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은퇴 후에도 소비와 금융 활동에 적극적인 ‘액티브 시니어’가 빠르게 늘고 있다. 하지만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지향적으로, 자산 활용과 돌봄 수요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헬스케어 기반 IT 솔루션과 맞춤형 금융 설계가 시니어 시장의 지속 가능한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시니어 금융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과거형 금융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은퇴 이후 소득 공백, 돌봄 공백, 자산 관리 리스크 등 시니어가 직면한 문제는 복잡해진 만큼 액티브 시니어를 위한 맞춤형 상품 개발과 헬스케어 기반 IT 설루션 결합이 강화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오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 핵심 금융·소비층으로
행정안정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1060만명으로, 전체 5116만 인구의 20.7%에 달한다. 한국은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 중 상당수는 베이비붐 세대 은퇴자들로, 금융시장의 핵심 소비층으로 부상 중이다. 실제 국내 60세 이상 고령층이 보유한 순자산은 가구당 평균 5억원을 웃돌며, 연령대별로 나눠보면 고령인구는 가장 자산이 많은 부유층에 속한다.
은퇴 후에도 소비와 금융 활동에 적극적인 이들은 ‘액티브 시니어’로 불린다. 과거 부모 세대가 가족을 위해 소비를 자제한 경향과는 달리, 소비를 즐기고 더욱 적극적인 삶을 추구한다. 아울러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 활동을 지속하는 것은 물론, 금융 지식에 관심이 많고 스마트폰을 활용한 금융 이용도 능숙하다. 은퇴 후에도 30년 이상 살아야 하는 시대, 고령층의 금융 수요는 단순히 저축이나 예·적금을 넘어 자산 활용·건강·돌봄·상속까지 전방위로 확대되고 있다.
프리미엄→중산층으로 상품 확대해야
문제는 한국의 금융 시스템이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금융은 ‘자산을 모으는 단계(성장기)’에서 ‘자산을 꺼내 쓰는 단계(성숙기)’로 전환 중이라는 평가다. 은퇴 직전 또는 직후 소비자들의 금융 자산 포트폴리오는 자산을 극대화하는 전략에서 미래 자산을 최적화해 꺼내 쓰는 구조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노후 소득 공백과 자산 리스크가 확대되게 된다.
하지만 국내 금융 상품과 서비스는 여전히 성장기 사고에 갇혀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 고령층의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에 묶이거나, 국민연금 또는 예금 등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 노후 대비 상품인 장기 적립식 연금은 해지율이 높고 판매도 저조하다.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공시를 보면 55세 이상 퇴직연금의 97%는 연금 전환 없이 일시금으로 인출되고 있다. 은퇴 후 자산이 연금화하지 않고, 금융자산 운용 선호도가 예금(77.5%)에 집중되면서 포트폴리오가 안전자산에 편중돼 있다.
요양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장기요양보험 대상 시장만으로 계산한 요양산업은 10조원대에 형성돼 있어, 전체 시니어 시장을 고려할 땐 작은 규모다. 특히 장기요양보험 수급은 전체 노인 인구의 10%로, 10명 중 9명의 노인은 돌봄 서비스 밖에 있다. 요양 사업자의 시설과 서비스 양적·질적 수준도 필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일부 시설의 경우 요양보호사 1명이 28명을 돌보는 경우도 있으며, 시니어 본인 또는 가족이 부담해야 하는 간병비·요양비 지출도 급격히 불어나고 있다. 매월 수백만원씩 지출해야 해 ‘간병 지옥’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처럼 민간 영역에서의 노후 대비 금융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탓에 체계적이고 전문화를 요구하는 돌봄 수요가 커져도 이에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은행·보험업권 모두 시니어 대상 금융 상품·서비스 혁신이 정체돼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요양업계 관계자는 “주요 시중은행들이 시니어 전용 자산관리 센터 등을 개설하고 맞춤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중산층 은퇴자를 포함하는 폭넓은 설루션을 제공하진 않고 있다”면서 “보험사들도 고령층 대상 보험이나 연금 상품 개발에 있어, 과거의 표준화한 상품 구조에 머물러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고령층이 자산은 있어도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조가 없어 불안정한 노후를 맞고 있는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금융사가 프리미엄 실버타운이나 VIP 고객 전용 창구 같은 상층 중심 전략에서 중산층 시니어를 위한 설루션 개발과 파트너십 모델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장 전문가들은 금융사가 시니어 산업을 단순 ‘시장 확장’이 아닌, ‘핵심 설계 고객군’으로 재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시니어 고객의 수가 빠르게 늘고, 자산을 사용하는 단계에 본격 진입하는 시기인 만큼, 금융사 스스로 시니어 사업의 목적과 전략을 명확히 재정의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특히 기존의 상품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데이터 기반의 생활 설계자이자 플랫폼 운영자로 정체성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사에 IT 설루션을 제공하는 한 전문가는 “돌봄·건강·소득 리스크를 함께 고려한 연금과 보험 구조, 제휴형 프랜차이즈 돌봄 플랫폼, 건강 상태에 따라 자동 조정되는 보장 구조 등이 미래 시니어 금융의 핵심”이라면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데이터, IT 기반 디지털 설계가 병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AI시대 맞춤 돌봄·금융 융합 모델 찾아야
이런 가운데 요양시설에 인공지능(AI)·ICT 기반 헬스케어 설루션을 제공하는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입소 노인의 바이털 데이터를 실시간 분석해 건강 이상 징후를 조기에 감지하고, 이를 통해 낙상이나 고립 등 위기 상황을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아가 요양보호사의 업무 부담은 줄이고 서비스 품질도 높일 수 있다는 평가다.
서울시와 하나금융지주 등은 이 같은 설루션을 제공하는 ‘제론엑스’와 실증사업 협력을 추진하며, 공공과 금융, 민간 요양산업의 접점을 연결하는 민간 협력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시니어 금융에 IT를 결합하는 방식은 더 다양해질 수 있다. 예컨대 AI 기반 건강 예측 알고리즘, 빅데이터 기반 위험 분류, 치매·낙상 등 특정 건강 상태와 연동된 보험료 할인, 헬스케어 연동 연금 지급 방식 등은 이미 글로벌 보험사들 사이에서 상용화된 사례다.
김운봉 제론엑스 대표는 “시니어 시장에 대해 어떤 역할과 목적을 가질 것인지부터 정의하고, 거기에 맞춰 상품 개발·파트너십·투자 전략을 설계해야 한다”면서 “금융사가 직접 실버타운이나 요양 시설을 짓는 방식보다, 그런 영역과 연동된 파트너십 기반의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더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