥에 깔린 초대형 설치 작품 위를 “계속 걸어보라”고 말한다. 브래드퍼드는 3일 개막한 프리즈 서울에서도 단연 최고 스타였다. 그의 신작 연작 3점이 약 63억원에 팔리면서 프리즈 서울의 역대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건물에선 또 다른 수퍼스타도 만날 수 있다. 세계 최정상 화랑으로 꼽히는 가고시안 갤러리가 일본 팝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를 들고 왔다. 무라카미의 신작 회화와 조각을 소개하는 개인전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을 아모레퍼시픽 본사 1층 APMA 캐비닛에서 열고 있다.
◇삼청동에선 충격과 힐링을 동시에
미술관·갤러리가 군집한 서울 삼청동 일대에선 볼거리가 촘촘하다. 시각적 충격과 묵직한 감동, 힐링이 다 있다.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개인전 ‘적군의 언어’는 기존에 없던 강렬함을 선사한다. 케이블과 쇠사슬이 얽힌 구조물이 공중에 매달려 있어도 놀라지 마시길. 전시장 입구는 흙더미로 봉쇄됐고, 강당·화장실·통로까지 폐허처럼 변모했다. 미술관 건물 자체가 통째로 전시 작품이 된 셈이다.
김창열, '물방울'(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5×100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
놀란 가슴은 인근 전시로 힐링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열 회고전은 묵직한 감동을 준다. 전쟁의 상처를 응시한 거장의 초기 작품부터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뉴욕 시기 추상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완성된 물방울의 여정을 세밀하게 탐색한 전시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루이즈 부르주아 개인전은 작가가 생애 후반 20여 년에 걸쳐 작업한 조각과 드로잉들을 엄선해 조명한다. 한옥 공간에선 커피 필터 위에 그린 드로잉이 소개된다. 1994년 제작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차례만 공개된 작품이다.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부르주아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날 수 있다.
김민정, 'Blue Mountain'(2025). 한지에 수채, 75 × 144cm. /갤러리현대 |
갤러리현대는 수묵화 전통을 기반으로 현대 추상화를 확장한 김민정을 내밀었다. 구불구불한 곡선이 농담과 번짐으로 겹겹이 화면을 채운 그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치유가 된다. 불에 태워진 한지를 지그재그로 쌓아 올린 신작 ‘집’(Zip) 연작과 지난해 스위스 아트바젤에 선보여 세계적인 호평을 받은 대형 작업 ‘트레이시스’를 국내 처음 소개한다.
‘보따리 작가’ 김수자가 10년 만에 서울에서 여는 전시도 놓칠 수 없다. SK그룹 창업주 사저였던 전통 한옥 선혜원(鮮慧院)이 문을 열고 첫 전시로 김수자를 초대했다. 경흥각 바닥을 거울로 채워, 수백 년 된 소나무로 만든 한옥의 천장과 서까래, 지붕을 반사시키며 실제와 허상이 겹쳐지는 체험을 만들어낸다.
그래픽=백형선 |
◇도산대로 한복판에서 만나는 곰리 조각
강남에선 세계적인 작가들의 조각과 회화를 만날 수 있다. 청담동 글래드스톤 서울에서는 스위스 출신 작가 우고 론디노네 개인전을 열고 있다. 네 개의 선으로 산악 호수를 묘사한 다양한 크기의 신작 풍경화 13점을 소개한다.
두 정상급 갤러리가 공동 기획한 전시도 있다. 신사동 화이트 큐브 서울과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세계적인 조각가 앤터니 곰리의 개인전 ‘불가분적 관계’를 따로 또 같이 선보인다. 화이트 큐브에선 곰리의 조각 6점을, 타데우스 로팍에선 조각 9점과 드로잉 9점을 만난다. 도산대로 보행로 한복판에 서 있는 적갈색 조각도, 갤러리 입구 벽에 조용히 기대앉은 조각도 모두 사람 형상이다.
신사동 페로탕 갤러리엔 UFO 타고 날아온 외계인을 닮은 신비로운 형상 조각과 그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일본 유명 작가 이즈미 가토 개인전이다. 토템과 일본 애니미즘 신앙을 연상시키는 그의 독창적 세계관을 만날 수 있다.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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