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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의 화끈한 폭로와 응징…남성 쾌락에 복무한 원작을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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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는 탐욕적인 남성들이 차지한 자본-권력-상징 시스템에 의해 재능 있는 여성들이 착취당하는 구도를 잘 보여준다. 여성들은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자아를 실현하려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를 오로지 돈으로만, 유방으로만, 성기로만 보기 일쑤다. 드라마는 남성에 의한 여성의 착취를 그리며, 권력형 성 상납까지 밀고 나간다.



‘애마’의 포스터. 영화 ‘애마부인’의 제작 뒷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에로 그로(테스크) 난센스’ 장르의 드라마다. 넷플릭스 제공

‘애마’의 포스터. 영화 ‘애마부인’의 제작 뒷이야기를 허구적으로 재구성한, ‘에로 그로(테스크) 난센스’ 장르의 드라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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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는 1982년 전설의 에로 영화 ‘애마부인’의 제작 뒷이야기를 상상으로 재구성한 6부작 드라마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인 만큼, 극중극 ‘애마부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가령 “에로 그로(테스크) 난센스”라거나, “정희란(이하늬)은 영화가 후진 가운데서도 고군분투하면서 끝까지 맞장뜨더라”는 말은 그대로 ‘애마’에게도 적용된다.



요컨대 ‘애마’ 역시 ‘에로 그로 난센스’ 장르로 볼 수 있는데, ‘애마부인’을 현재의 눈으로 재해석하며 난장을 펼친 것은 재미있는 시도다. 드라마는 권력형 성 상납과 폭로를 상상적으로 담고 있는데, 여기에는 시간의 중첩이 놓여있다. 드라마를 꽉 채우며 빛을 발하는 이하늬는 찬양받아 마땅하다.



영화 ‘애마부인’을 2021년 리마스터링해 재개봉할 때 새롭게 만든 포스터. 애마가 안장 없이 말을 타는 장면이 유명하다.

영화 ‘애마부인’을 2021년 리마스터링해 재개봉할 때 새롭게 만든 포스터. 애마가 안장 없이 말을 타는 장면이 유명하다.




3S 정책 산물인가, 자유화 봇물인가



‘애마’에는 “80년대잖아요. 새 시대를 맞아” 운운하는 대사가 나온다. 지금의 눈으로는 엄혹한 독재 시절에, 새 시대라니, 뭔 소린가 싶겠지만,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넘어갈 때 ‘다른 시대’라는 정서가 있었다. 일단 박정희 정권 내내 “1980년대가 되면, 자유, 민주, 분배, 복지 등을 해주겠노라” 선전을 해댔다. 그러다 박정희가 사망했고, 짧은 ‘서울의 봄’ 이후, 전두환이 권력을 잡았다.



3에스(S) 정책을 들어봤을 것이다.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돌리게 하려고, ‘스크린’ ‘스포츠’ ‘섹스’를 활성화한 정책을 폈다고. ‘애마’에서 1981년에 제작자 구중호(진선균)가 “스크린, 스포츠, 섹스가 이 시대의 화두”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당시 정부가 이를 공표한 적이 없으며, 당시에 만들어진 정부의 비밀 문건이 발견된 적도 없다. ‘3에스 정책’이라는 말은 1983년에 한 신문에 실린 세태 비판 칼럼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3에스 우민정책’이라는 표현이 쓰이면서 굳어진 용어다. 원래는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 후 군정을 비판하는 용어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전두환 정권은 영화 검열에 있어서 박정희 정권의 시스템을 답습했으며, 사전 검열을 완화한 적이 없다. 원작 ‘애마부인’의 시나리오도 36곳의 수정 지시를 받았다. (제목과 내용이 무관하다는 지적 사항도 있었다. 이를 반영하기 위해 주인공 이름을 오수비에서 이애마로 바꾸었다.)



요컨대 1980년대 에로 영화 붐은 3에스 정책에 의해 검열 수위가 낮아졌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자본주의 발달 등 사회 전반의 변화로, 민주화의 요구와 자유화의 욕망이 높아져, 정권이 이를 틀어막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세계적인 성 자유화의 물결과 외국 에로 영화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애마부인’은 여성 작가 조수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나, 실비아 크리스털 주연 프랑스 영화 ‘에마뉘엘’(1974)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제목은 물론이고, 말 타는 시그니처 장면이나, 친구와 동성애적 느낌의 관계, 여주인공의 상상 활용 등 유사점이 많다. ‘애마’ 속 곽감독(조현철)은 외국 에로 아트 영화의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 상업적으로 벗기려고만 하는 제작자와 부딪힌다. 검열로 인해 직접 노출이 금지되자, 곽감독은 “은근히 꼴리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선다. 즉 검열 때문에 오히려 페티시즘과 관음증이 강화되는 결과로 나아간다.



