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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을 때 사라진 스타가 더 멋있을 때도 있다” 배우 장진영

조선일보 이한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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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서 찾았다 오늘 별이 된 사람]
2009년 9월 1일 37세
영화 '싱글즈' 주연 배우 장진영.

영화 '싱글즈' 주연 배우 장진영.


배우 장진영(1972~2009)의 죽음을 알고 있는 지금에서 다시 과거 기사를 읽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언제부턴가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것처럼 느껴진다.

37세 나이에 세상 떠날 운명인 이 배우는 29세 때인 2001년 영화 ‘소름’ 시사회에서 말했다. “앞으로 오래오래 할 거니까 급할 일이 없어요.”(2001년 7월 13일 자)

2001년 7월 13일자. 영화 '소름' 개봉을 즈음하여 인터뷰했다.

2001년 7월 13일자. 영화 '소름' 개봉을 즈음하여 인터뷰했다.


2003년 영화 ‘싱글즈’로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수상 소감에서 말했다. “예상치도 않게 상을 받게 돼 얼떨떨하다. 같이 일했던 ‘싱글즈’ 팀에게 감사하고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고 살겠다.”(2003년 12월 12일 자)

2005년 영화 ‘청연’에서 단독 주연을 맡고서 가진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끝까지 배우 하는 선배들을 보면 너무 부럽지만, 아예 젊을 때 사라진 스타들이 더 멋있을 때도 있다. 솔직히 내년, 내후년의 내 얼굴이 두렵다.”(2005년 12월 7일 자)

2005년 12월 7일자. 영화 '청연' 주연 장진영 인터뷰.

2005년 12월 7일자. 영화 '청연' 주연 장진영 인터뷰.


연기자로서 장진영의 삶은 12년이 전부였다. 1997년 신년을 여는 KBS 드라마 ‘내 안의 천사’로 배우 데뷔했다. 앞서 CF 모델로 얼굴을 알리고 있었다. 장진영은 방영 전 인터뷰에서 “표정 연기가 아직 서툴러요”라면서도 “워낙 걸걸한 성격이라 모든 배역을 다 소화해 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1996년 12월 28일자. 연기 데뷔 장진영.

1996년 12월 28일자. 연기 데뷔 장진영.

영화 데뷔는 1999년 ‘자귀모’. 2000년 화제작 ‘반칙왕’에서 퇴역 레슬링 선수의 괄괄한 딸로 눈길을 모았지만 ‘싸이렌’의 흥행 실패로 실망도 맛봤다. 2001년 작 ‘소름’에서 첫 주연을 맡았다.


다소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지만 초조한 마음은 없다고 했다. “어려서 시작한 사람들에 비하면 확실히 카메라 앞에서 힘들죠. 이틀 연습에 10시간 촬영하고 나면 2~3일은 끙끙 앓았어요. 하지만 제대로 사고할 수 있는 나이에 연기 시작하니까 판단할 일이 있을 때 훨씬 수월한 점도 있습니다.”(2001년 7월 13일 자)

제24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탄 장진영. 2003년 12월 12일자.

제24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탄 장진영. 2003년 12월 12일자.


‘소름’으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탈 줄은 몰랐다. ‘봄날은 간다’ 이영애,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전도연,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인디언 썸머’ 이미연 등 쟁쟁한 후보를 제쳤다. 당시 기사는 ‘첫 주연을 맡은 장진영에게 여우주연상이 돌아간 것은 다소 이변으로 여겨졌다. 여우주연상 시상자로 나왔다 상을 받게 된 그는 말문을 못 열다가 “마음을 비웠는데, 수상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며 감격해했다’(2001년 12월 13일 자)고 했다.

이어 ‘국화꽃 향기’(2003)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위암 환자 민희재, 두 번째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안긴 ‘싱글즈’(2003)에서 둔하고 덤벙대는 스물아홉 살 독신 나난, ‘청연’(2005)에서 한국 최초 여성 비행사 박경원,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에서 당당하고 섹시한 룸싸롱 아가씨 연아로 연기 변신을 거듭했다.


장진영 주연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포스터.

장진영 주연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포스터.


장진영은 2008년 9월 17일 종합검진에서 위암 판정을 받고 치료를 위해 활동을 중단했다. 1년 후인 2009년 9월 1일 오후 4시 5분쯤 서울성모병원에서 별세했다.

남자 친구 김영균씨의 순애보가 화제였다. 김씨는 장진영이 세상을 떠나기 전인 7월 2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작은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는 장진영이 위암 발병 한 달여 전부터 사귀었다. 김씨는 결혼에 앞서 변호사와 만나 장진영의 재산과 관련된 모든 권리를 장진영 부모에게 위임했다. 지인은 “그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장진영이 세상 떠나기 전 결혼식을 올린 순애보.  2009년 9월 3일자.

장진영이 세상 떠나기 전 결혼식을 올린 순애보. 2009년 9월 3일자.


김씨는 “이번이 아니면 면사포를 씌워 줄 수 없었다”며 “결혼을 선물로 주고 싶었다”고 했다. 사망 나흘 전인 8월 28일 한국에서 혼인신고도 마쳤다. 김씨는 2009년 12월 장진영과의 사연을 담은 책 ‘마지막 선물’을 출간했다.


장진영 아버지, 딸의 뜻에 따라 11억 장학금 기부. 2012년 9월 1일자.

장진영 아버지, 딸의 뜻에 따라 11억 장학금 기부. 2012년 9월 1일자.


아버지 장길남씨는 “어려운 학생을 돕고 싶다”는 딸의 유지에 따라 2010년 사재 11억원을 털어 장학 재단을 설립했다. 2011년엔 고향 임실에 ‘장진영 기념관’을 건립했다. 꾸준히 기부 활동을 해온 장길남씨는 2024년 1월에도 우석학원에 5억원을 기부했다. 장씨는 이해 5월 16일 딸의 15주기 기념식 준비를 위해 기념관에 다녀오던 길에 발을 헛디뎌 세상을 떠났다.

[이한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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