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작가상 2025’ 후원작가로 선정된 언메이크랩(왼쪽부터 최빛나, 송수연), 임영주, 김영은, 김지평 작가가 28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현경 기자]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이민자의 경험이 소리를 통해 표현된다. 죽음 이후의 세계는 빈 무덤으로 형상화된다. 파괴된 신화는 글과 그림으로 재현된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이미지는 현실과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28일 SBS문화재단과 함께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5’ 후원작가로 김영은, 임영주, 김지평, 언메이크랩 등 여성 작가 4인(팀)을 선정했다. 이들 작가에게는 각각 5000만원씩 지원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들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는 ‘올해의 작가상 2025’을 오는 29일부터 내년 2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후원작가로 선정된 김영은, 임영주, 김지평, 언메이크랩은 각기 다른 매체와 언어를 통해 감각되지 않는 것, 감춰지거나 누락되고 소외되거나 잊힌 세계의 층위들을 작품으로 풀어낸다. 이들은 ‘경계 너머, 비가시적인 세계는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따라 재현의 정치를 파헤치고,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사고한다. 전시는 소리와 정치, 전통과 동양화, 미신과 과학,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오가며 작가들이 열어젖힌 틈새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감각과 서사를 살펴본다.
김영은 ‘듣는 손님’(2025). [김영은] |
주류 서사 전복하는 김영은·임영주·김지평·언메이크랩
김영은 작가는 디아스포라를 경험한 사람들의 정체성을 소리로 풀어낸다. ‘듣는 행위’, 청취를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관계가 드러나는 비평적 실천의 장으로 해석한다. 작가는 소리가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간직한 매체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소리가 어떻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구동되고 작동하는지 탐구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듣는 손님’(2025), ‘Go Back To Your’(2025), ‘미래의 청취자들에게 III’(2025) 등 신작 3점은 소리를 통해 이주의 경험이 만들어내는 번역과 중재의 과정, 기억을 재구성한다.
임영주 ‘고 故 The Late’(2023~2025). [임영주] |
임영주 작가는 죽음과 고통, 종말 같은 심오한 주제를 영상, 설치, 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로 풀어낸다.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삶에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믿음’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고찰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고 故 The Late’(2023~2025)는 12개의 영상 및 사운드가 1시간 길이에 맞춰 재생되는 다채널 설치 작품으로, 한국의 ‘가묘(假墓)’ 풍습에 착안해 상상 속 ‘빈 무덤’을 구현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뒤섞인 공간에서 관람객은 무덤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생과 사의 경계 속에 놓인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임 작가는 “‘아이고’와 ‘하이고’란 단어를 좋아한다”며 “전통은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 오래된 것, 버려진 것 안에도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지평 작가는 전통의 소실과 함께 밀려나는 존재를 동양화의 변주와 상상력으로 소환한다. 그에게 전통은 과거에 종속되지 않고 열려 있는 서사의 장이며, ‘없는’ 전통은 잘 보이지 않을 뿐 저변에서 여전히 작동하며 ‘있는’ 것으로 드러난다.
김지평 ‘코즈믹 터틀’(2025). [김지평] |
‘다성多聲 코러스’(2023~2025) 연작은 할머니, 광대, 무녀 같은 주변화된 존재들을 병풍으로 재탄생시킨다.
이를 “재야의 미술”이라고 칭하는 김 작가는 “무속과 무당은 정치로 가면 잘못될 수 있지만 문화적으로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표제작이기도 한 ‘코즈믹 터틀’(2025)은 바다거북의 뱃속에서 대북 선전물(삐라)이 발견됐고, 그것이 죽음의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뉴스를 보고 동아시아의 거북이 신화가 떠올라 탄생한 작품이다. 문명과 자연의 우주적 교감이 끊어져 버린 생태적 위기를 신화적 상상력에 빗대 표현했다.
언메이크랩은 최빛나, 송수연이 2016년 결성한 콜렉티브로, 2020년 이후로는 AI에 의해 드러나는 인간 중심의 인식 체계를 전복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데이터셋, 컴퓨터 비전, 생성 신경망 기술 등을 활용해 AI가 예측하는 미래상의 허점을 찾아내고, 풍자적 농담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뉴-빌리지’(2025)는 미완의 스마트시티와 기묘한 시뮬레이션 마을에 가상의 서사를 입혀 과잉된 미래상에 의문을 제기한다. 블루 토마토를 알레고리로 삼아 사변적 풍경을 제시하며 예측 불가능한 미래와 위태로운 현실을 비춘다.
내년 1월 최종 수상자 발표…작가-심사위원 공개 대화
‘올해의 작가상 2025’ 최종 수상자는 전시 기간 중 국내외 심사위원들과 작품에 관한 공개 대화 및 2차 심사를 거쳐 내년 1월에 발표된다. 2차 심사인 ‘작가-심사위원 대화’는 관람객 현장 참여가 가능하고, 추후 온라인으로도 공개될 예정이다. 최종 수상 작가는 ‘2025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고 후원금 1000만원을 추가로 지원받는다.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2012년부터 공동으로 주최해 온 현대미술 작가 후원 프로그램이자 수상 제도로, 매년 작가 4인(팀)을 선정해 신작 제작과 전시를 지원하고, 작가들의 해외 프로젝트를 후원해 왔다.
언메이크랩 ‘뉴-빌리지’(2025). [언메이크랩] |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해의 작가상’은 동시대의 첨예한 이슈를 다루는 작가들과 함께 한국현대미술의 실험적 흐름을 가늠해 보는 국내 대표 전시”라며 “이번 ‘올해의 작가상 2025’가 한국현대미술의 지형도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이자 새로운 담론 형성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SBS문화재단과의 동행은 올해까지인 3년 계약 종료 이후에도 재계약을 통해 지속될 전망이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SBS문화재단이 계속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내년부터 다시 계약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며 “원래 1년씩 계약을 하다가 이번에 3년을 한 것이고, 다음번에도 2년이냐 3년이냐를 논의 중이다. 아마도 장기 계약으로 한 번 더 계속될 것 같다”고 말했다.




























