‘애마’ 3회. 애마가 얇은 잠옷 차림으로 천둥 번개와 비바람을 뚫고, 갈대에 찔리고 찢기면서 새 애인을 만나러 간다. 직접 노출 없이 관음의 효과를 극대화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애마’ 3회. 애마가 얇은 잠옷 차림으로 천둥 번개와 비바람을 뚫고, 갈대에 찔리고 찢기면서 새 애인을 만나러 간다. 직접 노출 없이 관음의 효과를 극대화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여성 평등영화? 여성 관음영화?



‘애마부인’은 여성의 욕망을 전면에 내세운다. ‘애마부인4’의 포스터에는 ‘여성 평등영화 선언’이란 카피가 박혀있다. 과연 그럴까. 시리즈 전체를 두고 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 그러나 1편인 ‘애마부인’은 그렇게 보기 힘들다. ‘애마부인’ 줄거리는 이렇다. 애마가 남편의 외도로 외로워하던 중 남편이 감옥에 간다. 애마는 옛 애인과 새 애인을 만나면서 자신의 욕망을 깨닫는다. 애마가 새 애인과 프랑스로 떠나려던 날, 남편이 출소하자 애마는 남편에게 돌아간다. ‘애마부인’은 여전히 가부장제 이념에 매여있다. 물론 애마는 기존 여성들에 비해 자유로워 보인다. 승마와 운전을 하여 이동에 자유롭고, 홀로 아파트에 산다. 아이도 시댁에 빼앗겨 육아로부터 자유롭고, 생계 걱정도 없다. 즉 유한마담 느낌이 난다.



여성의 성욕이 적나라하게 그려졌으니, 여성 해방적 측면이 있지 않느냐고? 여성의 욕망도 철저하게 관음의 틀 안에 갇혀 있다. 영화는 애마의 몸을 조각조각 분절화해 과도하게 클로즈업한다. 비에 젖거나 찢어진 옷 아래로 비치는 알몸을 확대하여 엿보며 즐긴다. 여성 신체의 페티시즘이다. 애마는 꿈꾸듯이 성 충동에 빠져든다. “침을 맞다가도 느끼고” “남자 중학생보다 자위를 많이 한다.” 요컨대 ‘애마부인’은 껍데기만 남은 가부장제를 놓지 못하는 유한마담의 채워지지 않은 성욕을 관음하는 남성의 쾌락에 복무하는 영화이다. 이러한 특징은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달라진다. 2편에서 애마는 이혼한 커리어우먼이고, 3편에선 남편을 집에 두고 떠난다.



‘애마’ 4회. 곽감독과 정희란이 수정한 여성주의적 시나리오로 영화를 촬영 중이다. 에리카는 애마에게 동성애적 욕망을 드러내다가, 여성주의적 조언을 한다. 넷플릭스 제공

‘애마’ 4회. 곽감독과 정희란이 수정한 여성주의적 시나리오로 영화를 촬영 중이다. 에리카는 애마에게 동성애적 욕망을 드러내다가, 여성주의적 조언을 한다. 넷플릭스 제공


‘애마’는 ‘애마부인’ 1편에서 부족한 여성 해방적 면모를 에리카라는 기이한 틈새를 통해 채워 넣는다. 에리카는 원작 ‘애마부인’에서 김애경이 연기하고 박정자 목소리로 더빙한 개방적인 독신녀다. 애마에게 사랑해주지 않는 남자와 이별하라 조언하고, 애마에게 동성애적 욕망을 내비친다. ‘이국적인 이름을 지닌 동성친구’는 애마부인 시리즈 내내 등장하며, 8·9·10편에서는 노골적인 레즈비언 관계가 묘사된다. ‘애마’는 에리카에게 주체적인 역할을 부여해, 시나리오를 변주하도록 한다. 그리고 남성의 관음증적 욕망에 포획된 에로티시즘에서 여성주의적 해방의 에로티시즘까지 다양한 서사를 펼쳐 보인다.



‘애마’에서 흥미로운 장면은 정희란이 남성 중심의 시나리오를 비판하는 대목이다. 정희란은 비행기에서 온통 젖가슴으로 도배된 ‘애마부인’ 시나리오에 담뱃불을 비벼 끈다. 젖가슴 못 잃는 ‘한국 남성문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 예술 좋아하는 곽감독이 수정한 시나리오를 보고 정희란은 “섹스 좀 해, 대본에다 말고, 진짜 사람이랑”이라 일갈한다. 여성의 욕망을 위주로 바꿔본다던 곽감독도 여성의 욕망이 뭔지 몰랐다. 우연히 만난 옛 애인이 집에 침입해 애마와 성폭행에 가까운 정사를 벌이고, 에리카도 이에 감응하는 시나리오를 보고, 정희란은 “강제로 범해지길 바라는 여자는 없다”고 일침을 놓는다. 원작 ‘애마부인’ 속 남성 중심적 성애관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장면이다. 정희란과 곽감독이 수정한 시나리오는, 애마와 에리카가 옛 애인을 응징하여 밧줄로 묶어 매달고 두 여자가 말을 달리는 결말이다. 하지만 이런 여성주의적 서사는 “여자들이 멋있는 영화는 기분 나쁘게 꼴린다”며 제작자에 의해 거부된다. 결국 ‘애마부인’은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고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편집본으로 개봉해 대박이 난다. 곽감독의 여성주의적 편집본 ‘애마부인-오리지날레’는 개봉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현실에서는 이후 수많은 애마부인 시리즈가 나오면서 조금씩 여성주의적 변주가 일어난다.





