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2012년 올림픽 선수들이 사용하던 숙소로 활용됐던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 아파트는 2017년 정부의 안전점검 전수조사에서 내부 벽체가 불연재 소재 미비로 화재 안전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관할 구청인 뉴엄구청(Newham Council)은 시공사와 소유주에게 벽체 보강, 불연재 교체, 방화문 교체, 화재경보·대피로를 개선하라고 명령했다. 중앙 정부(DLUHC)도 소유주와 시공사가 법적 합의를 거쳐 1800만 파운드(약 300억원)의 보수 비용을 분담하도록 했다.
영국, 호주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주거시설에서 발생하는 하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엄격한 제재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준공 승인을 받은 이후에 발생하는 하자에 대해서는 대부분 입주민들이 민사 소송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신축 공동주택의 결함을 줄이기 위해서는 해외처럼 시공사에 대한 제재 수단을 강화하고, 하자담보책임의 실효성을 높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7월 29일(현지시각)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한 건설 노동자가 작업 중 물을 마시고 있다. /AFP=연합뉴스 |
◇아파트 하자 문제 직접 해결하는 호주·영국
해외에서는 아파트 하자 문제에 대해 엄격히 대응하고 있다. 호주의 퀸즐랜드주(州)에서는 신축 건물의 하자 발생 후 적절한 보수를 이행하지 않으면 정부가 제재를 부과한다. 영국은 주택 품질 보증을 제공해야 하는 건설사가 건물 하자 발생 후 이를 즉시 수리하지 않고 지연할 경우 소비자보호법에 따라 수십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미국에서는 심각한 하자가 발생한 경우 건축물에 대한 사용을 제한하는 주도 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아파트의 하자를 인정 받더라도 건설사가 이를 미루면 손 쓸 방법이 많지 않다. 건설사가 하자 보수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 또는 지자체장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과태료 부과권자의 자율에 달려 있어 보수 기한 내에 입주자가 만족할 하자보수가 이뤄지지 않아도 과태료가 반드시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
국내 역시 주택법에서는 건축물의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있는 경우 사용중지 또는 입주 금지 명령을 발령할 수 있고, 건축법에서도 안전·구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사용승인(입주)을 제한할 수 있다. 다만 현실적으로 시공사·감리사의 승인 없이 준공 검사를 통과했거나 붕괴, 기초 침하, 구조체 손상이 발견된 경우에 한해서만 드물게 적용되고 있다.
◇하자담보책임보험 실효성 높여야
건설사가 가입하는 하자담보책임보험도 해외에 비해 실효성이 낮다. 하자담보책임보험은 시공사가 신축 주택이나 아파트를 지을 경우 일정 기간 동안 하자에 대해 보증하는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제도다.
28일 서울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 |
캐나다의 경우 하자 발생 시 주택 구매자가 주별 보험사에 하자를 신고하면 보험사가 시공사에 보수를 요구한다. 만약 시공사가 하자 보수에 나서지 않으면 보험사가 직접 중재를 하고 보수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해외 건축사사무소 관계자 A씨는 “캐나다에서는 신축 주택에 구조적 결함, 방수, 전기·배관, 난방, 외벽, 지붕 등 건축물에 결함이 있을 경우 홈워런티(Home Warranty)라고 하는 법적 보증 제도가 의무화돼 있다”며 “신축 주택을 구매하는 사람이 시공사가 지은 건물에서 발생할 수 있는 결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마다 다르겠지만 3~10년의 보증 기간 동안 건설사는 하자가 발생할 경우 입주 전후와 관계없이 하자 보수를 하거나 보상을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면서도 “한국은 주택법상 하자보수에 대한 책임만 규정돼 있고 보험 가입은 시공사의 선택에 맡긴다”고 덧붙였다.
권대중 한성대학교 일반대학원 교수는 “한국은 세계 어떤 나라와 비교해도 아파트가 가장 많아서 해외와 아파트 제도를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하기는 어렵다”면서도 “한국은 하자 보증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민간 하자담보책임보험을 시공사가 가입하긴 하지만, 보증 범위나 금액이 작아 실효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결국 국내에서 아파트 하자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민사 소송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 비해 배상액이 상대적으로 적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해외건설업계 관계자는 “미국, 영국 등 해외에서는 다수의 입주민들이 공동으로 제기하는 집단소송을 허용하기 때문에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대 집단소송이 가능하고, 배상 범위도 수리비용뿐 아니라 거주 불편에 대한 손해와 가치 하락까지 포함된다”며 “한국은 하자 소송이 빗발치는 데 반해 배상 범위가 수리비, 일부 지연에 대한 손해에 그치고 배상액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15일 경기 김포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한 작업자가 측량을 하고 있다. /뉴스1 |
◇하자 문제 해결, ‘사전 대응’ 강화해야
국내에서는 붕괴사고 또는 인명 피해 등 중대한 하자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정부가 개입하는 사후 대응 방식이 보편화돼 있는데, 하자 문제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현재 국내에서 아파트 입주민들이 하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에 심사를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하심위는 판결이 아닌 조정을 결정하는 준사법적 행정기구로, 하자 범위, 보수 또는 보상 책임을 심사하고 조정안을 제시한다. 문제는 접수부터 하자 여부가 결정되기 까지 수개월에서 1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 입주민들은 하자로 인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안형준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연구원장은 “지자체나 국토교통부가 지정하는 품질검사기관을 따로 조성해 하자 관련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들이 준공 승인 전에 검수하도록 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도 하자 발생을 줄이는 방법 중 하나”라며 “소 잃고 나서 외양간을 고치는 사후 대응 보다는 예방을 하는 방향으로 제도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건설사 또한 아파트 하자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과잉 수주와 외국인 소통 문제에 대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하자가 발생하면 시공을 맡은 건설사 신뢰도가 하락하면서 분양 경쟁력과 재무건전성 악화로 번질 수 있다”며 “건설사가 하자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는 대신 차라리 자동차 리콜 제도처럼 하자 원인과 대책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건축 리콜 제도를 스스로 도입해 고객들로부터 신뢰도를 높이는 방안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윤 기자(jypark@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