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상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를 겨냥한 규제가 갈수록 무거워지는 재계는 “경제 규모 달라진 만큼 자산 기준 상향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서울 시내 빌딩가 모습 [헤럴드 DB] |
상법상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를 겨냥한 규제가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경영권을 직접 겨누는 조항들이 담기며, 재계에서는 “도입 당시엔 소수 대기업 견제 차원의 장치였지만, 지금은 수백곳이 대상이 되면서 과잉 규제가 됐다”는 호소가 이어진다.
지난 7월 상법 개정에 따라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가 감사위원 선임을 하는 경우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합산해 발행주식 총수의 3%로 제한됐다. 이어 8월 국회 본회의, 지난 2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더 센’ 2차 상법 개정안은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집중투표제 시행을 의무화(정관 배제 불가), 감사위원 분리선출 의무를 기존 1명에서 2명 이상으로 확대하는 내용까지 담았다.
이 같은 규제의 적용 대상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5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의무공시 대상인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 상장기업은 지난 6월 기준 총 541곳이다. 이 가운데 자산총액이 2조원 이상인 상장사는 225곳으로 전체의 45%에 달한다. 자산총액 1조원 이상 2조원 미만인 기업은 127곳(25%), 자산총액 5000억원 이상 1조원 미만인 기업은 149곳(30%)이다.
▶“열심히 키웠더니 경영권 위협 역풍”=문제는 규제 대상 기업 수가 대폭 늘면서, 애초 ‘소수 대기업 견제’라는 입법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것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자산총액 2조원 언저리에 있는 기업들은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는 규제를 피해서 규모를 작게 운영하는 게 효율적이므로, 규제 자체가 기업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들이 스스로 발전을 멈출 수 있다는 관측도 예상된다.
열심히 회사를 키운 기업이 오히려 경영권을 위협받게 되면 자산 규모 2조원 규제를 피하려는 ‘성장 기피 현상’이 생기거나, 국내 상장을 포기하고 해외로 나가는 유니콘 기업이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기업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지난 7월 대한상공회의소가 300개 상장기업 대상으로 실시한 ‘상법 개정에 따른 기업 영향 조사’ 결과, 상장기업 76.7%는 2차 상법 개정안이 기업의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답했다. 74%는 경영권 위협 가능성을 지적했다.
법률마다 규제 대상 기업 규모 기준이 달라 혼선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거래법상 공시 대상 기업집단 기준은 자산 규모 5조원이다. 이에 포함되면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등 금지, 공시의무 규정 등 대기업집단 시책을 적용받는다. 이 기준은 지난 2009년 자산 2조원에서 5조원으로 상향됐다.
이처럼 수십년 전 경제 규모를 기준으로 만든 2조원 문턱이 현실과는 맞지 않아,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만약 상법 기준 또한 5조원으로 올린다면, 대규모 상장회사 수는 현재 225곳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10여곳으로 줄어든다. 이 경우 상당수의 중견·중소 상장사는 규제 대상에서 빠지게 돼 지배구조 규제 범위가 대폭 축소된다.
한편, 기업지배구조 규제의 또다른 논점으로 특수관계인(동일인) 범위 불일치 개선 필요성도 제기된다. 상법은 특수관계인의 범위를 6촌 이내 혈족·4촌 이내 인척으로 넓게 잡고 있다. 반면 공정거래법은 이를 혈족 4촌, 인척 3촌으로 규정해 상대적으로 현실화된 기준을 적용한다. 이에 경제계에선 “물가와 사회구조가 변한 만큼 상법의 특수관계인 범위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1990년 이후 대기업 성장 제조기업은 ‘셀트리온·에코프로’ 뿐=이런 가운데 성장 잠재력을 가진 기업들이 대기업으로의 도약은 물론 상장조차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기업에 대한 혜택 축소나 경영권 약화 등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장기적으로 고용 감소로 이어지면서 국내 경제에 더욱 치명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 기업집단 자료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중소기업으로 시작해 대기업으로 성장한 11개 기업 중 제조기업(그룹규모 기준)은 셀트리온과 에코프로 2곳뿐이다. 나머지는 8곳이 정보통신기술업체, 1곳은 도·소매업체였다.
이는 국내 산업 구조의 경직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미국과 비교하면 더욱 차이가 크다. 20년 전인 2005년과 올해 미국의 시총 10대 기업을 비교하면, 미국의 경우 자리를 지킨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MS) 1곳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밀려나고 엔비디아, 애플, 아마존 등 정보기술(IT) 기업이 새롭게 등장했다. 반면 한국은 삼성, SK, 현대차, LG 등 대부분이 유지되고 HD현대와 농협이 2곳이 새로 진입하는 데 그쳤다.
대기업 육성은 일자리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특히 제조업은 고용 유발 효과가 가장 큰 산업 중 하나다. 전·후방 산업과 광범위하게 연결돼 있어 공급망 단위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21년부터 4년 연속 대기업 집단에 포함된 셀트리온의 경우, 전체 임직원 수가 2020년 2041명에서 지난해 2680명으로 700여명 늘어났다. 고용노동부도 이같은 일자리 창출 효과를 인정해 셀트리온을 지난해 ‘일자리 으뜸 기업’으로 선정했다.
전문가들은 셀트리온과 같이 일자리 창출 잠재력이 있는 기업들이 성장을 꺼리면서 고용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고용 추세를 보면 대부분이 제조업, 대기업에서 일어난다”며 “그러나 제조업 대기업이 크지 못하면서 고용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내 제조기업 중 종업원 50인 미만인 소기업은 42%로 미국(18%), 독일(19%) 등의 2배가 넘는다. 반면에 대기업의 제조업 일자리 비중은 28%에 그쳤다. 고은결·박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