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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면 죄책감… 빨래는 모아 친정집에서”

조선일보 강릉=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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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사태 선포된 강릉 가보니
31일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안반데기’. 국내 최대 여름 배추 산지다. 배추 수확철을 맞았지만 농민들은 한숨만 쉬고 있었다. 배추 절반은 잎이 말라 누렇게 탔다. 안반데기에서 40년 넘게 배추 농사를 한 조정래(72)씨는 “이렇게 비가 안 내린 건 처음”이라며 “영양제를 줘도 소용이 없고 속이 탄다”고 했다. 근처 구정면 대파밭도 마찬가지였다. 누렇게 마른 대파가 무더기로 쓰러져 있었다.

마을 이장들은 이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수도 계량기 밸브를 75%까지 잠갔다. 이장들이 애걸복걸하다시피 했지만 곳곳에서 실랑이도 벌어졌다.

주민 홍옥표(89)씨는 “50% 잠글 때는 수압이 좀 떨어졌구나 싶었는데 75% 잠그니 물이 정말 졸졸 나온다”며 “6·25 때 피란 간 시절이 생각날 정도”라고 했다.

단수(斷水) 위기에 놓인 강릉 시민들은 “요즘 하루하루가 초조하다”고 했다.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물 절약에 나서고 있다.

세탁소를 운영하는 박승춘(55)씨는 매일 돌리던 세탁기를 2~3일에 한 번씩 돌린다. 그는 “수돗물이 완전히 끊기면 세탁소는 바로 문을 닫아야 한다”며 “매일 아침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기예보와 뉴스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구정면의 한 식당은 “손 놓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하다”며 저녁 영업을 접었다. 홍제동의 카페 사장은 “커피는 생수로 내리고 매장 청소는 물티슈로 한다”고 했다.


31일 강원도 강릉시 홍제정수장에서 물을 담아온 소방차량들이 긴급 급수를 하고 있다. /장경식 기자

31일 강원도 강릉시 홍제정수장에서 물을 담아온 소방차량들이 긴급 급수를 하고 있다. /장경식 기자


회산동의 약수터엔 물통을 든 시민들이 줄을 섰다. 교동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지난달 20일부터 매일 두 차례씩 “양치할 땐 컵을 사용하고 빨래는 모아서 하자”는 안내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관광업도 타격을 받고 있다. 초당동에서 펜션을 하는 이재덕(57)씨는 “이번 주 예약 2건이 취소됐다”며 “물은 잘 나오느냐, 언제 단수되느냐는 문의 전화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신라모노그램 강릉 호텔은 “1일부터 수영장과 사우나 운영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학교는 ‘단축 수업’ 등을 검토하고 있다. 강릉교육지원청 관계자는 “물을 많이 쓰는 급식이 문제”라며 “식기 세척을 외부 업체에 위탁하거나 빵·우유 등 대체식을 마련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강릉의 한 대학은 수영장과 샤워장을 폐쇄했다. 화장실은 홀수 층만 문을 열었다.


불을 꺼야 할 소방서도 비상이다. 강릉소방서는 119안전센터 4곳에 물 10~40t을 담을 수 있는 ‘이동식 저수조’를 설치했다. 근처 하천에서 물을 퍼 와 채웠다.

이날 만난 강릉 시민들은 “요즘엔 샤워할 때도 죄책감이 든다” “빨래는 모아서 시댁이나 친정집에서 한다”고 했다. 강릉 시민들은 가뭄이 이어지자 지난달 23일 대관령에서 기우제도 지냈다.

기상청은 “앞으로 10일까지 눈에 띄는 비 소식이 없다”며 “1일 전국 대부분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겠지만 강릉에는 5㎜ 안팎의 비만 찔끔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무더위는 계속 이어져 가뭄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강릉=정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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