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2년 희생자추도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희생자들을 기리며 묵념하고 있다. |
“머리에 칼을 맞고 겨우 살아 돌아오신 분에게 큰할아버지의 죽음을 들은 게 전부였습니다.”
31일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2년 희생자추도대회’에서 유족 조광환씨는 서러운 슬픔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큰할아버지가 일본에 간 지 3년 만에 조선인 학살 희생자가 됐다”며 “일본 정부가 100년 넘도록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 사이 피해자들이 (역사 왜곡 등으로) 가해자로 바뀌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경남 거창 출신의 조권승씨는 간토대지진 발생 이튿날인 1923년 9월2일 일본인에게 살해당했다. 이후 유족들은 고향에 묘소를 마련해 지금도 제사를 지내며 일본 쪽을 향해 묵념을 올린다고 한다. 유족 조씨는 “주검이 없는 묘소에 생전의 옷과 신발 등만 묻혔다”며 “이제라도 유골이나마 찾고 싶다”고 호소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1일 일본 수도권에 일어난 대지진 혼란 속에 조선인 6천여명과 중국인 800여명 등이 희생된 일이다.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일본인 집을 불태운다” 같은 헛소문을 빌미로 군과 경찰, 자경단이 죄 없는 조선인 등을 학살했다. 지난 23일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일한 이재명 대통령이 학살 현장의 하나인 도쿄 아라카와 강변을 언급하며 “100년 전 끔찍한 역사 (…) 일본 각지에 흩어진 넋을 잊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과거 사실을 망라해 분명한 기록이 없다”는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 역시 해마다 9월1일 열리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올해도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 실행위원회'가 지난 25일 고이케 지사를 향해 “간과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한 바 있다.
31일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2년 희생자추도대회’가 열리고 있다. |
100년 넘은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일 시민단체들은 9월1일 학살 현장인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 추도식을 비롯해 한달 넘게 전국 곳곳에서 관련 행사를 이어간다. 일본 쪽에서도 야당 국회의원들로 꾸려진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검증하는 의원 모임’이 29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부에 “간토 학살 사실을 검증하고 정부가 이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전달했다. 스기오 히데야 입헌민주당 의원은 이날 추도식에서 “역사의 진실을 어둠 속에 두지 않고 시민들과 진상 규명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31일 일본 도쿄 메이지대학에서 열린 ‘간토대지진 조선인·중국인 학살 102년 희생자추도대회’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검증하는 의원 모임\'의 스기오 히데야 의원(입헌민주당)이 발언하고 있다. |
과거사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 태도가 배외주의로 이어져 일본 사회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간토 학살 관련 책 ‘지진과 학살 1923~2024’을 쓴 야스다 고이치는 이날 주제 강연에서 “차별이 간토대지진 당시 인간이 인간을 살해하는 일을 벌어지게 한 것”이라며 “과거사를 부정하는 태도가 다시 차별을 부추기는 악순환을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도쿄/글·사진 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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