‘애마’ 6회. 제작자와 연예기자가 대종상을 누구에게 주느니 마느니, 거래하는 장면. 재능있는 여성들이 남성 연대에 의해 착취당하는 구도를 잘 보여준다. 넷플릭스 제공

‘애마’ 6회. 제작자와 연예기자가 대종상을 누구에게 주느니 마느니, 거래하는 장면. 재능있는 여성들이 남성 연대에 의해 착취당하는 구도를 잘 보여준다. 넷플릭스 제공


1980년대 성 상납, ‘버닝썬’과 중첩



‘애마’는 탐욕적인 남성들이 차지한 자본-권력-상징 시스템에 의해 재능 있는 여성들이 착취당하는 구도를 잘 보여준다. 여성들은 인간으로서 예술가로서 자아를 실현하려 하지만, 남자들은 여자를 오로지 돈으로만, 유방으로만, 성기로만 보기 일쑤다. 제작자와 연예기자가 대종상을 주느니 마느니 뒤로 말하는 장면은 어찌나 역겹던지. 드라마는 남성에 의한 여성 착취를 그리며, 권력형 성 상납까지 밀고 나간다. (참고로 ‘애마부인3’의 주연 배우 김부선은 자신이 1986년에 필로폰 투약혐의로 구속되었던 이유가 청와대 파티 초대를 거절했기 때문이라고 2013년에 밝힌바 있다.)



‘애마’ 5회. 마약 강제 투약으로 미나가 사망한다. 마약 파티 장면은 앞의 대연회 장면과 질감이 다르며, 시대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2018년 ‘버닝썬 사건’이 연상된다. 넷플릭스 제공

‘애마’ 5회. 마약 강제 투약으로 미나가 사망한다. 마약 파티 장면은 앞의 대연회 장면과 질감이 다르며, 시대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2018년 ‘버닝썬 사건’이 연상된다. 넷플릭스 제공


여배우가 시상식장에서 성 상납을 폭로할 수 있으려면, 대중의 성인지 수준이 높아야 한다. 즉 대중의 관심과 비난이 여배우가 아니라, 권력자를 향하리란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그것이 가능해진 건 2018년 미투 운동 이후다. 즉 정희란의 폭로를 들을 대중은 1982년의 대중이 아니라, 2018년 이후의 대중이다.(참고로 1996년 ‘오(O)양 비디오 사건’ 때 대중은 피해자를 공격했다. 1998년 ‘비(B)양 비디오 사건’에서 비로소 피해자를 공격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2009년 장자연 사건이 터졌을 때, 연예계 성 상납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실 ‘애마’ 속 대연회 장면은 1980년대라기보다는 2000년대에 가깝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미나의 마약 파티 장면은 2018년 ‘버닝썬 사건’을 연상시킨다.(배경음악으로 민해경의 ‘서기2000년’이 흐른다.) 드라마는 1980년대의 권력형 성 상납을 폭로한 것 같지만, 사실은 시간의 중첩을 통해 현재진행형인 ‘버닝썬 사건’을 폭로하고 있다.



원로 에로 여배우가 공로상을 시상하고, 광화문에서 호방하게 말 달리는 여성 연대를 통해 폭로자를 보호하며, 가해자는 응징된다. ‘썅년’들은 모두 살아남아, 국경을 오가며 꿈과 커리어를 이어간다. 현실에서 아직 이루지 못한 완벽한 해피엔딩이지만, 먼저 온 미래라고 생각하고 싶다.



‘애마’ 6회. 시상식장에서 성 상납을 폭로하고 붙잡힐 위기에 빠진 정희란을 말을 탄 신주애가 구출하여, 함께 광화문을 내달린다. 여성 연대와 해방감이 느껴진다. 넷플릭스 제공

‘애마’ 6회. 시상식장에서 성 상납을 폭로하고 붙잡힐 위기에 빠진 정희란을 말을 탄 신주애가 구출하여, 함께 광화문을 내달린다. 여성 연대와 해방감이 느껴진다. 넷플릭스 제공






황진미 | 대중문화평론가. ‘씨네21’ 영화평론가로 출발하여 티브이 드라마, 예능 등을 두루 평론한다. 인권·역사·여성·장애·인구·성·계급·권력 등 사회과학 전반에 관심이 많다. 원래 전공은 의학·보건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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